삼국의 흔적을 나라, 교토에서

이틀째 - 호류지 ( 법륭사, 法隆寺 )

보리숭이 2009. 1. 20. 17:46

호류지(법륭사)

  법륭사는 아스카시대(6세기 중엽 ~8세기 초)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유래는 <금당>의 동쪽 법당에 안치되어 있는 <약사여래상>의 후광명 및 <법륭사 가람연기 및 유기자재장>(747)의 유래문에서 알 수 있다.

  그 유래문에 따르면, 요메이천황이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절과 불상을 건립하도록 명하였으나, 그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후일 스이코 천황과 쇼도쿠 태자가 요메이 천황의 유언을 받들어 607년에 절과 그 본존 <약사여래> 상을 건립한것이 이 법륭사라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일본 정사의 하나인 <일본서기>에는 670년 4월 30일 심야, 법륭사가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두고 메이지 시대 이래 법륭사의 재건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고, 오늘날에도 현재의 가람 건립 연대에 관해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법륭사는 쇼토쿠 태자가 건립한 절로서 14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백제 군수리사지등에 보이는 백제식 가람배치로 자오선상에 세워졌으며 남쪽으로 부터 남문-중문-탑-금당-강당과 이것을 둘러싸는 회랑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있는 금동석가삼존상과 사천왕상의 광목천 광배는 백제인의 작품이다.

  현재 법륭사는 탑과 금당을 중심으로 하여 서원가람과 몽전불당을 중심으로 한 동원가람으로 나누어져 있다.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만도 약 190종류로 2,300여점에 달하고 있다. 일본 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1993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대문(무로마치 시대, 14세기 말 ~17세기 초)

남대문은 법륭사의 현관에 해당하는 대문으로 1438년에 재건된 것이다.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구조는 법륭사의 대문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중문과 회랑

  남대문을 지나 조금 걸어들어가면 중문과 양옆으로 회랑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 뒤로 탑이 보인다. 중문 좌우에 배치된 금강 역사상은 동서로 길게 이어진 회랑의 살창과 대조를 이루며, 뒤쪽 탑과 금당을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안쪽 정면에는 대강당, 서쪽에는 경당, 그리고 동쪽에는 종각이 세워져 있으며, 이같은 가람배치를 법륭사식이라고 부른다.

 

 중문 좌우의 금강역사상

 

 

 

 

  금당

법륭사의 본존이 안치된 불당이 금당이다. 이 금당에는 쇼토쿠태자를 위해 건조된 금동석가삼존상(아스카시대), 태자의 부왕인 요메이 천황을 위해 건조된 금동약사여래좌상(아스카시대), 아나호베노 하시히토 황후를 위해 건조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가마쿠라 시대)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수호하듯이 장목으로 만든 사천왕상(하쿠호시대)은 사귀의 등 위에서 위엄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외에도 목조 길상천입상, 비사문천 입상 등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천정에는 서역문화의 영향이 짙은 천인과 봉황새가 비상하는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린 닫집이 걸려 있으며 주위 벽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벽화(1949년에 소실되어 현재는 패널에 그려진 모주 벽화로 대체되었다)가 그려져 있어 창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호류지 금당에는 불상말고도 세계적인 유물이 있으니, 금당벽화가 그것이다.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고 알려지고 있는 금당벽화는 안타깝게도 1949년 실화로 불에 그슬려 제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최대한 벽화를 복원하긴 했지만, 어두운 실내조명과 통제된 통로 때문에 하나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호류지금당벽화는 동서남북 아래 위 모든 벽면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방위에 따라 동쪽에는 석가정토도를 서쪽에는 아미타정토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벽과 남북의 벽에도 관련 불화를 그렸다.

아미타정토도를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근엄하게 정좌하고 있는 아미타불 좌우에 연꽃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과 염주같은 것을 들고 있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두 보살은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연지까지 바르고 화려하게 최고 패션의 옷을 걸치고 있다. 역시 허리는 굽혀 요염하기까지 한 자세를 취하고 배꼽까지 내놓고 있다.  

 오층탑(오중탑)

중문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들어오는 것이 오층탑이다. 오층탑의 높이는 기단상에서 약 31.5m이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층탑으로 유명하다. 이 탑의 최하층의 내진에는 나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소상들이 다수 안치되어 있으며, 동쪽면에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문답하는 장면, 북쪽면에는 석존의 입적 장면, 서쪽면은 석존의 유골(사리)의 분할 장면, 남쪽면에는 미륵보살의 설법장면이 그러져 있다.

백제인 기술자들이 참여해 지은 목탑은 제일 오래된 탑으로 남아있다. 창건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백제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사찰이다. 호류지의 목탑은 높이 31.5m로 1400여년동안 2번의 큰 보수만 하고 온전하게 모습을 갖춘 제일 오래된 목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중탑 북쪽면에 있는 석존의 입적 장면 

 

 대강당

  이 불당은 불교를 연구하고 법회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불당은 종각과 더불어 925년에 낙뢰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990년에 재건되어 본존인 약사삼존상과 사천왕상도 그때 제작된 것이다. 

  대보장원과 백제관음당

 쇼료인 불당에서 동쪽을 향해 걸으면 보물창고인 고호조가 자리잡고 있고, 그 건물앞을 왼쪽으로 돌아 북쪽을 향해 걸으면 식당과 세전 건물이 보입니다. 그 안쪽에 새롭게 만든 가람이 대보장원이다. 대보장원은 1998년에 낙성식을 한 백제관음당을 중심으로 ㅁ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 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보급 문화재가 다수 안치되어 있다. 이 절에 전해오는 백제관음상은 일본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불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본 불상으로는 드물게 8등신의 날씬한 몸매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비가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법륭사는 대보장원 내 백제관음당에 이 관음상을 안치하고있다.

 백제관음당

  동원 종각

  중문에서 왼쪽으로 보면 모퉁이에 종각이 보인다. 이 종각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는 건축물로, 내부에는 <中宮寺>라고 새겨진 나라시대의 범종이 걸려 있다고 한다.

  유메도노(夢殿) 불당

  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유메도노불당이 나타난다. 쇼토쿠 태자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739년에 건립한 가람을 조구오인(上宮王院) 불당이라고 하는데, 그 중심건물이 이 불당이다. 팔각형 불당 중앙의 감실에는 쇼토쿠 태자 실물 크기의 관음상을 안치하였으며, 그 주변에는 성관음 보살상(헤이안 시대), 쇼토쿠 태자의 효도상(가마쿠라 시대), 교신소즈의 건칠상(나라시대), 또 헤이안 시대에 유메노도 불당을 수리한 도센율사의 소상(헤이안 시대) 등도 안치되어 있다. 이 불당은 중문을 개조한 예당(가마쿠라 시대)과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쇼토쿠 태자를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믿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당을 지은 것이다.

 

비불구세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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