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당(국보, 나라시대)
법화당은 동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법화당이라는 이름은 매년 3월 이곳에서 법화회가 열리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법화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월에 법화회가 열린다고 삼월당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최초로 화엄경이 강의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쌍당 형식의 건물이었지만, 현재는 뒤쪽에 정당 부분과 앞쪽에 예당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당 부분은 重源(죠겐)이 1199년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건물 내의 불상들은 텐표시대 문화의 화려함을 잘 보여준다.
법화당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법화당 내 불당이 나온다. 법화당에는 본존인 불공견색관음상을 중심으로 총 16개의 불상이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불상들 중 12개가 국보이고, 4개가 중요문화재라고 한다. 좁은 내부 공간 속에서 이들 불상이 자애는 분위기는 우리를 잠시 <부처들의 세계>로 안내한다. 불당 중심의 불공견색관음은 당당한 체구에, 합장한 자세의 단정한 용모를 취하고 있다. 본존인 관음상 좌우의 두 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두 보살 앞의 두 역사가 금강역사이고. 불당 네 코너에는 사대천왕의 상이 서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아쉬웠다.
법화당 가는 옆 언덕 길에 아쇼카석주 모형이 있다. 인도로부터 기증받았다고 한다.
스리랑카로부터 기증 받은 것
절안에 신사가 있다.
이월당과 삼월당(법화당)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과 석등
종루(국보, 가마쿠라 시대)
이 종루는 다른 종루와는 달리 유난히 하늘로 솟구치 듯 우뚝 솟은 모습이다. 이 종루는 1207~10 사이에 재건한 건축물로, 대불양에 약간의 선종양식을 가미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종루 안으로 보이는 범종은 그 무게가 26.3톤이나 되며, 동대사 창건 당시의 것이며, 일본에서 유명한 세개의 범종 가운데 하나이다.
아쉽다.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으면 이곳 옆, 종각과 서각 사이에 있는 행기스님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행기당을 찍었을 것인데 , 전형적인 일본 건물이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행기스님 죄송..
정창원 부경.
고구려의 渡來文化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奈良(나라)와 京都(교토)의 古刹(고찰)에는 예외없이 京 스타일의 校倉造(교창조:'아제쿠라')가 있다. 일본의 왕궁과 神社(신사)의 수호신인 貊犬(맥견:'코마이누')과 함께 일본에 전해진 고구려 문화의 흔적들이다.
'三國志' 魏志 東夷傳(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高句麗條(고구려조)에서 '家家有小倉 名爲 浮京'(가가유소창 명위부경: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는데, 이름을 부경이라 한다)라고 기록하면서 굳이 京이라는 이름을 적어둔 것은 중국인들의 눈에 이런 식의 창고가 낯설었기 때문일 듯하다. 의 孚는 浮와 통하여 '뜨다'는 뜻이다. 집 같은 것이 허공에 떠있도록 짜 엮은 나무, 즉 뗏목이라는 뜻이다. 孔子(공자)가 말한 '道不行 乘 浮于海'(도불행 승부부우해: 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갈까 한다)의 가 그것이다. 우리는 京이라 하면 이내 '서울'을 떠올리지만,京은 본래 '높다랗게 세워진 집'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京의 甲骨文(갑골문)과 金文(금문)을 보면, 京의 모습이다. 혹은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집을 본뜬 모양이라고도 한다. 京에 '首都'(수도)라는 뜻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덕 위에 모여 사는 모습을 京이란 글자에 담았다고 본 것이다. 京畿(경기) 京鄕(경향) 京本(경본:서울에서 출판되는 책) 등의 京이 그것이다.
이월당(국보, 에도시대)
법화당 왼쪽 위에 위치해 있다. 이월당이라는 이름은 이 건물에서 음력 2월에 修二會(슈니에)가 열리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의 이월당은 1667년 修二會를 행하는 가운데 건물에서 불이 나서 소실되어 그 2년 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의 건물은 규모가 작았지만, 재건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修二會의 정식명칭은 <십일면회과법>이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범하는 잘못을 본존인 십일면관음 앞에서 참회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청정한 일심을 얻어, 악업으로 인한 응보를 소멸하고 보다 나은 불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修二會의 초기 성격은 당시의 불교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위해 행해지는 종교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좌측이 이월당, 우측이 삼월당(법화당)
법화당
거리의 현대판 인력거
나라 박물관
일본에서 처음 시식한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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