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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에도 가을이..

보리숭이 2006. 10. 3. 12:39

 

 

김천고 2학년의 현장체험학습에 카메라를 매고 따라 나섰다. 김천은 전국체전 준비에 바쁜데, 안동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2006'이 '양반의 멋과 흥'을 주제로 29일부터 서제와 성황제를 시작으로 10월 8일까지 열흘동안 안동시내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여러번 온 하회마을이지만 올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오늘은 가을의 정취를 중심으로 앵글을 잡았다.

 

 

 

 

 

 

 

 

 

 

 

 

 

 

 

 

 

 겸암 선생 불천위 사당 담 너머로는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수령이 800여 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이는데, 동신으로 모시는 '삼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원래 하회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외곽에 있던 나무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타고 남은 일부가 남아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가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유성룡(:1542∼1607)의 형인 유운룡(:1539∼1601)의 종택으로 풍산 유씨 종가이다. 유운룡의 아버지인 입암() 유중영(郢:1515∼1573)의 고택이라는 뜻으로 ‘입암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유운룡의 6대손인 유영(:1687∼1761)의 아호()에서 유래하였다.

하회 북촌택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세웠고 건물 둘레에는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정면 3칸에는 4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마치 누()와 같은 인상을 주는 별당() 건축으로 두리기둥을 사용하고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받쳤다. 공포의 구조는 이익공()집과 같은 계통이며 내부는 오른쪽 3칸이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대청의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들보·종량()·충량()은 통나무를 다듬어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윗부분의 가구재()를 받치는 대공()은 제작수법이 우수하고, 마루대공은 파련대공처럼 만들었다. 개인 주택으로는 규모가 큰 별당이다.


 

 보물 414호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종택이다. 선생이 삼칸 초옥(草屋)인 농환재(弄丸齋, 풍산읍 서미리)에서 별세한 뒤 일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수많은 유림들의 도움을 받아 장손인 졸재 원지(元之)공이 처음 창건하였고, 그의 아들 의하(宜河)공이 확장 중수한 조선 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충효당 전서체(篆書體) 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인 우의정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의 친필이다. 충효당 기문은 1706년 연안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지은 것을 282년 뒤인 1988년에 서하인(西河人) 임창순(任昌淳)의 글씨로 게판해 두고 있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서애 선생의 증손자인 익찬 벼슬을 역임한 우눌재(愚訥齎) 류의하(柳宜河) 대에 게판 되었으며 기문은 우눌재의 손자인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대에 식산 이만부에게 청해 완성되었다. 모두 52칸이 남아 있다.

종택에는 가장 신성한 공간인 불천위 사당과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일명 만지송(萬枝松)이 있으며, 종택 행랑채 앞마당에는 다소 원형이 손상된 불탑이 복원되어 있는데, 이 탑은 원래 서애 선생의 재사(齋舍)인 상로재(霜露齋) 뒷 편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