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역사관

최송설당 여사 동상 문화재 등록 보존 위한 현장 조사

보리숭이 2012. 3. 3. 21:26

2월 28일 오후 2시 송설역사관에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동상인 ‘최송설당’ 여사의 동상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조사단 방문이 있었다. 이날 방문하신 분은 문화재청 전문위원이며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이신 김이순 박사, 미술평론가 윤범모(경원대 회화과 교수), 미술사가 조은정(홍익대 교수) 외 2분이 방문했다.

 

 

 

 

김이순 교수는 지난 8월 16일 김천고등학교 송설역사관에 보관 중인 최송설당 동상에 대하여 문화재 지정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차 우리학교를 다녀갔었다.

김이순 교수는 최송설당 동상이 1935년에 당시 최고의 조각가인 김복진에 의해 제작이 되었고, 1944년 일제의 공출이후 그의 제자 윤호중에 의해 1950년 재현되었지만 한국전쟁 동안 포화를 이겨낸 역사적 의미가 큰 동상으로 평가하고 있다.(김이순 지음 '한국의 근현대미술'29~31쪽)

이 동상은 그 동안 비바람에 훼손이 심하여 역사관 안에 전시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동상을  제작, 원래의 대좌 위에 복원하여 지난 5월 8일  이사장님과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

아래는 근대시기 조작 작품들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관련 신문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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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조각 작품들을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31일 1897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1960년대까지 근대 조각 유물에 대한 기초조사를 통해 146점을 집계, 그중 32점의 목록화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목록화 작업은 문화재 등록을 위한 전단계로 32점 중에는 최초의 근대조각가로 사회주의 계열의 진보적 문예운동을 이끈 김복진(1901~1940)이 1938년 제작한 세브란스 외과의사알프레드 어빙 러들로의 청동부조 초상(사진)이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근대 조각은 근대적 양식의 수용 시기가 비교적 늦고, 사회적 수요 부족으로 작품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기와 부피로 말미암은 보관문제로 훼손과 망실이 많았다”면서 “특히 청동 동상은 일제 강점기 전쟁물자로 공출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종 목록화 대상으로 선정된 32점 중 기념조각은 9점, 순수조각이 21점, 종교조각이 2점이다. 시기별로는 1930년대 3건, 1940년대 7건, 1950년대 19건, 1960년대는 3건이다.

일제시기에 제작된 청동 작품은 현재까지 40점 정도가 확인됐지만, 이들 대부분은 1942년부터 전쟁 물자로 공출돼 러들로의 청동 부조 초상이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이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동상인 ‘최송설당상’도 32점의 목록에 포함됐다. 최송설당은 영친왕의 보모로 궁실에서 일하다 1931년 김천고보를 설립한 여류시인이다. 1935년 김복진이 제작한 것을 1950년 최초의 근대 목조각전공자인 윤효중(1917~1967)이 다시 제작해 현재 김천중·고등학교에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목록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요한 작품은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