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탑의 땅 미얀마

미얀마 기행문 6일째/ 양곤 2 - 류연식

보리숭이 2011. 2. 12. 23:42

 

2011년 1월 28일, 29일/ 글쓴이 류연식 / 양곤

 

까바예 파고다는 ‘세계 평화의 탑’의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불, 목련존자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미얀마 종교성 관료가 사리 친견 행사를 직접 진행하다 보니, 그 과정이 대단히 딱딱한 형식적 절차였다. 우리는 까바예 파고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주의사항을 숙지한 채 조금은 긴장된 상태로 그 곳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부처님 사리 등을 대단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파고다 내의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고가 있는데 그 곳에 사리를 보관 중이었고, 사리함은 투명하게 제작되어 사리를 눈으로만 볼 수 있게 하였다. 2중, 3중의 보관으로 철저함이 느껴졌다.

 

까바예 파고다

 

 

사리 친견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처음 들어가서 우리는 다같이 3배를 올렸다. 그리고 2명씩 나아가 호계합장을 하였다. 그러면 양쪽에서 2명의 머리 위에 큰 쟁반 하나를 얹고 ‘따도, 따도’(찬탄한다, 찬탄한다의 뜻) 하면서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준다. 우리는 쟁반을 내린 뒤 관례상 한 사람당 5$ 정도를 보시하고, 사리를 보았다. 종교성 관료는 사리를 돋보기로 보여주며, 우리말로 부처님 사리, 사리불 사리, 목련존자 사리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2명씩 사리를 모두 친견하면 부처님 사리를 등지고 앉아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후 회장님이 앞으로 나가 관료와 악수를 나누며 기념품 엽서를 건네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우리는 사리불 사리 3개, 부처님 사리 5개, 목련존자 사리 1개를 차례로 돋보기로 본 뒤 절차를 모두 마치고 나왔다. 종교성 관료는 마지막에 우리에게 꽃 한 송이씩을 선물로 주었다. 그 뒤 사리는 금고 안으로, 우리는 철창 밖으로 나와 파고다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까바예 파고다를 나왔다.

 

 

사리 친견

 

오늘의 마지막 성지 순례 코스이자 미얀마 성지 순례의 마지막 코스를 장식했던 곳은 마하시 수도원이었다. 이곳은 학승이자 수행승으로 유명한 마하시 큰스님이 계시던 곳이다. 이 곳에서 스님은 위빠사나 수행을 가르쳤다. 스님이 남녀 귀천도 차별하지 않고 가르침을 베푼 것은 지금도 귀감이 될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큰 가르침 덕에 수많은 제자 수행자들을 낳았고, 이 수도원은 규모의 확장을 거듭하여 부속 건물만 100여 채가 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 국내에 500여 개의 분원, 세계적으로 38개의 분원이 마하시 스님의 상좌 스님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마하시 스님은 내가 태어난 1982년에 입적하셨는데 당시 따르는 신도 수가 100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스님이 혹시라도 반정부 시위를 하면 어찌할까 두려워서, 이를 염려한 군부가 스님을 독살하였을 것이라는 설까지 나돌 정도였다고 하니, 그 영향력 또한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개산 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훌륭한 상좌 스님들이 모두 분원을 차려 나가시는 바람에 현재는 이 곳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마하시 수도원  

마하시 스님

 

우리는 마하시 스님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니 스님이 쓰시던 선방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그 안쪽에는 생전에 쓰시던 침실, 서재, 경행을 위한 긴 복도가 차례로 있었다.

마하시 스님은 평소 3시에 기상하여 제일 안쪽 긴 복도에서 경행을 하시고, 4시부터 5시 까지는 참선 수행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마하시 스님의 기를 받아 수행해보려는 수행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침실에는 마하시 스님이 쓰시던 진공관 라디오, 다이얼식 전화기 등 생전에 쓰시던 물품들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고 있었다.

2층에서 내려와 우리는 마당의 공양간을 구경했다. 마하시 수도원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부엌같은 곳이었다. 그 곳에서 개산 거사님은 고수풀을 집으면서 ‘향신료인 고수가 이곳 음식의 끝입니다. 수행에서 깨달음의 끝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뒤 ‘깨달음의 끝은 또 다른 의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로써 성지 순례 일정은 끝나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였다. 점심은 UN이 있었다는 인터내셔널 호텔 건물 1층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세도나 호텔에서 마지막 짐을 챙겨 나왔다. 오후 일정은 양곤 시내 백화점 방문과 도심지의 차이나타운을 갔다 오는 것이었다. 백화점은 영어로 Super Mart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1층에는 의류 등 수입 물건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백화점을 한 층에 압축시켜 놓은 듯 했다. 이곳 경제 사정상 부유층이 찾는 매장이라고 한다. 2층과 3층은 상대적으로 서민적인 곳이라고 하는데, 미얀마 물건들이지만 전통의 물건들이 아니어서 미얀마 도심의 현대적인 분위기가 났다. 마치 한국의 마트나 백화점을 연상케 하였다. 난 별로 살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달러를 받는 매장이 적어서, 모두들 이곳에서는 물건을 많이 사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은 양곤의 중심인 술레 파고다 근처에 있었다. 양곤은 술레 파고다를 중심으로 지어진 계획도시라고 한다. 지금은 마침 개금 공사 중이라서 돗자리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개산 거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대나무 등으로 아시방(일본 말인 듯)을 짠 뒤 돗자리 같은 것으로 덮어 비바람을 막고 그 안에서 개금 등의 작업을 한다고 한다. 양곤의 중심가 답게 차들이 많았고, 차이나타운의 시장에는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우리는 주로 과일, 생선등을 파는 식료품 시장을 걸었고, 중간에 중국식 절에도 들렀다.

과일 가게에서 우리는 두리안과 잭프루트를 사서 먹었다.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라서 맛은 크게 좋지 않았다. 기름기가 많은 것이 과일보다는 부침개를 씹는 느낌이 들었다. 냄새는 듣던 대로 고약한 편이었다. 잭프루트는 새콤한 것이 두리안보다 내 입에는 더 맞았는데 가격은 두리안이 훨씬 비쌌다. 이곳은 저장 기술이 발달이 덜 되어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면 주로 수입해 온다고 한다. 비싸도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팔린다고 했다.

 

두리안

 

두리안과 잭프루트를 먹으며 걷다 보니 중국식 절이 있었다. 미얀마의 여타 파고다들과 비슷하게 불상도 있고 했으나 한자로 된 현판이 많았고, 불상 등의 모습도 왠지 중국풍의 느낌이었다. 또한 신발을 신고 들어갔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중국식 절을 나와서 다시 시장으로 나와 생선, 게, 야채, 고기 등 수많은 물건들을 살피며 좁은 길을 열심히 지나갔다. 중심가의 시장답게 사람들이 많아 매우 복잡했는데, 키가 크신 개산 거사님의 걸음이 빨라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뜻밖의 일을 당했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우리가 타고 가던 관광버스가 커브를 돌아 들어가는데, 옆길에서 들어오던 승용차와 측면을 살짝 부딪히고 말았다. 접촉사고였기 때문에 충격은 거의 없었고, 차들도 둘 다 거의 손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와 부딪힌 승용차는 고급 수입차였고, 게다가 새 차였다. 승용차 안에는 뒷좌석에 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듯 했고, 운전을 하던 젊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 채 나왔다. 우리 버스에서 현지 버스 기사분이 내려 승용차 운전자와 대화를 나눴다. 개산 거사님은 우리가 주문했던 울금을 받으러 가던 길에 마침 그 가까운 곳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떡 본김에 제사지내듯 버스에서 내려서 울금을 가지러 갔다가 오셨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곧장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빠른 해결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개산 거사님이 울금을 가지고 오는 동안에도 지지부진하게 일처리가 끝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잠시 후 경찰이 와서 사진을 찍고 상황이 종료되어 다행이었다. ‘시추에이션 삐비’ 개산 거사님은 상황 종료라면서 웃으셨고, 우리는 미얀마에 온 첫 날 처음 밥을 먹었던 ‘Koo's 한식당’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양곤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시금 양곤에서 방콕으로, 방콕에서 인천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올 때처럼 홍콩에서 환승하는 절차가 있나 했더니 다행히 없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도착하였다. 방콕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는 한국 사람들이 한 80% 정도는 탄 듯 했다. 특유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여행의 끝을 비로소 실감했다. 누군가 말했다던가, ‘여행은 돌아오기를 기약하기에 즐거운 것이다.’라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행은 여행일 뿐, 갔으면 돌아오는 것이 여행인 듯 싶다.

이 글은 설 명절을 지난 후 완성하였다. 백승환 선생님의 멋진 사진들과 개산 거사님의 훌륭한 가이드 내용을 마치 내가 찍고 생각한 것인 양 마구 적어놓은 듯하다. 이번 여행은 회장님 말씀대로 볼거리, 잠자리, 먹거리, 가이드, 동행, 날씨 등이 만족스러운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잘 다녀오고, 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신 금강불교회 회원님들과 기타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졸필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