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

강원 고성 건봉사 바라밀 석주

보리숭이 2010. 6. 9. 23:30

건봉사에서 6.25 사변을 치룬 후에 남아있는 불이문과 능파교 외에 봉황 석주, 대방광불화엄경 석주, 만卍자 석주, 바라밀 석주 등의 이색적인 석주가 특이하여 되새겨 본다. 특히 바라밀 석주에 새겨진 열 가지 도형은 처음 보는 것이라 외계인의 흔적인가 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건봉사 바라밀 석주는 능파교를 건너 대웅전 구역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높이 약 160cm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네모 돌기둥 두 개에 모두 10개 종류의 도형이 음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십바라밀 정진도형이다. 오른쪽 기둥에는 열 개의 바라밀정진도형 중에서 ①, ③, ⑤, ⑦, ⑨에 해당하는 5개가, 왼쪽 기둥에는 ②, ④, ⑥, ⑧, ⑩에 해당하는 5개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기둥의 것은 각각 ①달, ③신, ⑤구름, ⑦좌우로 놓인 작은 원 두 개, ⑨네모를 둘러 싼 두 개의 동심원 형태로 되어 있고, 왼쪽 기둥의 것은 각각 ②별과 반달(상현달), ④가위, ⑥금강저, ⑧상하로 놓인 작은 두 개의 원, ⑩세 개의 작은 원이 큰 원 속에 들어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왼쪽 기둥- ②별과 반달(상현달), ④가위, ⑥금강저, ⑧상하로 놓인 작은 두 개의 원, ⑩세 개의 작은 원이 큰 원 속에 들어 있는 모양

 

오른쪽 기둥- ①달, ③신, ⑤구름, ⑦좌우로 놓인 작은 원 두 개, ⑨네모를 둘러 싼 두 개의 동심원 형태

 
십바라밀 정진도형이 이처럼 석주에 새겨져 있는 유례는 우리나라에서는 건봉사 바라밀 석주 밖에 없다. 그러나 십바라밀 정진도형 자체는 건봉사 석주에서 비로소 나타난 것이 물론 아니고 오래전부터 불교 전통의식의 하나인 탑돌이 행사에 적용되어 왔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가 없으나 과거에는 사월초파일이나 큰 재(齋)가 있을 때면 불자들이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십바라밀 정진의식이 성행했었다. 탑돌이는 보통 삼귀의례를 마친 후 십바라밀 정진도형을 따라 탑 주위를 돌게 된다. 예컨대 보시바라밀 정진 시에는 둥근 달 모양을 그리면서 돌고, 지계바라밀의 경우에는 반달 모양, 인욕바라밀의 경우에는 신발[鞋經] 모양을 그리면서 돈다.


십바라밀 정진도형의 내용은 1935년에 편찬된 〈석문의범(釋門儀範)〉의 정진도설(精進圖說) 조(條)에 해인도(海印圖)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석문의범〉의 내용을 참고로 하여 건봉사 바라밀 석주에 나타난 각 도형들의 특징과 그 의미를 해석하여 정리해 보자.


①원(圓)은 보름달을 나타낸 것으로 보시바라밀을 상징한다. 재(財).법(法).무외(無畏)의 3종 보시로써 중생심을 따라 모두 만족케 하는 것이 마치 청정 허공에 광명월륜(光明月輪)이 치우침이 없이 원조(圓照)함과 같으므로 보시바라밀을 보름달에 비유한 것이다. 달의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 것으로 수월보살, 만월보살 등 관음보살의 화현들이 있고, 같은 뜻을 표현한 말로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잘 알려져 있다.

②반원은 반달 또는 상현달을 나타낸 것으로 지계바라밀을 상징한다. 옳지 못한 일과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정계(淨戒)를 점차 이루어 나가는 것이 마치 상현달이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살아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지계바라밀을 상현달에 비유한 것이다.

③신발[鞋經]은 인욕바라밀을 상징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치욕을 견디어 참으면서 안으로 법성을 밝히는 것이 마치 신이 밖으로부터 찔리는 것을 방어하여 발을 안전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신발에 비유한 것이다.

④가위(剪刀)는 정진바라밀을 상징한다. 한 곳에 마음을 쏟아 수행하는 도중에 마음을 딴 데로 옮기지 않는 것이 마치 가위로써 물건을 자름에 유진무퇴(有進無退)함과 같으므로 가위에 비유한 것이다.

⑤뭉게뭉게 피어나는 모습의 구름은 선정바라밀을 상징한다. 마음을 깊은 한 곳에 모아서 일체의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마치 많은 구름이 드리워 대지의 열염(熱炎)을 식혀, 맑고 서늘하게 함과 같음으로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⑥금강저는 지혜바라밀을 상징한다. 지혜의 공장(工匠)으로써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의 산을 뚫고 부수어 번뇌의 광맥을 발견하고 깨달음의 불로써 단련하여 자기 불성의 금보(金寶)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마치 금강저의 견고함과 날카로움과 밝음이 구족하여 앞으로 나아감에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므로 금강저에 비유한 것이다.

⑦작은 두 개의 원을 수평으로 둔 것은 두 개의 샘(泉)을 나타낸 것인데, 방편바라밀을 상징한다. 방편으로 중생을 성숙케 하여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이 마치 근원이 하나인 샘을 두 개의 샘으로 나누어 동서(東西)에 두루 편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좌우쌍정(左右雙井)에 비유한 것이다.

⑧작은 두 개의 원을 아래위로 둔 것은 앞과 뒤의 샘을 나타낸 것으로 원(願)바라밀을 상징한다. 일체의 불찰(佛刹)과 일체 중생의 바다에 큰 서원(誓願)을 가지고 편입하여 보살행을 닦는 것이 마치 앞과 뒤의 두 개의 샘에서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음료를 각기 얻는 것과 같으므로 전후쌍정(前後雙井)에 비유한 것이다.

⑨두개의 동심원과 그 내부의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이 도형은 집과 그것을 둘러싼 견고한 담을 나타낸 것으로 역(力)바라밀을 상징한다. 일체의 불국토에 정력(正力)으로 들어가 정등정각을 이루는 것이 마치 집과 담을 수리.축성하여 밤낮으로 순시하여 외침을 막는 것과 같으므로 탁환이주(卓環二周)에 비유한 것이다.

⑩큰 원 안에 세 개의 작은 원을 그린 것은 달 속에 별이 들어 있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지(智)바라밀을 상징한다. 삼세의 일체법을 여래의 지혜로 두루 깨우치되, 가로막는 것도 없고 거리낌도 없는 것이 마치 달이 별 무리들 속에 있으면서도 멀고 가까운 곳을 다 비치는 것과 같으므로 성중원월(星中圓月)에 비유한 것이다.


 

불이문을 지나 능파교 가기 전 왼쪽 언덕 위에 있는 봉황과 대방광불화엄경 석주

 

 

적멸보궁 가는 길의 만卍자 등의 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