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흔적을 나라, 교토에서

사흘째 - 이조성 ( 二條城, 니죠죠 )

보리숭이 2009. 1. 21. 16:03

이조성(二條城, 니죠죠)은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호리가와도리에 접해 있다. 원래의 건물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니노마루고텐, 혼마루고텐, 니노마루테이엔이 남아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쿄토에 오면 항상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의 원성을 피하고자 겉은 단순하고 평이하게 지었지만 그 내부의 화려함은 놀랄 정도이다. 

니죠죠(이조성)의 중심인 니노마루고텐은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6개의 홀이 있으며 각각 다른 높이로 지어져 있다. 또한 암살자나 침입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사람이 지날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나도록 설치하였다. 니노마루정원은 고보리엔슈에 의해 조성된 정원으로 1626년에 만들어 졌다.

보존상태가 좋아서 모모야마 시대, 에도시대의 서원 건축을 감상할 수가 있는 곳이다.

1867년 15대 장군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함에 따라 이조성은 정부가 가지게 되었으며 1884년 리큐(황궁에서 분리된 궁궐)로 바뀌었으며, 1993년 교토시로 하사되었다.

2003년 축성 400년을 맞이하였고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조성 회자

 

 

 

 

 

 

 이조성 문

 

 

 니노마루고텐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이 곳에는 중요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전되어 있었다.

니노마루고텐의 신기한 점은 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마루 바닥을 밟으면 꾀꼬리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이는 워낙 전쟁이 많이 나고 암살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니노마루고텐 바닥에 소리를 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니노마루고텐을 보고 나오면 잔디밭이 있는 정원쪽으로 오면  혼마루고텐(本丸御殿)이 있다.  

혼마루는 1626년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증축되어진 것으로 원래는 돌담위쪽으로 천수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낙뢰로 인한 소실로 지금은 계단만 있다.

현재 남아있는 혼마루도 큰화재로 소실된 후 교토고쇼(京都御所)에 있던 가쓰라궁(柱宮) 어전을 이곳으로 이축하여 만든 것이라 하는데 어전의 구조로는 완전한 형식이 보존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다.

예전에는 성내에 높이 우뚝솟아 장대함을 자랑하던 5층의 천수각이 있었는데 1750년 벼락으로 소실되었고, 1788년에는 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혼마루 궁전터로 남게 되었다.

 

니모마루

니노쿠루와, 산노쿠루와 등으로도 불린다. 니노마루, 산노마루는 혼마루의 부수적 역할을 담당한다. 규모는 대규모부터 소규모까지 여러 가지다. 대규모 구역인 것은 니노마루 어전이라 불리는 거주공간이 있으며, 정원을 두기도 한다. 산노마루에는 가신들의 무가 저택을 배치하였다. 이 구역들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이들 구역의 목적은 혼마루 방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혼마루(本丸)는 일본의 성의 중핵 구역의 구루와의 명칭이다. 이치노쿠루와(一の曲輪)·혼쿠루와(本曲輪)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중세성곽에서는 본성, 실성, 쓰메마루(詰丸) 등 성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근세이전의 성터 조사에서는 주곽 등으로 불린 적도 있다. 또, 이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사물의 본질, 조직의 중핵 등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혼마루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혼마루에는 혼마루 어전(本丸御殿)이라는 호화로운 건물을 세워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를 보던 곳으로 사용된 경우와 혼마루의 면적을 좁게하여 전시에 대비한 주곽으로써 역할을 강조한 경우도 있다. 주곽으로의 역할을 강조한 경우에는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의 정청은 니노마루·산노마루에 어전 건물을 두었다. 또,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에 오면 혼마루에는 일본 성의 상징인 건물인 천수를 세웠다. 혼마루 안 또는 혼마루와는 별도인 장소에 천수를 세운 소규모의 구역인 덴슈쿠루와 또는 덴슈마루를 두었다. 성의 혼마루도 가상학(家相學)에 따라 지어진 경두도 있다. 혼마루의 중심, 혹은 어전 건물의 중심을 중심으로 해 성의 정문인 오테 문을 남동쪽에 두었고, 귀문(鬼門)의 방향인 동북쪽에는 각을 두지 않게 모퉁이를 없애는 것을 좋게 여겼다. 더불어 천수와 천수대용의 3층 망루 등은 북서쪽에 세우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