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선구자(당시의 제목은 ’용정의 거리‘)’ 노랫말에 나오는 일송정,
혜란강, 용두레 우물, 용문교 등이 모두 용정시 소재지 안에 있으며 선구자 노래는 윤해영작사 조두남 작곡이며 연변조선족 자치주 내의 한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백두산과 용정의 일송정이라 하였다. 이러한 ‘선구자’ 노래비와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
시비가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여기 일송정 입구에 서 있었으나 조두남 작곡가가 친일가요를 작곡했다는 논란으로 현재는 그 시비가 철거되고 요즈음
여기서는 분위기 깨는 노래 1,2위를 ‘선구자’와 ‘보리밭’이 올라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시비 대신 2004년 4월에
이곳 연변작가의 시비로 교체 설치되어 있었다.
중국과 교류가 재개된 이후 중국 당국이 연변자치주내 한국의
민족혼 확산과 이로 인한 파장을 우려하여 일송정이 있는 비암산의 선구자탑을 제거하고 용정중학교내 윤동주 시비 건립 시 제막식 행사를 무산시키고
‘윤동주 생가 옛터’ 표식비를 강제로 철거를 하는 등 상당한 압박을 가하였으나, 이는 초기에 한국 측이 지나치게 옛 우리 땅에 집착함에
중국정부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이었으며 요즈음 들어서는 다시 복원할 것은 복원하는 등 일정 선을 지키는 추세로 들어섰다고
한다.
1999년 6월 오솔길을 따라 한 5분 정도 올라가니 우뚝 일송정 정자가 세워져 있고 근간에 새로
심은 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어설프게 서 있었다. 그때 어찌나 바람이 심하게 불던지, 모자를 손으로 다시 누르곤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난간에 서서 사방을 보니 멀리 안개 속의 용정벌과 들녘, 반짝거리며 굽이굽이 흐르는 혜란강, 그리고 용정시내와 혜란강 경기장 등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옛날 일송정에서 민족계몽과 항일운동을 위한 밀실회의가 있었다고 하니 그 뜨거운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 이곳을 들리신 박선생님의 말씀은 그 정자가 없어지고 위 상단의 사진과 같은 기념탑만 있다니 씁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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