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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로존, 어차피 붕괴할 거면 지금 무너지는 게 낫다

보리숭이 2012. 11. 16. 10:58

[칼럼 Outside] 유로존, 어차피 붕괴할 거면 지금 무너지는 게 낫다

  •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 회장
  • 입력 : 2012.08.24 13:56
유로존이 생존할 수 있을까? 만약 '유로존 붕괴'를 몇년 연장할 수 있을 뿐 궁극적인 파국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무너질 걸 알면서도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낭비를 초래한다.

독일이 막대한 부채를 지닌 유로존 주변국의 성장을 독려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부채 재조정 또는 다른 출구 전략(각국 화폐의 급격한 평가절하 등)이 아니다. 오로지 긴축 재정과 임금 삭감 같은 내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수조원의 유로를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물론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여러 국가와 투자자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투자자가 유로존 주변국 펀드, 은행, 기업 등에 대한 노출도(exposure rate)를 줄이고 자금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유로존의 정책적 신뢰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불필요한 자본 이탈(capital flight)이 지속할 텐데 공적자금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효과는 상당히 오랜 뒤에 나타난다. 최근까지 이런 공적자금은 주로 국가재정 지원을 담당하는 유럽안정메커니즘(ESM)과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이뤄졌다.

문제는 정치적 갈등을 겪는 독일이 재정 기반의 방화벽을 강화하지 못한 탓에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에 모든 권한과 역할이 몰려 조직이 폭발 직전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ECB는 회원국의 채권 매입을 시작으로 은행에 시시각각 유동성을 주입하고 있는데, 요즘엔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스페인이탈리아에 지원하려고 한다. 악성 부실 채권을 대량 매입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는 독일과 유로존 핵심 국가들이 공적자금 조달 창구를 ECB에 '아웃소싱'한 개념이다. 만약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유동자금이 부족하지만 잠재적인 상환 능력이라도 있었다거나 긴축 등 경제 개혁을 통해 부채 비율을 낮추고 경쟁력과 성장세를 높일 가능성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의 전략은 유로존이 생존하는 데 큰 문제가 안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출범할 수 있는 '재정동맹' 내지 '은행동맹'은 긍정적 변수로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유로존 주변국에 대한 대규모 공적자금 지원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한된 시간에 회복시키기 어렵다. 유로존 중심과 주변국의 정부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앞으로 고통스러운 불황이 발생하면서 복지 예산 등이 축소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할 안전장치도 없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극복해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

경제적 주체들의 대립과 깊어지는 불황, 돌이킬 수 없는 은행 시스템과 금융시장의 분열, 공공과 민간 부문의 지속적인 채무 부담, 기세 꺾인 성장세, 경쟁력 확보를 위한 내적 평가절하 등에 따른 재정 능력 저하, 유로존 주변국에 공적자금을 대는 중심국과 주변국의 정치적 충돌, 나라마다 다른 비대칭적(asymmetrical) 재정 및 금융 정책에 대해 인내를 잃은 시장과 투자자, 극심한 긴축 정책에 따라 쌓인 유로존 주변국의 피로도 등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분열하는 유로존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유로존 주변국을 위한 독일과 ECB의 대규모 공적자금 정책은 각국 주요 중앙은행의 재정 상태를 파괴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용 부도 위험이 점점 구체화할 경우 이미 막대한 부채 때문에 고통받는 유로존 국가에 큰 위협이 된다. 유럽연합(EU)의 존재 자체에 의문부호가 달릴 수밖에 없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질서정연한 분리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 당장 유로존을 분리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유로존 주변국의 부채와 그동안 이들을 도운 중심국들의 '손해 배상'요구들을 종합한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국제적 규모의 '채무 조정 회의'를 수차례 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2년 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수조원의 유로를 낭비하게 되고, 향후 단일 시장의 붕괴에 따른 파괴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무질서한 붕괴를 피하고 싶다면 불필요한 연장은 더 큰 낭비를 불러온다.

현재 유로존의 중심 정치 세력은 조기 붕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독일과 ECB는 시간을 벌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에 의존하면서 위기 탈출을 희망한다. 대규모 붕괴에 따른 초대형 위험이 예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로존은 똑같은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오로지 시간만이 유로존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옳은 판단이었는지 분명하게 알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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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가시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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