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탑의 땅 미얀마

미얀마 기행문 1일째/ 인천에서 양곤까지 - 유선철

보리숭이 2011. 2. 12. 23:57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 글쓴이 유선철 / 인천 - 양곤

 

“당신은 왜 여행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 살아있음을 느끼기,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일상의 소중함 깨닫기, 재충전, 해방감, 나를 찾기, 영혼의 정화, 나를 둘러싼 장벽 허물기,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삶에 대한 성찰, 새로운 것과의 만남, 도전 정신 기르기, 사랑하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 추억 만들기, 자연의 소중함 깨닫기, 겸손과 감사의 마음 배우기, 세상과의 소통......

(여행의 숲을 여행하다/ 김재기 저)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이다. 이 단절은 현실을 잠시 잊고 새로운 세계에 몰입하게 한다. 여행하는 동안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과 유적과 풍경들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설레임과 그리움을 안겨준다. 이것이 재충전이다. 방학이 되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것은 잠시라도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함이다. 눈 앞의 현실과 그것으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재창조라는 변증법이 숨어있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기대와 긴장을 가져다주고 길거리와 시장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 이방인과의 소통은 호기심이 발동되어 흥미롭고 친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오래도록 남는 이야깃거리...... 그래서 여행은 계속 되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금강회에서 정한 목적지는 미얀마이다. 여행기간은 2011년 1월 23일부터 1월 29일 (5박 7일)이다.

 

어느 절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탑이 많은 불교 국가, 미얀마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가볍게 흘려버렸었다. 뭐 그리 대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탑만 많이 있다면 참 지루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미얀마의의 살림살이가 우리보다 못하다는 알량한 생각도 있었음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미얀마는 처음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금강회에서 일본의 고찰을 순례한 후에 미얀마에 가기로 정했으므로 그냥 따르게 된 것일 뿐.

지도법사 흥선스님께서 불교중앙박물관장으로 부임하시는 바람에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처음 여행을 신청한 사람은 20명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안호대, 이수희 법우님과 박병희 법우님의 어머니와 딸, 김창순 법우님이 안타깝게도 명단에서 이름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유선철, 이금미, 백승환, 정경지, 이경택, 윤미영, 권오웅, 류연식, 김정희, 양정민, 고한희, 권영단, 이필임, 이정수 법우님의 14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여행사는 투어미얀마, 현지 진행을 중심으로 하는 랜드여행사이다. 그래서 다른 여행사보다 많이 싼 경비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서울사무소 송경필 소장님과 많은 통화를 했는데 아주 친절하고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키도 크신 분이라는 상상을 했었는데 출발 당일에 만나 보니 생각과 달리 나보다 젊은 분이었다.

이번 여행은 준비 과정이 특히 어려웠다. 무엇보다 항공권을 구하기가 힘들어 일정을 미루게 되었고 그 바람에 결원도 많이 생기게 되어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미얀마!

1983년 우리나라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 국립묘지에 참배했을 때 북한 공작원이 미리 설치해놓은 폭발물이 터져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16명이 순직했던 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로 유명한 나라, 국민 대부분이 불교를 믿고 있는 황금 불탑의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미얀마이다.

공식적인 국명은 미얀마 연방공화국, 어릴 적 지리책에서 버마라고 배운 나라이다. 1988년 민주화 시위 이후, 1989년 미얀마의 집권 군부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민족도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반체제인사들은 군사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부로는 태국 및 라오스, 북부로는 중국, 서부로는 인도 및 방글라데시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67만k㎡로 한반도의 약 3.1배에 해당하며 수도는 네피도이다. 인구는 5,600만명이고 종족은 버마족 68%, 소수족 25%, 기타(중국, 인도 등) 5%이다. 종교는 불교가 89%를 차지하고 있다.

 

1월 23일 오전 4시 김천고등학교 정문에서 인천공항을 향하여 버스가 출발했다. 전날의 불면 때문에 모두 까칠한 얼굴이었으나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에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가는 길에 잠시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고한희 법우님이 보시하셨다.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했는데, 우리 회에서 조화를 보내주어 고맙다고 아침을 사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전 8시가 못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3층 J카운터에서 송경필 소장을 만나 여권과 탑승권을 받고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투어미얀마 본사에 전해줄 컵라면 등 5박스의 물품과 미화 3,700불을 전달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에 송금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 출국 심사를 마치고 잠시 면세점을 둘러본 후 타이항공의 TG629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3시간 반을 비행하여 홍콩을 경유한 후 현지시간 16시 45분에 방콕에 도착했다.(한국보다 2시간 느림) 지체할 틈도 없이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환승하였는데 한 시간 정도를 비행한 후 양곤의 밍글라돈 공항에 현지시간 17시 10분에 도착했다.(한국보다 2시간 30분 느림)

공항에는 허철 이사와 직원들이 나와 한국에서 보내온 물품들을 받아갔다. 박순호 가이드 -투어미얀마의 이사- 의 안내로 버스에 올라 저녁 식사를 한국인 식당에서 하게 되었다. 상추쌈과 된장국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세도나 호텔로 향했다. 대형풀장이 있고 336실을 갖춘 고급 호텔이다. 내일 아침에는 바간으로 이동한다. 이동 수단은 항공기이다. 이번 여행에서 지역 간 이동하는 로칼 항공을 네 번이나 이용하게 된다.

 

                                                                        양곤 세도나 호텔 뒷쪽 정경

 

성공적인 여행은 동행하는 사람들이 좋아야 하며, 볼거리, 잠자리, 먹거리가 좋아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가이드가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여행 전체가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만다. 이 모두를 만족하는 여행을 하기는 극히 어렵다.

그 동안 금강회는 2002년 7월 중국 구화산-항주-소주-상해 여행을 시작으로 2004년 1월 앙코르와트-베트남, 2006년 1월 인도 불교성지, 2007년 8월 실크로드, 2009년 1월 일본 나라-교토를 다녀왔다. 그 중에서는 앙코르와트-베트남 여행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2011년 1월 미얀마는 여섯 번째 해외 성지 순례이다. 햇수로 10년, 방문국 6개국, 여행 기간 총 46일, 참가 인원 총 122명(중복 포함)이다. 여섯 번째의 여행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가?

 

사실 미얀마에 도착해서도 우리 여행이 이렇게 풍성하고 만족스런 여행이 될 것으로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보니 박순호 가이드는 무언가 달랐다. 손님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대하는 듯 했고, 한 번 보고 말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볼 사람처럼 우리들을 이끌었다. 사람 사이에서 감동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우리들은 적지 않게 놀라고 그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인생 경험, 실패와 좌절의 역정, 다양한 직업, 해박한 지식, 놀라운 화술, 훌륭한 법문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덕분에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는 말에 대해 더욱 공감하게 되었고 인간과 삶과 세계에 대해 깊게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거듭 두 손 모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쩨주 띤 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