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

전북 부안 개암사/전남 함평 용천사 석등

보리숭이 2010. 10. 5. 01:34

글쓴이 : 별꽃 원글보기

답사 전날에 많은 비가 내렸다.

전남 함평까지 가는 답사 걱정으로 밤새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잠을 깨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는 아침 6시 반경 변산반도 부안을 향하여 출발했다. 

이번 답사 주제는 <석등>이다. ‘무명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라는 부제로 우리 스님이 몇 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곧 <석등>책을 세 권 분량으로 낼 예정이다. 여름방학 때 스님이 보내주신 <석등> 원고를 읽어보니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함평 용천사 석등과 꽃무릇이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대로 답사지가 결정되었다.

용천사에 전화를 거니 꽃무릇 축제는 추석을 전후해서 끝이 났지만 아직도 한창이라고 한다.

고속도로와 산야는 비에 씻겨 청정했고 연두색에서 황금빛으로 건너가는 들판에 코스모스와 억새와 금강아지풀, 여뀌, 고마리가 하늘의 별처럼 곱게 빛났다.

 

 

 

첫 답사지는 부안의 개암사이다. 두 개의 우람한 기둥에 오색의 용들로 휘황하게 감싼 높다란 일주문이 눈에 거슬린다. 새로 쌓은 석축계단도 과도하게 높다랗다. 계단 올라가는 오른쪽에 새로 만든 아기자기한 차밭이 마음을 달래준다.

계단을 오르자 힘센 장사가 밀어서 두 쪽으로 쪼개진 듯한 거대한 울금바위 아래 대웅보전의 단정한 모습이 경쾌하다.

어쩜 저리도 대웅보전이 울금바위와 멋들어지게 잘 어울릴까? 볼수록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 후 반야심경 독송을 함께 했다. 회장님이 레이저 포인트로 우리나라 목건축에 대해 설명했다. 기둥과 보와 도리, 공포의 출목, 소로, 첨차, 살미, 충량과 퇴보와 우미량, 고주와 평주에 대해서 실물을 짚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그 생경한 단어를 처음 접하고 몇 년이 지난 이제야 단어의 개념들이 비교적 또렷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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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우리 스님이 말씀하셨다.

“개암사 대웅보전은 좋은 법당입니다. 개암사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위치입니다. 디테일도 소중하지만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이곳에 법당을 낙점함으로 행복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산의 핵심 되는 곳에 자연과 인공의 기막힌 조화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 대웅보전을 땅 끝에 있는 해남의 미황사와 창녕의 관룡사 위치와도 비교해보세요.  

 

 

 

 

 

 

 

 대웅보전의 꽃살창과 공포도 눈여겨보세요. 공포는 앞면과 측면과 후면이 다 다릅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빈자의 미학이지요. 앞면처럼 멋있게 꾸미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앞쪽에 공력을 쏟은 것입니다. 여기는 옛날 백제지역입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법당이라도 신라지역이었던 경상도와는 건축이 많이 다릅니다. 경상도 지역 건축이 구조적이고 무뚝뚝하다면 전라도 지역은 공예적이고 기교적입니다. 의장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근처 선운사 참당암과 숭림사에도 그런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공포를 꼼꼼히 보세요, 주두는 연꽃 모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고, 첨차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소로는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조각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화사합니다. ”

너른 마당에는 여기저기 배롱나무가 아직도 꽃숭어리를 달고 있고, 약간의 단풍물이 든 나뭇가지의 잎새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사월 초봄 같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두 번 째 답사지인 함평 용천사로 향했다.

함평군으로 들어서니 도로 양쪽으로 진다홍 꽃무릇이 좌악 깔렸다. 밭두렁에도 논두렁에도 언덕배기에도 꽃무릇 천지이다. 절정은 넘어섰지만 아직도 불타는 오후의 햇살마냥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용천사에 도착했다. 주차장 근처부터 꽃무릇이 융단처럼 불타듯 지면을 덮었다. 사천왕문 올라가는 돌계단 양쪽이 가장 넓은 꽃무릇 군락지 같다. 꽃무릇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아 피안화(彼岸花)라고도 불린다고 하니 이곳이 바로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석등>원고에서 읽은 용천사 석등은 대웅전 오른쪽 꽃무릇 밭에 그린 듯이 얌전하게 서있다.

대웅전 법당에 올라가서 참배 후 반야심경 독송을 한 후 점심 공양시간이 되어서 공양간으로 갔다.  


정갈한 점심을 맛나게 먹고 설거지를 하고 2층 누각으로 올라갔다. 활짝 열린 누각의 바라지창으로 꽃무릇 속에 파묻힌 용천사 석등이 보였다.

우리 회원들은 바닥에 편안히 앉고, 스님께서는 자신이 쓴 용천사 석등 글을 낭랑하게 읽으셨다. 우리 집에 있는 대원사에서 나온 <석등>책 표지에는 이 용천사 석등이 올라와있다. 우리나라 전통 양식인 팔각간주석 석등이 아닌 사각의 석등양식이 몹시 낯설어 중국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석등양식인 줄 알았다. 스님은 용천사 석등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조선다운, 조선적인 석등이라고 하신다.

스님이 읽으신 ‘용천사 석등’ 글 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1. 하대석의 열두 장 연꽃잎이 심심한 동치미 국물 같은 그런 맛, 순전히 ‘조선표’ 연꽃이며,

2. 간주석의 발발 기어오르는 자라, 화사석의 덩굴무늬, 지붕돌의 공포를 조각한 것을 들여다보면 석등을 만든 장인이 참 곰살맞은 면이 적지 않은 것 같고,

3. 용천사 석등 상륜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은 석등사의 일대 사건이며,

4. 간주석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평범한 서민 대중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것이다.


5쪽 이상의 글을 다 읽으신 후에 스님은 우리들을 보시면서 “여기 용천사 석등과 무안 법천사 석등과 여수 흥국사 석등은 모두 OOO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누구 지학 전공자 없습니까? 오늘 용천사 석등을 보고 무슨 돌로 만들었는지 꼭 밝혀내세요” 하신다.

지구과학 전공인 내 가슴이 놀라서 ‘쿵’ 하고 소리가 났다.

 

 

 

 

 

 

 

 

 

 

 절에서 내온 절편을 먹고는 부리나케 석등 쪽으로 달려갔다.

사진으로 보아서 짐작한 데로 퇴적암 계통의 역암 같은데 색깔은 회색이 아니라 연한 쑥색으로 특이하고, 지붕돌은 현무암처럼 구멍이 벌집처럼 숭숭 뚫려서 화산암인가 싶기도 하다. 회원님들이 무슨 돌이냐고 내게 눈길을 보내는데 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재숙 선생님과 심사숙고한 끝에 역암이라고 결론지었다. 쑥색을 가지는 섬록암 계열의 돌이 풍화작용으로 부스러져 주변 자갈과 섞여서 퇴적되었는데 지붕돌의 구멍은 비바람에 씻겨서 자갈이 떨어져나간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지었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대웅전의 계단과 소맷돌, 대웅전 기단의 일부, 그리고 괘불대도 동일한 돌로 만들었다. 샘플을 가지고 연구해보고 싶다고 하자 김인수 법우님이 세 조각의 돌맹이를 갖다 주었다. 이 돌을 주변 지학선생님께 보내서 자문을 구하고 함평 군청에도 전화해서 문의해보아야겠다.

석등 안내판에는 석등 재료가 쑥돌(화강암)이고 석등의 간주석에 발발 기어오르는 동물은 자라가 아니라 거북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