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마당쓸기

보리숭이 2010. 6. 9. 07:23

마당쓸기.


조병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일이 마당 쓰는 일이다.

마당이래야 울타리를 제외하고 예닐곱 평 정도이지만 동이 틀 무렵 마당을 쓰는 재미가 쏠쏠해서 아직까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물려 주지 않았다. 간혹 몸이 아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아내가 마당을 쓴 일은 몇 번 있었지만 웬만하면 마당 쓰는 일은 내가 하려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당 쓰는 일에 집착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궁시렁거린다. 그 바쁜 아침 시간에 하고 많은 일들을 마다하고 마당 쓰는 일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하다. 비가 와도 우비를 입고 마당을 쓸 정도였으니까. 아내가 아니라 남들이 봐도 비옷을 입고까지 마당을 쓰는 나의 모습은 가관이리라. 아는 사람들은 맞대 놓고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빈정댈까? 짐작은 간다. 그러나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마당을 쓸면서 느끼는 운치가 매양 달라서 좋다.  겨울은 겨울대로 마당 쓰는 재미가 너무나 쏠쏠하다고 한다면 과연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한 때는 마당 쓰는 일이 대수는 아닌데 이런 하찮은 일에 왜 집착을 하는가 반문한 적도 있었다.

 시골에 살 때는 개념도 없는 그 넓은 마당을 무시로 쓴다는 일이 부모님의 채근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재미가 없었다. 늦가을 아침 플라타너스 흩날리던 학교 교정을 쓰는 일은 또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던가? 졸병 때 눈 내린 군대 연병장을 쓰는 일은 고역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이렇게 마당 쓰는 일을 좋아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집 마당은 담이 없다. 아니 담이 없다기보다 나무로 심어진 울타리가 담이다. 마당이라고 해봐야 예닐곱 평 남짓한 땅에 갖가지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목련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잣나무, 소나무, 향나무에서부터 쥐똥나무, 페리칸사스, 남천에다가 백장화 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야신스, 메발톱꽃하며 초롱나무, 하다 못해 더덕까지 심어 놓았다.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과 잡목들이 심겨진 울타리가 담이다 보니 사시사철 꽃잎이며 나뭇잎이 떨어져 마당은 늘 어지럽다. 우리 집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옆에 있어 하루라도 마당을 쓸지 않으면 폐가처럼 보여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봐 그게 싫어서 맨처음에는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마당을 쓸다 보니 맨처음에는 하찮은 쓰레기로 보이던 나뭇잎과 꽃잎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나뭇잎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꽃잎이 꽃잎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뭇잎까지 꽃잎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마당을 쓸면서 울타리에서 피고지는 나뭇잎과 꽃잎들의 변화를 해가 뜰 무렵 관찰하는 일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새벽 는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피어나는 나뭇잎의 숨결과 몸결. 밤새 응축된 이슬 방울이 떨어지거나 터질새라 온몸의 솜털을 세우고 숨죽이며 피어나는 갖가지 꽃잎들. 아침햇살이 반짝일 때면 이슬방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면서 약간의 흥분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꽃잎들의 움직임을 보는 아침은 가히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묘미를 모르리라.

 울타리의 열매를 쪼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새들의 날개짓에 이리저리 흩어지는 나뭇잎을 쓸어 모으고, 정갈하게 빗질된 땅의 결에 사뿐히 내려 앉은 햇살을 쪼는 새들의 즐거운 노님을 바라보는 것, 이 모든 것이 마당을 쓸면서 아침을 맞는 나만이 아는 은밀한 즐거움이리라.

  또 있다. 마당을 쓸면서 봄이 되면 뚝뚝, 육중하게 떨어지는 목련 꽃잎의 그 처연함을 쓸어 담을 수 있어 좋다, 하얀 앵두꽃잎의 하늘거림을 온몸으로 받으며 비질하던 순간의 정적도 좋다. 여름이면 밤새 내린 소나기에 떨어진 나뭇잎과 꽃잎을 쓸면서 생긴 대빗자루의 결따라 흐르는 빗방울의 움직임도 좋다. 가을이면 마당을 쓸 때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들의 스산함이 좋고 겨울이면 대빗자루에서 일어나는 바람보다 더 큰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 때의 그 기상이 좋다. 눈이라도 쌓인 날이면 비질할 때 느껴지던 사뿐한 눈의 감촉이 또한 좋다. 쓰르륵쓰르륵. 싸락싸락. 계절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대빗자루의 변화무쌍한 소리도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벽에 세워 두었던 장대빗자루에 내려 앉은 이슬을 털며  마당을 쓴다.

 

풍성하고 촘촘했던 대빗자루가 살이 다 닳아 잔대만 남고, 중심을 잡기 위해 끼워두었던 굵은 대나무 손잡이가 빤질빤질해질 때까지 나는 마당을 쓸 것이다. 세월따라 늙은 여윈 몸 비틀며 성근 대빗자루 사이로 빠져 나간 젊음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마당을 쓸 때마다 만지작거리며 묻은 장대비의 손때를 사랑하며, 잔대를 골라 쪄서 말린 시든 댓잎을 시름 털어내듯 훌훌 털어내며 빗자루를 엮고 또 엮으며, 그래도 마당을 쓸 기력이 남아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맞으며 나는 내일도 모레도 마당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