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한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됐으며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중건, 대사찰이 되었다.청평사는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다. 청평사는 댐이 생긴 이후 더욱 유명해진 사찰이다. 소양댐에서 배로 15분 걸리는 "섬 속의 절"이다.각종 교통편을 갈아타는 재미 때문에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인기를 끈다.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소양댐까지 온 다음 청평사행 배를 타는 것이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를 풍기는 청평사 위로 우뚝 솟은 오봉산(779)은 아기자기한 암릉길 스릴속에 바위 봉우리 아래 소양호가 펼쳐져 있어 산행후 관광과 뱃길의 재미까지 겸할 수 있어가족산행지로도 제격이다. 청평사의 현존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삼성각, 회전문(廻轉門,보물 제164호), 서향원, 청평루, 적멸보국, 해탈문, 큰방, 요사채 등이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강원도문화재자료 제 8호인 삼층석탑(공주탑)을 비롯하여 진락공부도(眞樂公浮屠), 환적당부도(幻寂堂浮屠) 및 고려정원(高麗庭圓)이 있다. |
청평사는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 공주를 사랑했던 한 청년이 신분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어 뱀으로 부활. 공주의 몸을 감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밥을 구하러 간 공주를 찾아 청평사 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벼락을 맞고 죽었다고. 계곡 한 켠에서 그 전설을 담은 공주의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당나라 공주를 사모하던 한 평민 청년이 있었다.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자
홀연히 한 마리 뱀이 나타나 공주의 몸을 감아버린다.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염험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하니 한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선다.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죽은 뱀은 빗물에 떠내려 갔다. 공주가 밥을 얻어 가지고 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깜짝 놀랐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므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한 웅덩이를 공주탕,
삼층석탑이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거북바위
구성폭포(九聲瀑布)
원래는 구송폭포(九松瀑布)인데, 와전되어 구성폭포로 불린다고 한다.
- 구성폭포의 유래 -
"약헌유고" 등 옛 문헌에 보면 아래, 위 폭포를 한데 묶어 이단(이층)폭포, 형제폭포, 쌍폭(상하) 그리고 구송폭포 등으로 불렀다.
다만 다산 정약용은 상폭을 구송정폭포, 하폭을 경운대폭포로 각각 불렀다. 원래 아래 폭포의 반석과 구송대(九松臺)사이에
아홉 그루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구송(九松)이란 접두어가 붙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아홉가지 소리의 구성(九聲)으로 와전되어
구성폭포(九聲瀑布)라 잘못 부르고 있다.
구송폭포 상폭은 갈수기에만 쌍폭으로 흐르지만 아래폭포는 항상 두 갈래로 흐른다.
현재 위의 폭포를 구송폭포, 아래폭포를 쌍폭이라 부르고 있다.
고려정원(高麗庭圓)- 영지
청평사 영지(影池)는 이곳에 은거하며 평생을 보낸 이자현(李資玄)이 만든 정원에 속하는 것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못 안에 3개의 큰 돌을 배치하여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변화감을 더해 주고 있다.
상사뱀이 벼락을 맞았다는 전설이 담긴 보물 제164호 회전문은 사찰의 중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1545년~1567년경 보우선사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이다.
문이 움직이거나 회전 장치가 없음에도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된 회전문은 윤회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생들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기도 하다.
1936년 일본인에 의해 해체·수리된 바 있지만 다행히 한국전쟁시 파괴되지 않은 것을 1963년 문화재로 지정된 후 몇 차례의 보수를 하여 지금에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회전문을 들어서면 대웅전이 보이고 그 뒤로는 한국전쟁시 전소된 것을 1976년에 재건한 극락보전이 있다.
'사찰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길상사의 관음보살상의 향기 & 제3의 눈 (0) | 2010.03.15 |
---|---|
금릉 광덕동 석조보살입상 (0) | 2010.02.28 |
고전평론가 고미숙 초청 강연회 (0) | 2009.09.29 |
고전평론가 고미숙 초청 강연회-직지사 금강불교회 창립 23주년 기념 파이2 (0) | 2009.09.29 |
고전평론가 고미숙 초청 강연회-직지사 금강불교회 창립 23주년 기념 (0) | 2009.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