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議事妨害演說, filibuster, 필리버스터]
조선일보 2009년 1월 7일 사설
6일자 아침 신문에 실린 강기갑 민노당 대표(경남 사천)의 연속 사진 속 모습은 영락없는 저잣거리 잡배(雜輩)의 난동이었다. 강 대표는 5일 국회사무처 경위들이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던 민노당 당직자들을 해산하자 국회 사무총장실로 쳐들어가 책상 위 전화기며 메모지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탁자를 뒤엎으려다 안 되자 탁자 위에 올라가 찻잔을 발로 걷어찬 뒤 발을 굴러 펄쩍펄쩍 뛰었다. 국회의장실로 돌진하면서는 쇠로 된 경계 표시 봉을 치켜들었다. 그는 "의장 나와"라고 고함을 치며 의장실 문을 걷어찼다. 강 대표의 '무뢰배(無賴輩) 소동'은 20분이나 계속됐다.
민노당 국회의원은 5명, 국회 전 의석의 1.7%이다. 대한민국 입법부가 이 미니 정당의 무뢰한 대표의 발 아래 철저하게 짓밟혀 버렸다. 민주당도 지난 20일 동안 해머까지 동원해 상임위 출입문을 뜯고 책상과 유리창을 박살내며 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이런 무법(無法)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실상이다. 국회를 마비시킨 민주·민노당의 국회의원을 합쳐봐야 의석의 3분의 1도 안 된다.
의회의 의사 결정은 최종적으론 다수결(多數決)로 한다. 세계 모든 국회의 원칙이다. 다수결이 만능이어서가 아니라 다수결이 아니면 국회가 의사를 결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수결이 작동하지 않는 의회는 결국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선진국 의회들도 소수의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는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의회도 폭력은 용인하지 않는다. 다수결만으론 소수 의견을 충분히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합의(合意) 시스템으로 때로 소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긴 하지만, 의회의 궁극적 작동(作動)원리는 다수결 이외엔 없다. "민주주의는 최악(最惡)의 제도이지만 현존(現存)하는 어떤 정치제도보다도 낫다"는 처칠의 말은 다수결원리에도 적용된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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