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흔적을 나라, 교토에서

[스크랩] 기행문 3일째/ 교토 청수사 - 이금미

보리숭이 2009. 2. 1. 20:51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3일째)

여행지:  교토 청수사      글쓴이: 이금미

 

청수사(기요미즈데라)--맑은 샘을 찾아가라


천 년 전 시공간의 문을 열고 장대한 일본 역사의 대하를 거리낌 없이 연일 쾌속 질주했다.

바람은 잠잠했고, 반야용선을 타고 도솔천에 온 듯 안락하고 화기애애한 여행이다.


극락세상을 사바세계에 재현한 봉황당, 금빛 찬란한 금각사를 둘러보고 들뜬 마음으로 용안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금각사에 이어 은각사도 보려고 했었다. 일본에 와서야 은각사가 수리 중이어서 대신 용안사를 보려고 한 것이다.

용안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텅 비어서 내부 수리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김과장님이 추천한 33간당으로 가니 그 또한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찍 문을 닫았다.

여행 오기 전 <일본의 건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鬼斗(오니도)’를 처음 사용했다고 해서 기대했던 절이 당초제사인데 그 절도 수리 중이라서 보지 못했었다.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여행은 여지를 남겨두라.”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지가 남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여행이고 인생인가 보다.


아쉬운 한숨을 쉬면서 황망한 마음으로 다음 날 예정지 인 청수사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본 평지 사찰과는 달리 산중 사찰이다. 청수사 가는 길 양 쪽으로는 우리나라 인사동 골목 같은 전통적이고 세련된 가게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이다. 길을 잃지 않도록 김과장님은 청수사 오가는 길을 꼼꼼히 일러주었다.

 

 

청수사는 교토 제일의 관광명소로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물이 들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청수사는 780년에 당나라 승려 엔친이 세웠다고 하지만, 실은 백제계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万呂, 758-811)의 개인 절로 출발했다고 한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의 역사를 여기서도 보게 된다.

다무라마로는 환무(桓武)천황 때 장군으로 역할하고 있었다. 다무라마로는 엔친 스님의 영향으로 불교를 믿게 되고 살생을 중지하고 함께 관음사 인근에 북관음사를 건립한다. 이 절이 후에 청수사가 된 것이다. 


대부분의 청수사 자료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엔친스님이 꿈속에서 ‘맑은 샘을 찾아가라’는 계시를 받고 오토와폭포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수행 중인 한 도인에게서 영목을 받았는데, 이것으로 천수관음상을 조각하여 도인의 옛 암자에 받친 것이 이 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현재 폭포 제단에 모셔져있는 분은 쿠리카라 부동명왕이다. 이 분은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모습이라 하는데 일본 절에는 이 부동명왕이 많이 보인다.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이요, 십일면관음보살이다. 어떨 때는 한없는 자비의 화신으로, 어떨 때는 분노의 화신인 부동명왕으로 나타나신다.

지금의 청수사는 1633년 에도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국보인 본당과 중요문화재가 15개나 되는 웅대한 절이다.


주홍빛 단청을 산뜻하게 칠한 인왕문을 지나서 오르막길을 오르자 역시 주홍빛 단청을 입힌 개산당이 나왔다.

개산당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안호대 회장님이 “저 건물 안에는 백제인 3세인 개산조 부부 좌상이 있는데 그 분의 이름은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예요.”하셨다. 무려 11자나 되는 긴 이름이다. 하긴 그 긴 금강경을 안보고 독송하시는 회장님이 아니신가?

 


위용을 자랑하는 본당의 지붕은 불그스레한 편백나무 껍질로 층층이 덮였다. 이런 지붕을 ‘히와다부키’라고 한단다.

본당은 앞무대가 절벽에 걸쳐져있다. 높이 15m의 느티나무 기둥 139개가 무대를 떠받치고 있다.

본당의 독특한 건축구조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법화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푸른 바다에 높이 솟아오른 산에 사신다고 한다. 무대조는 바로 관음이 사는 산과 절벽의 모습을 나무 축대로 표현한 것이다. 

 

“청수사 난간 뛰어넘기”란 속담이 있다. 이는 청수사의 아찔한 난간을 뛰어넘듯 위험한 일을 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널찍한 본당 한 쪽에 쇠로 만든 육환장이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가 세워졌있다. 무거운 육환장을 드는 사람은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윤미영선생님이 육환장을 먼저 들어 올리고 그 다음에 내가 들어올렸다.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두 번이나 힘차게 들어 올려 ‘쿵쿵’ 쇠절구 찧는 소리가 났다. 그 뒤에도 금강회원님들이 서로 육환장을 들어 올리느라고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회원님들 모두 이루고 싶은 절절한 소원이 얼마나 많으랴!


신발을 벗고 본당 안에 들어갔다. 본존불인 사십이면천수관음보살님은 친견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올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공개를 한단다. 그래도 남편과 함께 삼배를 올리고 본당 위 ‘지주신사’로 올라갔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신사 마당에는 밧줄로 윗부분을 두른 두 개의 돌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LOVE STONE"이란다. 눈을 감고 걸어서 반대편 돌에 무사히 도달하면 연인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남편과 다정히 팔짱을 끼고 두 개의 돌을 오가면서 내생에도 소중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더 열심히 공부하기를 빌었다.

지주신사 내려오는 길에 기모노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를 만나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지주신사 밑에 있는 백체지장전, 아미타당, 석가당을 둘러보고 세 줄기의 약수물이 떨어지는 오타와폭포물을 받아먹었다.

김과장님 설명에 의하면 왼쪽은 장수, 중앙은 연애, 오른쪽은 학업성취에 좋다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다란 자루가 달린 스텐 물통에 넘치도록 물을 받아서 단박에 다 마셔버렸다. 어찌나 물맛이 좋은지 소원 비는 것을 깜박 잊었다. 다행히 홍석규법우님이 200엔을 주고 산 컵에 물을 받아왔기에 몇 모금 얻어 마시면서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과 스님, 그리고 금강회원님들 세세생생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져서 열반의 언덕에 함께 오르지이다.”

출처 : 금강불교
글쓴이 : 상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