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7일 토요일 (3일째)
여행지: 교토 이조성 글쓴이: 윤미영
니죠죠(二條城, 이조성)
니죠죠(二條城, 이조성)는 무가 풍조 건조물 건축양식으로 1603년에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수도 헤이안의 수비와 쿄토방문 시 숙소로 이용하기 위해 1602년 성곽을 두르고 1603년 지금의 니노마루(二の丸)를 지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오면 항상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의 원성을 피하고자 겉은 단순하고 평이하게 지었지만 그 내부의 화려함은 놀랄 정도이다.
보존상태가 좋아서 모모야마시대, 에도시대의 서원 건축을 감상할 수가 있는 곳으로 평지에 성을 쌓으면서 석축과 해자로 안전을 도모한 성으로 동서로 480m, 남북으로 360m 크기의 규모이며 원래의 건물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니노마루고텐, 혼마루고텐, 니노마루테이엔이 남아 있다.
에도막부의 마지막 장군 15대 토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 1837-1913)가 1867년 다이센호칸(막부 정권 반환)으로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함에 따라 이조성은 정부가 가지게 되었으며 1884년 리큐(황궁에서 분리된 궁궐)로 바뀌었으며, 1939년 124대 쇼오와천황(昭和天皇 1901-1989)이 이조성을 교토시에 기증하면서 이듬해부터 일반에게 공개 되었다. 1994년에는 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고, 2003년 축성 400년을 맞이하였다.
■ 니노마루 고텐(二の丸 御殿) <국보>
모모야마시대 무가풍 서원 양식 궁전건축물로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고 이곳에는 중요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전되어 있다
건축면적은 3300㎡, 방의 수는 33개, 다다미는 800장 정도이며, 각 방은 당대 최고의 궁중화가였다는 카노파(狩野派)가 직접 그린 화려한 장벽화(후쓰마에)로 방의 목적에 맞춰 장식되어 있다.
니노마루고텐의 신기한 점은 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마룻바닥을 밟으면 꾀꼬리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이는 워낙 전쟁이 많이 나고 암살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니노마루고텐 바닥에 소리를 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각 방은 어용화단인 수야파(狩野派)의 화려한 금빛 후스마(襖, 칸막이 그림)로 장식되어 있다. 또 란마의 조각, 금으로 장식물 및 중방(나게시) 등을 눌러 만든 꽃모양 못가리개 하나노시가타는 금 장식품을 더욱 화려하고 호화롭게 한다. 그리고 궁전의 동북쪽에는 부엌과 목욕실(오키요토코로) 등이 있으며, 모두 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구루마요세를 시작으로, 토오자무라이, 시키다이, 오오히로마, 소테츠노마, 구로쇼인이라고 하는 6개 건물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쭉 복도로 연결되어 각각 다른 높이로 지어져 있다.
우리 일행이 신발을 벗어 놓고 마룻바닥으로 된 복도를 따라 한 바퀴 돌며 관람했다.
그저 바쁘게 따라다니느라 자세한 설명도 못 듣고,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고양이처럼 생긴 호랑이와 잔뜩 크기만 했던 소나무 그림은 우리나라의 인자한 호랑이와 고고한 소나무 그림과는 격이 달랐다. 호랑이는 일본에서는 살지 않던 동물이라 상상해서 그렸기에 모습이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산성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성 밖의 해자(垓字)와 꾀꼬리 소리가 나는 마루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꾀꼬리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굵직굵직한 그 많은 기둥에서 트거나 금이 간 나무를 하나도 볼 수가 없었고, 자국에서 질 좋은 거대한 목재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부럽고 또한 그 목재를 다루는 기술이 범상치 않음에 놀라웠다
니죠죠는 사신이나 장군 등 방문객들의 숙소로 사용하였기에 침입자나 암살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걸어 다닐 때 꾀꼬리 소리가 나도록 한 장치와 미로처럼 꾸며 놓은 건물 배치와 방과 방 사이의 비밀 무사를 숨겨두는 비밀 벽장과 그들이 다니는 여러 비밀통로 등은 그들의 과거 또한 전쟁과 살육의 역사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는 듯하다.
세상 권력을 다 가진 자도 자기 목숨 하나는 내 뜻대로 하지 못함은 ‘하늘의 이치’랄까?
■ 니노마루 테이엔(二の丸 庭園) <특별명승>
니노마루 정원은 서원조 정원(書院造庭園)이다. 예로부터의 정원조성 기법에 의거해 연못의 중앙에 샘을 상징하는 돌을 두고, 그 좌우에 학과 거북이 모양의 돌을 배치한 지천회유식(地泉回遊式)의 정원으로서, ‘코보리 엔슈’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원은 1626년 연못의 남쪽에 고미즈노오 천황의 행차 어전이 세워졌을 때 개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색채를 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석조에 나타난 강렬한 힘은 장대한 성곽 건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로 오오히로마, 구로쇼인, 행차 저택의 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 혼마루고텐(本丸御殿)
혼마루는 1626년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慶喜 1837-1913)에 증축되어진 것으로 원래는 돌담 위쪽으로 성내에 높이 우뚝 솟아 장대함을 자랑하던 5층 천수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1750년 낙뢰로 소실되었고, 1788년에는 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혼마루 내의 궁전터로 계단만 남아 있다. 혼마루 궁전 남쪽에 있는 궁전은 명치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천수각터는 이 정원의 서남쪽 끝에 있다.
현재 남아있는 혼마루는 큰 화재로 소실된 후 교토고쇼(京都御所)에 있던 가쓰라궁(柱宮) 어전을 1893-1894년(2년간)에 이곳으로 이축하여 만든 것이다. 어전의 구조로는 완전한 형식이 보존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가라쓰궁은 1847년에 건축된 것으로서 궁전의 잔존건축물로 남아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 세이류엔(靑柳園 청류원)
세이류엔은 에도시대 초기의 갑부상인 스미노쿠라료우이의 집터에서 건물의 일부와 정원석 약 800개를 기증받아 이것을 기초로 니조성에 어울리게 만든 정원으로 웅대함, 명랑함, 풍아함을 모티브로 전국에서 모인 유명한 명석 300개와 차실을 새로이 건축해 1965년에 완성하였다.
정원은 치센카이유식(원형 연못을 중심으로 꾸민 정원양식)의 일본정원과 잔디 중심의 서양식 정원의 두 타입으로 되어있으며, 총 면적은 약 16,500㎡ 이다. 원내에는 코우운테이나 와라쿠엔 등의 차실이 있어 시민 다도회를 비롯해, 니조성을 방문하는 국빈 공관 등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어지고 있다.
☐ 니모마루(二の丸)
니노쿠루와, 산노쿠루와 등으로도 불린다.
니노마루, 산노마루는 혼마루의 부수적 역할을 담당한다. 규모는 대규모부터 소규모까지 여러 가지다. 대규모 구역인 것은 니노마루 어전이라 불리는 거주 공간이 있으며, 정원을 두기도 한다. 산노마루에는 가신들의 무가 저택을 배치하였다. 이 구역들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이들 구역의 목적은 혼마루 방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혼마루(本丸)
일본 성의 중핵 구역의 구루와의 명칭이다. 이치노쿠루와(一の曲輪)·혼쿠루와(本曲輪)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중세성곽에서는 본성, 실성, 쓰메마루(詰丸) 등 성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근세이전의 성터 조사에서는 주곽 등으로 불린 적도 있다. 또, 이같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사물의 본질, 조직의 중핵 등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혼마루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혼마루에는 혼마루 어전(本丸御殿)이라는 호화로운 건물을 세워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를 보던 곳으로 사용된 경우와 혼마루의 면적을 좁게 하여 전시에 대비한 주곽으로써의 역할을 강조한 경우도 있다. 주곽으로의 역할을 강조한 경우에는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의 정청은 니노마루·산노마루에 어전 건물을 두었다. 또,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에 오면, 혼마루에는 일본성의 상징 건물인 천수를 세웠다. 혼마루 안 또는 혼마루와는 별도인 장소에 천수를 세운 소규모의 구역인 덴슈쿠루와 또는 덴슈마루를 두었는데 성의 혼마루도 가상학(家相學)에 따라 지어진 경우도 있다.
혼마루의 중심, 혹은 어전 건물의 중심을 중심으로 해서 성의 정문인 오테문을 남동쪽에 두었고, 귀문(鬼門)의 방향인 동북쪽에는 각을 두지 않게 모퉁이를 없애는 것을 좋게 여겼다. 더불어 천수와 천수대용의 3층 망루 등은 북서쪽에 세우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 후스마 (襖 웃옷, 두루마기 오)
일본식 방의 창호의 하나. 격자 조로 한 나무 테두리에 옷감·종이 등을 여러 겹으로 쳐서 나무테두리로 주위를 만든 것. 방을 나눌 때에 이용한다.
중세 이후 이용된 명칭으로 후스마는 다다미방을 칸막이하거나 오시이레(押し入れ · 벽장, 반침)의 문으로 사용하거나 한다. 안팎에는 와시(和紙 ·일본 고유의 종이)로 초배를 하고 그 위에 두터운 종이를 바르는데, 이 종이 위에 아름다운 모양이나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인테리어로서도 훌륭하다. 방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후스마 종이를 바꾸어 붙이면 된다. 방의 간막이로서의 기능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후스마의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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