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7일 토요일 (3일째)
여행지: 우치 평등원, 교토 금각사 글쓴이: 박병희
평등원(平等院 뵤도인)
여행 셋째 날, 우지의 평등원을 둘러보고 교토에 와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았다.
“매일 그 날의 담당을 다 정해놨군요.”
스님께서 여행 계획표를 이제사 보신 모양이다.
“아, 그런데요. 스님께서 이번 여행은 발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안하기로 했어요.”
옆 테이블에 앉았던 내가 불쑥 끼어들어, 큰 목소리로 발표 안해도 된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촌극을 벌였다.
이제까지 답사할 동안은 스님께서는 한 번도 공부해온 것을 발표해보라는 말씀을 안하셨다. 모두들 유유자적하게 긴장감 없이 모든 근육이 이완된 상태로 즐겁게 사찰들을 순례하였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기행문 쓸 자료나 자세히 적자는 마음으로 평등원에 들어섰다.
고색창연한 봉황당이 잔잔한 연못과 정갈한 정원에 둘러싸여 여행객을 반가이 맞이해준다.
모두들 아름다움에 취해서 말없이 법당만 바라보고 있는데, 스님께서“누가 공부해 오신 것 한 번 말씀해보시죠.” ‘이런, 내가 담당인데…. 뭐더라. 중당이던가,익랑,미랑….’
속으로 버벅대고 있는데 윤미영선생님은 내가 당번이라고 자꾸 내 옆구리를 찌른다.
“아, 가운데가 중당인가요? 옆에가 익랑이고 꼬리는 미랑이고 봉황을 닮았다구?”
스님 옆에서 자신 없이 머뭇머뭇하며 자꾸 스님께 답을 요구했더니,
“나한테 자꾸 묻지 말고….”라고 하신다.
여행 전날 모임에서 사전 발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유선철선생님이 말했다. 정말 구세주 같았다.
집에 와서 발표 안한다는 사실을 전화로 다시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공부하다 말았으니 제대로 설명이 되질 않는다. 공부를 좀 더 해올 걸 그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책을 읽어봐도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본식 건축이라지만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건물구조의 설명만으로는 감동이 전달이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본 봉황당은 정말 넋이 나갈만큼 아름다웠다.
이 건물이 지어진 시대는 헤이안 시대 중기로서 후지와라 시대라고도 칭한다.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견당사(겐토시)제도가 폐지되어 중국과의 정식 문화교류가 두절되어서 일본 고유의 문화가 발전된 시기이다. 한문자 대신 가나문자가 사용되었고 불교와 건축 공예 등 모든 문화가 일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불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주로 정토종이 성행했으며 그 밖에 다양한 종파가 있었다고 한다. 11세기 중엽부터 아미타신앙이 성행하였으며 국가와 관계없이 민간포교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개인 신앙에 의존한 구제를 전하는 신앙이 발전하였다. 이같이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신앙은 일본의 귀족사회에도 넓게 전파되었고 후지와라 요리미치는 서기 1052년에 부친인 후지와라 미치나가 공으로부터 물려받은 별장을 절로 개축하여 아미타불을 모신 화려한 平等院(뵤도인) 鳳凰堂(호오도)를 건설하였다.
평등원(뵤도인)의 봉황당(호오도)은 극락정토의 궁전을 지상에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매우 아름다운 건축이다. 우치천(우지가와)옆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를 선정하여 전면에 연못을 파고 멀리 있는 조일산(아사히야마)을 관망할 수 있게 봉황당(호오도)이 동쪽을 향하게 건축되어 있다. 법당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야트막한 산과 몇 몇 소나무 외에는 손대지 않은 자연스러운 나무들과 잔디, 법당이 그대로 비친다.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는 연못과 못 속에 자연스럽게 박힌 작은 바위의 어울림이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鳳凰堂(호오도)의 전체 평면 형태는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고 中堂(주도)와 翼廊(이키로), 尾廊(비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익랑(이키로)와 미랑(비로)부분은 천장높이가 낮으며 익랑 끝에는 다시 좀더 높은 누각이 세워져 건물의 높이가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주위에 둘려있는 툇마루에 난간이 있고 그 밑부분에 있는 열주공간을 개방시켜 매우 특이한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중당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가 정확히 대칭이 된다. 연못 속에 비친 법당의 모습은 물 위의 법당과 또 다른 대칭의 미를 더해준다. 안내원을 따라 1인당 300엔의 관람료를 봉황당 내부로 들어갔다.
법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9.3척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은 본존 아미타여래상이다.
목조불상으로 모두 노송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이처럼 커다란 불상을 만들 수 있는 1그루의 나무는 좀처럼 없으므로 ‘요세기즈쿠리’라는 쪽매질 기법이 채용되었다. 후광, 천개도 쪽매질 처리가 되어있고 이음매에는 못 ․걸쇠를 박고 삼베를 붙인 후, 그 위에 옻칠하여 금박을 입혔으므로 겉을 보아서는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섬세한 조각에 금빛 찬란한 후광과 더불어 사각의 틀 속에 아름다운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는 천개는 화려하면서도 단순함을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스님께서 설명하셨다.
이어서 중인방의 흰 벽에 걸려 있는 작은 불상들은 모두 구름을 타고 있어 「운중공양보살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등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모두 52구의 보살상 중 26구는 옆 박물관 봉상관(호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공양보살상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부드럽고 섬세한 조각으로, 나무를 다루는 일본 장인들의 뛰어난 예술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박물관 내의 문과 벽에는 아미타여래가 보살들을 이끌고 죽은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모습이 잘 나타난 ‘구품내영도’가 그려져 있다. 봉황당의 문에 그려진 그림을 약 35년 전에 복원 모사한 것을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그림의 내용과 색조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작년 9월까지 보수 정비했다고 하지만 빛바랜 법당 내부를 바라보며 약 천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영상관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천 년 전 평등원의 그 화려한 모습을 입체 영상으로 보여주어 관광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시간마다 50명씩 제한하여 관광객을 맨발로 입장시키고 벽에도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며 안내원 여러 명이 감시하고 안내하면서 유물을 지키고 관리하는 태도와 고색창연한 봉황당(호오
도) 옆에 최신식 설비의 현대식 봉상관(호쇼관) 박물관을 지어 유물을 전시하여 고전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직지성보박물관장이신 우리 스님께서도 아주 부러워하셨다.
우리도 유물을 관리하고 지켜나가는 일본인의 정신과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
다음은 금각사로 떠났다.
이 절은 사리전 금각이 특히 유명하기 때문에 금각사(金閣寺)라고 불리고 있으나 정식 명칭은 녹원사(鹿苑寺)로서 임제종 쇼코쿠지파의 선종사원이다. 이곳에는 가마쿠라 시대에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인 기타야마 저택이 있었으나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몹시 좋아하여, 1297년 사이온지 가문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산장 기타야마 별저로 개축하였다. 킨카쿠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하였다고 전하며 고코마쓰 천황(잇큐 선사의 부친)이 직접 행행(行幸)한 일도 있다. 한편 이 시대는 중국 명나라와 활발한 무역을 펼치며 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던 시대로 특히 이 시대의 문화를 기타야마(北山) 문화라고 부른다.
요시미쓰의 사망 후에는 그의 유언대로 무소국사를 초대 주지로 하여 요시미쓰의 법명인 로쿠온인전(鹿苑院殿)에서 2자를 따서 녹원사로 명명하였다.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사리전 금각
2층과 3층에는 옻칠을 한 뒤 순금의 금박을 입히고 지붕은 화백나무의 엷은 판을 몇 겹씩 겹쳐 만든 널조각으로 이은 지붕으로, 그 위에는 중국에서도 길조라고 불리우는 봉황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1층은 침전식 건축물로서 호스이인, 2층은 무가식 전통건축물로서 조온도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3층은 중국식의 선종 불당 건축물로 구쓰코초라고 불리우며 3가지 건축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무로마치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1987년 가을, 다시 옻칠을 한 뒤 금박을 새로 입혔으며 천정 그림과 요시미쓰 인물도도 다시 복원 되었다. 2003년 봄에는 지붕을 새로 이었다.
정원
금각 로쿠온지절 앞에 위치한 교코이케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하라시마 등 크고 작은 섬과 당시의 지방 영주들이 앞을 다투어 헌납한 명석들이 배치되어 있다. 서쪽의 기누가사야마 산을 배경으로 한 이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으로서 국가 특별사적 및 특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방장(주지의 방)의 북쪽에는 교토 3대 소나무 중 하나로서 배의 모형을 본 뜬 리쿠슈노마쓰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소나무는 요시미쓰가 직접 심은 소나무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석가정(夕佳亭) 정자
에도시대의 다도가로 유명한 가나모리 소와가 선호한 다실풍의 건물로 저녁노을의 경치가 특히 아름다워 석가정(夕佳亭) 정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정면의 장식 기둥은 유명한 남천의 장식기둥으로 그 오른쪽에 위치한 삼각형 선반이 싸리로 만든 지가이다나 선반, 중앙의 고목이 오슈쿠바이라고 한다.
정자 옆에서 말차를 팔고 있었는데 이금미선생님이 이 다실에서 차를 한잔 하지 못하고 온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부동당(不動堂) 불당
본존은 고보대사가 제작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석부동명왕으로서, 영험을 가진 비불로 널리 서민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춘분과 8월 16일에는 개방법회가 개최된다. 금각사는 간간히 사진을 찍으며 휘 둘러보고 나왔다.
이번 여행은 비싼 엔화로 좀 망설여지기는 하였지만 지금까지 어느 여행보다도 알차고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관광하는 내내 거의 관광객이 많은 청수사를 빼고는 조용하고 여유있게 관광할 수 있었고 가이드나 스님의 설명도 경청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며 식사와 잠자리 모두 만족스러운 즐거운 여행이었다.
몇 년 전에도 어느 모임에서 이 지역을 관광했었다. 가이드 따라 동료들과 이야기나 나누며 둘러보아 스님께서 어디를 관광했었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머뭇머뭇했다. 이번 여행은 일본 건축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목적이 뚜렷한 내실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의 참맛을 느낀 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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