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흔적을 나라, 교토에서

나흘째 - 광륭사 [ 廣隆寺 ( 고류사 )]

보리숭이 2009. 1. 21. 21:31

고류지(광륭사)는 스이고(推古)천황 11년(603년)에 성덕태자가 건립한 7개 절 중의 하나이다. 건물로는 본당인 상궁왕원태자전, 강당인 적당, 반가사유상과 여러 불상이 전시된 신영보전, 국보인 계궁원본당 등의 건물이 있다.

 남대문(인왕문)

 좌우 인왕상

 

 

  강당인 적당(중요문화재)

 본당인 상궁왕원 태자전

 

 

 

 

 

 

진하승부부의 사당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의 국보 1호 미륵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고대사와 한반도 침략을 숨기고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코오류사 앞에 설명이 되어있는 돌비석의 일부분을 마모 시키고있는 역사왜곡의 현장이 눈에 띄었다. (지워진 부분은 '한반도 도래인'이라고 한다.)

지금의 일본은 국보에 대하여 숫자를 지칭하지 아니한다. 즉 국보면 모두가 가치가 있는 것인데 1호, 2호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따라서 지금은 미륵보살반사사유상은 일본의 국보1호라고 안하고 그냥 국보이다. 왜그랬을까 국보 1호가 우리선조에 의한 것이 분명하니 자존심 상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일본의 옛 서적에는 아직도 국보 1호라 되어 있다. 

 매표소

 

도솔천

 

신영보전

일본의 국보 1호인 반가사유 미륵보살상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이 미륵보살상은 우리나라의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모양이 너무나 똑 같다. 다만 재질이 우리의 것은 청동으로 되어 있고 일본의 것은 나무로 되어있는 점인데 얼마 전에 한 교토대 예술학부 학생이 광륭사에 보존 되어있는 미륵상의 미소에 취해서 그 미륵을 끌어안다가 미륵의 손가락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는데 그 때 끊어지 손가락을 살펴보니 그 재질이 우리나라에서만 나오는 적송이었다(경북 봉화군 ). 그래서 우리들은 이 광륭사의 반가사유상이 백제인이 만들어서 가져갔거나 도래인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세상에 이처럼 평화를 상징하고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낸 불상은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동양의 미소”라고 불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