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구룡사(龜龍寺)
7월 27일 오후, 2박 3일의 민족사관학교 토론교육연수를 마치고 귀가 길에 잠시 치악산 구룡사를 방문했다.
구룡사는 원주시내에서 동북방 약 24km 지점에 위치하는 사찰로써 신라 문무왕 6년(666)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전해지는 사중기록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기 위하여 법력을 통하여 용들을 동해로 내몰고 지었다하며, 조선중기에 이르러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고 한다.종영사가 1966년 구룡사 주지로 부임하여 황량하였던 사원 전모를 일신하였는데 1966년에는 현 보광루를 해체ㆍ복원하여 단청을 마쳤다. 신라 문무왕 6년(666) 의상대사가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엽 때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진다고 하여 그 혈을 끊었으나 더욱 쇠잔해지자 다시 거북바위의 정기를 살리고자 거북구(龜) 자를 써 오늘의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하며,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
구룡사는 신라말기 도선국사의 수도를 비롯하여 고려말에는 무학대사, 조선 중엽에는 사명대사 등 고승대덕의 수도처였다. 이곳에는 지방문화재 제 145호인 보광루를 비롯하여 범종각, 삼성각, 사천왕문, 종무원 겸 요사, 원통문 등의 많은 건축물이 있다. 특히 보광루의 짚으로 만든 멍석은 세사람이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는 국내 최대의 멍석이다. ( 이 멍석의 존재를 몰라 미처 사진을 찍은 것이 없다. 자고로 어디를 갈 때는 사전에 계획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아야하는데 이번 순례는 전혀 계획에 없던 것이라..)
치악산 구룡사 원통문
구룡사 올라가는 길에는 금강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채를 금지하는 표시인 황장금표(강원도 기념물 제30호-전국 60개소에 설치)가 있는 것을 보면 질 좋은 목재가 많이 있었으며 이 황장목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써서 현재까지 보존하는데 한 몫을 한 것 같다.
황장목이란 나무의 중심 부분이 누런 색깔을 띠며, 나무질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를 말한다.
구룡사 부도
구룡사 조사당
불교 각 종파에서 조사나 절의 창건자, 역대 주지 등의 진영(眞影) 또는 위패를 모신 집.
조사에 대한 신앙이 깊은 선종에서 먼저 건립되기 시작하여 다른 종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큰 사찰은 조사당을 갖추고 있는데, 한국선종의 경우 인도와 중국의 33조사와 지눌(知訥). 보우(普愚) 등을 조사당에 모시며 절에 머물렀던 것과는 관계없이 조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는 것과 개산조사만을 모시는 개산조당(開山祖堂)이 있다.
그러나 절을 창건. 중건하였거나 수행한 고승들의 영정. 위패를 모시고 봄, 가을로 제향하는 영각(影閣)과는 엄밀히 구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부석사 조사당(浮石寺祖師堂, 국보 19), 송광사 국사전(松廣寺國師殿, 국보 56) 등이 있다.
치악산 구룡사 조사당은 2006년에 건축하였다.
치악산 구룡사 사천왕문
치악산 구룡사 사천왕
치악산 구룡사 보광루
구룡사 범종각
대웅전-2003년 9월 30일밤 9시 원인 모를 불이 나 264제곱미터 규모의 대웅전이 모두 불탄 뒤 재건한 것이다.
천불전
삼성각
관음전
응진전
지방보호수로 지정된 200년 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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