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정등각을 이루신 후에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전법륜경을 설하셨다. 이 경은 부처님의 첫 설법이라고 하여 초전법륜이라고 하기도 한다. 초전법륜경에서 부처님은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도’를 그 수행방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 중도란 팔정도이다.
귀자모신(鬼子母神)-->
불교의 야차 중 하나. (야크샤. 여성형은 야크시)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의 인도의 토착 자연신들이었다가, 후에 불교에서 마족이나 수호신으로 편입되었다.
야차는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살며, 여성 야차는 나찰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보면 홀릴 정도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외모를 지닌 것으로 그려지며, 이들은 남자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피를 먹었다고 전한다. 이들 여성 야차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귀자모신, 즉 '하리티'다.
귀자모신은 야차왕의 아내로, 천상과 지상에 각각 500명의 자식이 있었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성질이 난폭하고 잔인하여 항상 다른 사람의 자식을 빼앗아 잡아 먹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이 귀자모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이 사실을 부처에게 고하자
부처는 그녀의 아이 하나를 몰래 감추게 했다. 그녀가 자식을 잃고 슬픔으로 울부짖자 부처는 그녀에게 많은 자식들 중 하나만 없어져도 이렇게 슬픈데 그녀에게 아이를 빼앗긴 다른 부모들은 어떤 심정이겠느냐고 하며 그녀를 교화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행위를 깊이 뉘우친 귀자모신은 불법에 귀의했으며, 이후 안전한 출산과 육아의 수호신이 되었다.
약 3000년 전, 인도 북쪽에 있는 네팔국에 와사성이라는 도성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는
그 교외의 영취산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법회를 열었다.
사자좌(獅子座)에 오른 석가모니는 전일과 같이 '착하고 착한 선남 선녀들이여.....' 하고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오랫동안 단정히 앉아만 있었다. 모인 대중들은 오늘은 무슨 말씀일까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아무리 오래 있어도 통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겼다. 한참만에 석가모니는 대범천이 공양한 금바라(金波羅)라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문득 들어올리며 대중들에게 두루두루 보여 주었다. 만좌한 대중들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너무 뜻밖의 일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어 그저 멍할 따름이었다. 그때 좌중의 상좌인 마하가섭만이 홀로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올린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
석가모니도 무언, 가섭도 무언, 대중은 무슨 뜻인지 몰라 농아같이 되어 만좌가 적적무언지대 (寂寂無言地帶)인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깊고 깊은 대설법이 이루어졌다. 언어를 초월한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대법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추월스님의 계족 정진, 즉 닭처럼 발 뒤꿈치를 든 채로 하는 참선수행은 유명하다.
석가모니에게는 배다른 동생이 있었다. 난타(Nanda)라는 이름의 그 동생은 가비라성의 왕자였으며 착하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손타라'하는 아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난타는 아내를 무척 사랑해서 늘 아내 곁에 있기 만을 좋아했다. 석가모니가 출가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난타는 아내가 그리워서 출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난타를 데리고 극락세계로 갔다. 그리하여 극락세계의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행복한 삶을 일일이 구경 시켰다.
그리고 지옥에도 데려가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많은 죄인들의 처참한 모습도 구경시켰다.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온 석가모니는 난타에게 출가해서 도를 닦으면 극락에 태어나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고, 출가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무한 겁 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친절히 일깨워 주었다. 그리하여 난타는 깨달음을 얻고 출가하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제자들과 성 안을 돌아다녔다. 도중에 길가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두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뭇잎으로 반찬도 만들고 흙으로 밥도 지으며 놀던 아이들은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그들 곁에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두 아이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석가모니가 옆에 와서 그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황급히 석가모니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꿉장난으로 지은 모래 밥과 나뭇잎 반찬을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석가모니는 웃으면서 그들이 바치는 모래 밥과 나뭇잎 반찬을 기꺼이 받았다. 한 아이는 그 공덕으로 나중에 왕이 되었고, 또 다른 아이는 후일에 유명한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앙굴라마' 제도
좋은 집안의 장래가 촉망되는 훌륭한 청년이 그 당시의 관습에 따라서 고명한 스승 문하에 들어 가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스승의 부인이 이 청년에게 반하여 스승이 출타한 틈을 타서 유혹하였다 한다. 청년은 그 유혹을 깨끗하게 거절하였는데, 스승의 부인은 수치심 때문에 오히려 스승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출타한 틈을 타서 청년이 자신을 유혹하였으나 간신히 뿌리쳤다." 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스승에게 그 제자를 모함하였다.
스승은 이 말을 곧이 듣고 청년에게 말하기를 <만약에 1000명의 사람을 죽여, 천 개의 손가락으로 영락을 만들어 오면 법을 일러주겠다.> 하였다.
이에 앙굴라마는 떠나서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999명을 죽이고, 나중에 친어머니를 만나서 죽이려 하였다. 그러다가 부처님(석존)을 만나 설법을 듣고 귀의 하였다 한다.
그는 자신이 방편을 쓰면 순식간에 말의 증상을 알아내고,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하면 어떤 말이든지 길들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부처님은 몇 가지 방편으로 말을 길들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말 조련사는 첫째는 부드럽게 다루는 것(柔軟)이며, 둘째는 거칠게 다루는 것(澁)이며, 셋째는 부드러움과 거침을 함께 쓰는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만약 세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도 길들일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말 조련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명성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말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말 조련사가 부처님을 향해 묻기를 “부처님은 대장부를 다스리는 최고의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 하는데 어떤 방편으로 사람들을 다루십니까?”라고 했다.
부처님은 말 조련사가 했던 순서대로 “첫째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요, 둘째는 한결같이 거칠게 다루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말 조련사는 만약 세 가지 방편을 모두 사용해도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냐고 물었다.
부처님은 세존을 욕되게 하지 못하도록 그를 죽여 버린다고 대답했다. 부처님의 말씀에 깜짝 놀란 조련사는 살생은 올바른 행이 아니며, 부처님은 불살생을 가르치시는데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반문했다. 조련사의 질문에 부처님은 ‘죽인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하셨다. 즉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은 더 이상 그와 같이 말하지 않고(與語), 가르치지도 않으며(不敎), 훈계하지도 않는 것(不誡)”이라고 했다. 말 조련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은 진정으로 불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물러갔다.
석가모니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풀이 무성한 산속에서 땅에 흩어진 사람의 뼈 한 무더기를 발견하고는 정중히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때 곁애 있던 제자 아란이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며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세존님, 세존님께서는 삼계(三界)의 도사요, 사생(四生)의 자부이신데 어찌하여 그런 해골바가지에게 절을 하십니까?"
"아란이여, 네가 출가하여 나를 따른지 이미 오래인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런 도리를 모르느냐? 저 해골이 전날 내 부모 형제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지금 이 속에는 옛날 나의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뼈가 섞여 있구나." "무엇을 보시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뼈를 구별하십니까?" "어머니의 뼈는 검고 가볍고 아버지의 뼈는 희고 무겁다. 어머니는 한 번 자식을 낳을 때마다 서 말 석 되의 피를 흘리고, 그 자식을 기르는데 여덟 섬 네 말의 젖을 먹이는 까닭이며 수태로부터 생육에 이르기까지 뼈를 깍는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은혜가 있으나 부모님의 은혜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
석가모니는 말을 마치고 흩어진 뼈를 한곳에 모아 고이 땅에 묻어 주었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그 많은 제자들 앞에서 손을 모으고 뜻을 거두어 해골더미에 공손히 절을 하였던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이란 일생 일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중무변법계연기(重重無邊法界緣起)의 도리가 항상 우리가 사는 법계(法界)에 충만해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 등 공양을 올리는 것은 육법공양(六法供養) 중 하나로서 정성을 다하고 있다. 『아사세왕수결경』에 의하면 어떤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올린 등 공양이 밤새 꺼지지 않고 불을 밝혔다고 하는 빈녀일등(貧女一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설법이다. 연등은 바로 지혜와 광명과 자비의 상징이다.
등불을 밝히므로 모든 지혜가 증장하고, 어두움을 물리치고 광명의 밝음으로 인도하며, 자비를 베푸는 공덕을 상징하고 있다. 이 외에도 『무량수경』이나 『법화경』 등에도 연등공양의 공덕이 무량함을 수 없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 전에 등을 밝히기 위해 촛대를 만들며, 석등(石燈)을 세우고, 인등(引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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