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제주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의 낙조 - 2006년 마지막 날

보리숭이 2007. 1. 3. 18:22

2006년 마지막 날

모슬포항에 도착해서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타고 차갑고 짭짭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약 30분 정도를 갔다. 제주에 도착하자 바로 마라도로 향한 것이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위치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위 33 6 33 동경 126 11 3 에 위치해 있고 면적이 0.229㎦(약10만평), 동 서폭 0.5㎞, 남북길이 1.2㎞, 해발 39m, 해안선 길이 4.2㎞의 작은 섬이다.

 

 

바닷물의 색이 너무 파랗고 암석들도 정말 특히 해서 다른 나라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높게 솟은 등대가 마라도를 지키고 있었다. 그 등대는 보통 등대가 아니었다. 마라도의 등대는 그 의미가 대단했다. 조사한 것에 의하면 마라도의 등대는 제1호 등대로 남지나해로 나가는 어민들에게는 바다의 길잡이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해도에 제주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아도, 마라도 등대는 반드시 표시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고 중요한 것이다. 또한 하늘이 어두워지면 마라도 등대는 10초를 주기로 1만5천촉광의 강한 빛줄기를 사방으로 비추며 돌아가는데 이 빛은 대략 21마일이나 간다는 3등급 촉광이다.

등대 주변에 위치한 마라도 태양광발전시스템은 150kW급으로 국비와 지방비 등 26억8100만원의 예산이 투자됐으며,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1월까지의 약 1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되었다 한다.

또 도서지역의 날씨 등을 감안한 자동제어시스템을 적용하여 운영 및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효율적 운영체계가 구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40여 가구 90명정도 살고있는 너무나도 작은 섬에 성당, 자장면집, 교회, 사찰, 가파초등학교 분교, 파출소 등이 아담하게 있다.

등대를 보면서 마라도에서 유명하다는 해물 자장면도 맛보고 해안과 뽀르찌웅꼴라(작은못) 성당, 마라도 교회, 기원정사 라는 사찰을 둘러 보았다. 기원정사는 부처님이 24번 우안거를 지냈셨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기억하게 한다. 기원정사에 관하여는 따로 사진을 올리려 한다.

 

이 기회에 마라도의 전설 하나를 소개하고 마라도에서 담은 사진을 파이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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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가파도에도 마라도에도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 모슬포에 살고 있는 이씨 부인은 어느날 물을 길러 가다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울음소리를 좇아가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안된 여자아이가 수풀 속에서 울고 있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이의 부모를 찾을 수 없게되자, 이씨 부인이 딸처럼 기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씨 부인에게도 태기가 있어 첫아이를 낳았고,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의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섬 주변에는 각종 어류며 해산물들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을 잡으면 바다의 신이 노해서 거친 바람과 흉작 등으로 화를 입힌다고 여겨 사람들이 접근을 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매년 봄, 망종으로부터 보름 동안은 마라도에 건너가는 것이 허가되던 때였다.

 

어느 해 봄, 모슬포 잠수들은 마라도 '섬비물'해안에 배를 대고 물질을 시작했다. 바다는 매우 잔잔했고, 날씨도 좋아서 소라, 전복 등이 많이 잡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레가 지나고, 가지고 들어온 양식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물질은 잘도 푸진게, 이제 그만하고 오늘랑 돌아갑주."

 

잠수들이 섬을 떠날 채비를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어졌다.

  

"잔잔해지면 가야되큰게"

 

그런데, 바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배를 묶어 놓으면 잔잔해 지고, 배를 타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거칠어졌다.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물이고 양식이고 다 바닥이 난 날 저녁, 잠수들은 다음날에는 죽을 각오로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잠수가 선주(船主)에게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젯밤 꿈에 누가 나타나 이르기를 애기업개를 두고 가야지 데리고 가면 모두 물에 빠져 죽을거랜 합디다.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신기하게도 부인 역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일행들은 의논 끝에 애기업개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어찌 갈등이 없었으랴만, 더 이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배를 띄워 사람들이 오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해면서 거칠어질 조짐을 보였다. 아기 어머니가 애기업개에게 말했다.

 

"아이고, 얘야, 아기 기저귀 널어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안 걷어 와졌구나. 저기 저 바위 위에 하얀 걸렁이 보이지? 얼른 가서 좀 걷어 오너라."

 

애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배는 바다 가운데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눈치를 챈 애기업개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줍서!"

 

그러나 무정하게도 배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차마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 뒤 3년 동안 사람들은 무서워서 마라도 쪽으로 가지 못했다.

 

3년이 지난 뒤 마라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슬포와 가파도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슬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서 죽은 애기업개의 뼈를 볼 수 있었다.

 

잠수들은 애기업개의 뼈를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 애기업개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달 7일과 17일, 27일에 제를 지내고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이 드물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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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던 마라도가 '애기업개'의 희생이 담긴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아름다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되새긴다면 좀 더 새로운 감동으로 와 닿지 않을까. 사랑의 희생이 깃든 마라도가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어머니 품처럼 따뜻해 보이기도 하다.

 

** 애기업개 내용중 제주 사투리**

"이번 물질은 잘도 푸진게, 이제 그만하고 오늘랑 돌아갑주."

- 이번 물질은 수확이 아주 좋네요. 이제 그만하고 오늘은 돌아갑시다.

"잔잔해지면 가야되큰게"

- 바다가 잔잔해지면 가야겠어요.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 틀림없이 바다의 신이 화가 나신 거예요. 이제 살아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아이이니 여기에 두고 가야할 것 같아요.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줍서!"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