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찰중의 하나인 부석사는 그곳에 오르기만 해도 무언가 달라 보인다. 소백산맥이 눈앞에 펼쳐지고, 세상이 발아래 펼쳐진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671년 급히 귀국하여 당나라군의 침공소식을 알린 뒤, 왕도를 벗어나 5년 동안 전국을 떠다니다가 자리잡은 곳이 이곳이다. 의상대사가 이곳에 자리잡을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의상이 화엄학 공부와 부석사 창건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두 번에 걸친 중국 유학 길과 선묘낭자와의 사랑이야기다.
첫 번째 유학 길은 원효대사와 함께였다. 두 스님의 유학길에서 하루는 어느 큰 부잣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유숙하였는데 그날 밤은 어지러운 귀신 꿈에 시달려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또 하루는 비를 피해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원효대사가 심한 갈증을 느끼고 주변을 더듬어 그릇에 담긴 물을 맛있게 마시고는 편안하게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것은 해골바가지 속에 담긴 빗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신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혼자 남은 의상대사는 요동을 지나 중국으로 향하는데, 고구려 순찰군에 잡혀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아 옥에 갇히는 등 고생을 하다가 결국 돌아오게 된다.
두 번째는 혼자 떠나게 된다. 서기 699년에 의상은 산동반도의 등주에 독실한 불교신도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 ( 이 때 만난 여인이 선묘낭자이다.)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떠났으며 근처 종남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하는 지엄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10년간 삼장( 불교의 기본이 되는 경. 율. 논)을 배웠다.
의상이 귀국 후 처음 세운 절은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이고 그 다음이 태백산 근처 봉황산 아래 지은 부석사이다. 문무왕의 부름을 받고 경주에 내려가 명산대천에 사찰을 지으라는 분부를 받고 절터를 정한 곳이 곧 부석사이다. 그는 문무왕 10년(676)에 이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미 이곳에 와서 절을 짓고 사는 5백여명의 다른 종파의 불승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의상은 마음속으로 부처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나타나 3일 동안 공중에 머물면서 반대하는 불승들을 향하여 내리칠 듯 위협하니 그들은 두려워서 달아나고 종국에는 굴복하여 새 절을 짓는데 협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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