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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양력론 (1899)

보리숭이 2006. 1. 25. 20:46

올해 설은 129일입니다. 그런데 혼선이 좀 있나 봅니다. 인터넷의 어떤 음,양력 변환기를 써 보니까 (가례원: http://www.garewon.co.kr/lunar/lun2sol.htm) 병술년 정월 초하루가 양력 2006130일이라고 나오더군요. 어째서 이런 혼선이 생겼을까요?

 

정월 초하루는 섣달 그믐 직후에 시작됩니다. '그믐'이란 태양과 지구와 달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늘어서는 시점입니다. 이때 달은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요. 올해는 섣달 그믐이 양력으로 129일 밤 111430초라고 합니다. 46분만 더 있다가 그믐이 되면 130일이 정월 초하루가 될 터였습니다.

 

46분 때문에 혼란이 생긴 걸까요? 그믐이 129일의 시작점보다는 30일의 시작점에 훨씬 가까우니까요. 그래도 규칙상 설은 29일입니다. 그믐 시점이 29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언론재단, 고신문 검색 서비스:

http://www.kinds.or.kr/indedata/18990202DLD01.pdf 에서 발췌, 이하 같음.

 

이렇게 요즘은 양력이 자연스러운 대신 음력 날짜가 헷갈리곤 합니다. 그러나 1백년 전만 해도 정 반대였습니다. 189922일의 <독립신문> 논설에서도 '헷갈리는 양력 날짜'를 설명해 놓았더군요. 당시 서양에서도 아직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99년의 메국/잉국의 양력 설날은 러시아의 양력 설날과 12일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독립신문> 논설자는 기고문을 통해 서양의 양력 체계가 혼선을 빚게된 이유를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집트/그리스의 음력에서 율리우스/그레고리의 양력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시행착오를 잘 지적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어도 얻어지는 상식이 꽤 됩니다. 양력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관행이 정착된 게 불과 1백년 남짓이라는 게 신기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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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력론 (1899)

 

 

 

어떤 지각 있는 사람의 글을 아래에 기재합니다.

 

어떤 손님이 물었습니다. "서양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음력이니 양력이니 분간이 없었는데, 서양 사람들이 동양으로 진출하면서 비로소 동양 사람들이 음력과 양력을 분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아시아에서 음력만 사용했습니다. 일본도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음력을 사용했습니다. 대한도 갑오경장 이후에는 정부와 각처에서 양력을 쓴다고 하지만 초야의 평민들은 아직도 음력을 쓰는 모양입니다.

 

"음력을 쓰는 나라들은 각국이 한날 한시도 어김없이 같은 날에 설을 맞습니다. 그러나 양력을 쓰는 나라 중에서 러시아는 12일을 기다렸다가 설을 쇠고, 잉글랜드, 프랑스, 도이칠란트와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은 12일을 앞당겨서 설을 쇠니,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러자 지각 있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양력에도 신력과 구력이 있으니 별로 신기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두 양력에 12일 차이가 나는 것이 혼란스럽다고 하시니까 지금부터 음력과 양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음력부터 이야기하지요.

 

"세계 각국 중에서 고대 문명국을 말하자면...

 

 

 

"... 첫째는 아시아의 중국이요, 둘째는 아프리카의 이집트요, 셋째는 유럽의 그리스입니다. 중국의 사정은 다 아는 것이니 더 말할 것이 없겠습니다. 이집트에서 처음 달력을 만들었을 때에는 360일을 1년으로 삼았고 30일을 한 달로 삼아서 전부 12달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달력을 고쳐서 1년을 365일로 정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달력도 처음에는 360일을 1년으로 삼았다가 후에 고쳐서 365일을 1년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달력은 355일로 일년을 삼았습니다.

 

"고대 나라들은 모두 달이 도는 것을 가지고 달력을 만들었으니 다 음력을 쓴 것입니다. 그 후에 천문학자들이 자세히 살펴보니까 음력으로 1년을 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구가 해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을 자세히 연구해 보니까 365주야 6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6시는 1주야의 4분의 1이고, 1주야는 24시이고, 1시는 60각이고, (본문에는 '16'이라고 돼 있는데 이는 '60'의 오타로 보입니다 - 평미레^^), 1각은 60분입니다.)

 

"예수 강생 전 (기원전) 46년에 로마왕 율리우스 캐사르가 천문학자 소시게네스에게 명령해서 일년을 음력으로 된 355일을 고쳐서 양력으로 된 3656시로 만들고 ....

 

 

 

"... 1년은 365일로 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는 6시는 4년만에 1일을 더하여 그해 일년을 366일로 만들어 윤년을 삼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달력은 그 로마 왕의 이름을 따라서 율리우스력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천문학자들이 정확히 알아보니까 지구가 해 주위를 한번 도는 주기가 365주야 6시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짧은 365주야 54846분뿐이었습니다. 이 남겨진 시각을 1년 기한에 분명하게 끼워 넣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를테면 무술년인 올해 정월 1일이 작년 섣달 그믐날 밤중 12시에 시작하였으면 오는 기해년은 금년 12월 마지막날 밤중 12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월 1일 새벽 54846분에 시작하게 됩니다. 또 그 다음 해는 112732분으로 대낮에 새해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매년 새해의 시작이 달라집니다.

 

"만일 1년을 365일로 삼고 나머지 시각은 버린다면 1년에 버린 시각만큼 짧아질 것이고 지구가 64846분을 채워서 돌아오기 전에 새해를 맞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4년만 지가면 231540(1주야 가량)을 이루게 되고, 1백년이 지나면 ....

 

 

 

".... 24주야 51640분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까 율리우스력에서 4년마다 윤일(閏日 24)을 더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1년에 54846분 남는 것을 4년 동안 합하면 23154분뿐이므로 1일에서 모자라는 4456분은 내년의 시간을 가져와서 보태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4백년을 지나면 3주야 23640분을 더 앞당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율리우스력을 만든 날부터 예수 강생후 16백년 대에 이르니까 달력이 실제보다 10주야나 더 앞서게 됐습니다. 보통 춘분은 321일이어야 하는데 1582년에는 311일에 춘분을 맞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제13대 교황 그레고리가 1582105일을 고쳐서 1015일로 삼으라고 반포하고 다시는 그릇됨이 없게 하려고 4백년에 윤1년을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보다 12일을 뒤떨어지게 됐고, 1900129일에 이르러서는 모두 13일이 뒤떨어지게 됐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는 차례로 그레고리력(신력)을 채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포루투갈과 덴마크와 보게미(?)1582105일을 고쳐서 같은 달 15일로 삼았고, ...

 

 

 

"... 프랑스와 스위스는 15821221일로 고쳐서 1583년 정월1일로 삼았습니다. 네덜란드는 158225일을 고쳐서 이듬해 15일을 삼았고, 도이칠란트는 15831221일을 고쳐서 이듬해 11일을 삼고, 폴란드는 15851221일을 고쳐서 158611일을 삼았고, 헝가리는 15861221일을 고쳐서 158711일을 삼았고, 영국은 175292일을 고쳐서 같은 달 24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그리스와 흑산3(?)은 신력(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그대로 구력(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까닭에 12일 뒤에 설을 쇱니다. 신력도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4백년에 23640분을 더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36백년 가량을 지나면 1주야가 더 지나가는 셈이 됩니다.

 

"음력도 청나라 강희 황제 때에 양력과 많이 차이나는 것을 이탈리아 선교사들이 고쳐서 오늘날까지 버리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연한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몇백 년에 몇 날씩 빠지는 것을 더 집어넣고 고쳐가면서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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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時空)의 이름

 

<독립신문>",양력론(1899)"을 읽다보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이름이 1백년 동안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하루'를 가리키는 한자어가 요즘은 '1()'입니다만 그때는 '1주야(晝夜)'였군요. 하루가 낮과 밤으로 이뤄져 있다고 보아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 같습니다.

 

()이라는 단위도 새롭습니다. 본문에 "1주야(晝夜)24()이고, 1시는 60()이고, 1각은 60()"이라고 했습니다. 하루를 24시로 나눈 것은 오늘날과 같은데, 1시간은 60()이라고 한 걸 보니까 ''은 오늘날의 '()'입니다. 1''60''이라고 한 것을 보면 옛날의 분()은 오늘날의 초()를 가리키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로 이루어진 시간 단위가 백년 전에는 '주야---'이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으로, 그리고 ''''로 바뀌었는지 궁금하군요.

 

시간 단위도 달라졌지만, 공간의 이름 변화는 훨씬 과격합니다. 이 글에는 세계 각국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오늘날과 다른 게 많습니다. 이 지명들은 익숙한 정도에 따라 네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자 이름인데 그 동안 변하지 않은 이름입니다. 일본(日本), 중국(中國), 청국(淸國), 영국(英國), 대한(大韓) 등의 이름은 오늘날과 차이가 없습니다. 이 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美國 혹은 米國)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미국' 이름에 대해 글을 여럿 써 가면서 흥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 동료 분들의 동조에 힘입어 미국은 '메국,' 영국은 '잉국'으로 부르는 중입니다.^^)

 

둘째는 요즘 쓰이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널리 쓰였기 때문에 아직 익숙한 한자 이름들입니다. 아라사(俄羅斯-러시아)와 나마(羅馬-로마)는 해방 전까지 쓰였던 말입니다. 서반아(西班牙-에스빠냐, 스페인)와 희랍(希臘-헬라, 그리스)70년대까지 보편적으로 쓰였지요. 애급(埃及-이집트)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아직 쓰이고 있고,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는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지금도 익숙합니다.

 

셋째는 요즘 짐작조차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달라진 한자 이름입니다. 덕국(德國-도이칠란트)이나 법국(法國-프랑스)은 그나마 들어보신 분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국(丹國-덴마크), 서사(瑞士-스위스), 파란(波蘭-폴란드), 포도아(葡萄牙-포르투갈), 하란(荷蘭-네덜란드)은 아시는 분이 거의 없겠지요. 특히 본문 중에 나오는 '보게미'와 '흑산3국'은 어느나라를 가리키는 지 저로서는 짐작조차 안되는군요.^^ 이런 이름들은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쓰이다가 해방 후 '원음주의' 원칙에 따라 점차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글 이름이 있습니다. 앞의 이름들은 한자 이름이었다가 한글 이름으로 바뀌어온 지명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미 한글로 부르던 이름도 있었습니다. '유로바(유럽)' '아프리가(아프리카)''헝그리(헝가리)'가 그것입니다. 일찌감치 한글 발음으로 지은 이름은 변화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사람 이름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리우스 캐사르의 이름을 '률리 케잘'이라고 한 것은 한문인지 한글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만, 천문학자 '소지견'은 소시게네스(Sosigenes)를 한자로 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 '그리고리(그레고리)'와 그리스도교의 구세주 '예수'는 소리나는 대로 음차한 한글 이름인데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잘 쓰입니다. (당시 '예수' 대신 '야소(耶蘇)'라는 한자 이름을 쓰던 사람이 더 많았지요.) 그건 소리글자인 한글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외국 이름을 따올 때 원음주의 원칙에 따라 한글로 짓습니다.

 

그 시절에는 우수한 한글을 놔두고 어째서 생경하기 짝이 없는 한자 이름들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한글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까지 그랬으니, 바깥 물 좀 먹었다는 다른 지식인들이야 두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문화적 사대주의, 한번 뿌리가 박히면 그 해독이 오래가는 법입니다.

 

 

평미레 드림/

2006/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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