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서 정 걸
낙엽이 무너져 내리던 지난 가을에 남산의 불상들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계곡 깊은 곳까지 다시 봄이 찾아왔을 때,
봄볕에 눈부신 화강암 속의 부처들은 빛나는 광채를 머금고
환한 미소로 선객들을 맞고 있었는데,
산 아래 초목에 둘러싸인 삼릉계 관음 보살상은 이미 봄을 배웅하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이렇게 빠르고 덧없다.
남산의 잘생긴 바위마다 돌부처들이 새겨진 후,
이 산 위에서 어김없이 일어났던 수천 번의 계절 사이에 낀 또 한번의 계절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경주 남산 칠불암의 불상들. 뒤쪽 큰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과, 앞쪽 바위 사방에 새겨진 불상을 합하여 칠불암이라 부른다.
만춘의 남산 계곡에는 이제 온갖 초목이 내지르는 생명의 아우성으로 가득 차 있다.
계절의 공전에 자신의 생을 맡겨야 하는 초목들은
잠시의 푸르름을 향해 불처럼 피어오르면서,
온 산 가득 엽록소의 짙은 향기를 질펀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야생하는 것들은 피고 짐의 반복을 이 봄에도 온 힘을 다해 수행하고 있었는데,
서른 구비의 계곡 여기저기 앉아 있는 돌부처들은 계절의 운행을 벗어나 있다.
자연 속으로 편입된 따뜻한 소우주들
반월성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남산 위에서 돌부처들은
인간세의 흥망성쇠를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단 한번도 가부좌를 풀지 않고 화강암 속에 들어앉아 있다.
풍요롭던 신라 왕국은 이제 역사 속의 왕국이 되었지만,
불국정토를 향한 신라인들의 간절한 성정은 돌부처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산 석불들의 얼굴과 수인과 법의 자락 속에 신라인들의 마음들은 오늘도 맴돌고 있다.
바위는 불상이 기거하는 집이다.
그것은 자연이며 종교이며 예술이다. 그것들은 영원히 살아 있다.
도금가루를 뒤집어 쓰고 번쩍거리는 법당 안의 청동불에서는
돌부처의 따사로운 향기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위엄과 권위가 느껴질 뿐이다.
돌부처들은 하나의 축소된 자연이며 소우주다.
그것은 자연의 체계 속으로 완전히 편입된 인간의 유일한 구조물이다.
인간이 조성한 것이면서도 인공의 기교가 느껴지지 않는 그 석불들은 무섭다.
땅 위에 솟아있는 자연의 일부를 다스려 그토록 영험한 힘을 불어 넣었던
신라인의 영혼이 그 속에서 함께 기숙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돌이 아니며 예배대상을 넘어선다.
불자가 보면 불심을 우러나게 하는 영험한 부처님의 모습이고,
조형 예술적 측면에서 보면 깊고 영롱한 미적 기운을 발산하는 고대의 조각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남산 불상들의 불교사적 계보와 의의에 대해서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인의 마음의 총화이며, 신라 중생의 구도의 표현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의 심성과 풍토와 미적 감수성이 하나로 압축되어 있다.
삼릉계 석불좌상
남산의 불상들은 계곡 여기 저기에 흩어져 천년을 수행하고 있다.
구도의 길로 이어진 불타(佛陀)의 나라
신라인들이 영산(靈山)으로 섬기며 불심의 도장으로 삼았던 남산은
산 전체가 미술사의 한 장이며, 신라 불교의 성지이다.
화강암 등줄기를 희끗 희끗 드러내고 있는 그 늙은 산은
남에서 북으로 길게 드러누워 경주와 함께 존재해 왔다.
거기엔 고준(高峻)한 봉우리도 없고, 깊은 낭떠러지도 없다.
심산유곡이나 신비감 도는 경이로운 풍경들 대신에 풍화된 화강암들이 널려 있을 뿐이다. 토산(土山)과 골산(骨山)이 뒤섞인 그 산은 경건함과 유순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노송 우거진 옛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험준한 계곡을 지나야 하고,
헐거운 산허리를 지나면 거대한 바위들이 가로막는다.
남산을 넘을 때 겪어야 할 유순함과 험준함은 중생의 삶의 길과 다르지 않다.
구도의 길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남산을 오르는 삼릉계 초입에 앉아 있는 목잘린 부처가
구도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가를 또한 몸으로 말하고 있다.
가사의 동정을 단정히 동여맨 그 참수당한 부처는
깨어진 육신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적멸의 세계에 들어 있다.
그 불상은 여기서부터 불타의 나라임을 알리는 이정표처럼
길 위로 불거져 나온 암반을 좌대삼아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자기를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는 불자의 길이 그러함을 부처는 또한 말하고 있었다.
허름한 기교로 빚어낸 해탈의 얼굴들
남산 바위 속에 들어 있는 부처들은 한결같이 깨달음을 얻은 자의 얼굴이다.
삼릉계 너른 바위 속에 선각으로 현현하신 삼존불상의 얼굴이나,
상사암 높은 절벽 위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마애여래상의 얼굴이나,
용장사지 뒤편 바위 속의 젊은 여래상이나,
칠불암 큰 바위를 광배삼아 관능적 몸매의 협시보살의 보위를 받고 있는 마애불이나
모두 해탈한 자의 침범하지 못할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허름한 기교를 가지고 저토록 영원한 형상을 깎을 수 있었던
신라인의 마음의 표상이 또한 그 속에 있다.
고해의 바다 위를 헤매는 중생들은 남산에 올라
그 불상의 지고한 표정 앞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산 돌부처들은 그토록 명징하였다.
사바세계의 온갖 번뇌로 아픈 중생들이 쏟아놓는 간절한 기구를
그 불상들은 천 년 동안 이 산 위에서 들어왔으므로,
이 땅 민중들이 겪었던 고난의 삶에 대한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 터인데,
나 같은 중생이 볼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부처들을 새겨 놓았던 신라 석공들의 눈물겨운 고난의 자국들 뿐이다.
이제는 정 자국들이 풍화에 지워져 화강암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지만,
높은 바위에 매달려 수없는 망치질로 바위를 쪼아
부처의 형상을 찾아내려 했을 그들의 환영을,
불상의 신체에 가해진 수없는 자국들에서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자국들 하나하나에는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려 했던
신라 석공의 뜨거운 정념과 세계에 대한 꿈들이 묻어 있다.
그 꿈들은 천년 전 이 산 위에서 들려왔을 석공들의 돌 깨는 소리와 합쳐져
천년을 변치 않는 신라 정신의 향기
나는 남산 등산로를 따라 추적한 불적들에 관한 학술적 역사적 정보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늙은 산마루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은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와 정신의 아득한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계통을 통해서, 또는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만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남산 골짜기들에 흩어져 있는 불적들 앞에서
불현듯 느꼈던 생각들을 적고 싶을 뿐이다.
박모의 산등성이에서 어둠에 잠기고 있는 노을 속으로
검은 형체를 드러내는 용장사지 3층석탑을 돌아내려 올 때,
남산에 대한 철학적 미학적 과장들은 그토록 단순한 탑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탑은 세상의 삶의 의미들을 모두 합쳐서 쌓아놓은,
사바세계와 천상계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용장사지 능선에 선 3층 석탑은 계곡의 아래쪽에서 보면 하늘에 묻히고
옆에서 보면 노을진 능선 밖으로 머리를 들고 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그 탑이 발산하는 종교적 신비감의 본질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감은사 쌍탑이나 남산리 쌍탑 같은 당당한 탑의 혈통을 이어받은,
작지만 명료한 아름다움을 지닌 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마음에 남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낙엽이 바람에 몰려다니던 지난 가을이나,
신생하는 초목들의 잎들로 가득한 만춘의 덧없는 하루에 올랐던
남산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올 때마다 그 산은 계절의 운행의 한 지점에서 모습을 바꾸고 있었지만,
돌부처들의 표정은 언제나 명징한 그대로다.
호롱불 밑에서 살았던 유년의 기억처럼, 남산은 가물거리는 옛 향수를,
그리고 신라인의 정신의 향기를 불러일으켜 준다.
꼭 10년전, 하나은행 사보의 청탁을 받아 경주남산에 대해 쓴 글이다.
나는 경주 남산에 세 번을 올랐지만,
계곡마다 흩어져 있는 불상들의 미학적 의미와는
아득한 거리가 있는 글밖에 쓸 수가 없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글이라서 길고 감상적이지만,
내 정신의 노동이 배어 있기에 여기에 올려 폐기처분 한다.
<하나은행
사보> 9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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