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39회 정준화 동아방송예술대학교수의 부친
백수 정완영 선생님께서 8월 27일 3시경 영면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13호(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222)
발인 : 8월 31일 수요일(5일장, 한국문인협회장)
장지 : 경북 김천 ( 백수문학관 노제 : 13:00~14:00 )
백수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중략)/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조국, 정완영)
국어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 읽어 봤을 시조 '조국'(祖國)을 지은 시조시인 백수(白水) 정완영(鄭椀永`97)은 1919년 영일 정씨 입향조 정이교(鄭以僑`1449~1498)의 15세손 정지용(鄭智鎔)과 연안 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근대적인 교육환경이 갖춰지기 전 영일 정씨 문중은 봉암(鳳巖)서당이란 문중서당을 열고 후손들을 교육했다. 정완영의 아버지 정지용은 초대 김천 유도회(儒道會) 회장과 섬계 서원장을 지냈다. 이런 가풍 속에 정완영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한학과 더불어 주학을 배웠다.
정완영은 봉계공립보통학교 4학년이 되던 1927년, 가족이 일본과 한국으로 흩어지는 등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해 마을에 큰 홍수가 났고 정완영의 아버지 정지용의 논이 물에 떠내려가면서 가족 전체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농사에 실패한 정지용은 먹고살기 위해 아들 정완영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다. 당시 정완영의 할아버지와 어머니, 형 등은 봉계에 남았다.
정완영은 아버지와 함께 일본 곳곳을 유랑했으나 객지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정지용은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다시 김천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정지용은 아들 정완영을 일본 오사카 천왕사 야간 부기학교에 입학시켜 2년간 공부를 시켰다. 이후 정완영은 1937년 고향 김천으로 다시 돌아왔다. 봉계공립보통학교 5학년에 복학한 정완영은 이선흥, 홍성린 교사로부터 우리의 전통 가락과 시조에 대해 배웠다.
시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정완영은 시조작가 조운(曺雲)을 동경했다. 조운은 1920년대 중반부터 국민문학파를 중심으로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에 참여했던 시조작가로, 최남선 이후 이병기와 함께 시조부흥운동의 후반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조운의 문하생은 아니었지만, 그의 문학세계를 동경했던 정완영은 조운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적인 이상과 연결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시조 창작에 전념하던 정완영은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발족한 후 이듬해 동인지 '오동'을 출간했다. 이후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에 '해바라기'가 당선되고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조국'이 당선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정완영은 지금까지 3천여 편의 시조를 창작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시조 '조국'은 1974년 국정교과서에 수록됐고, '부자상' '분이네 살구나무' 등의 작품이 초`중 교과서에 수록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완영은 저서 '차(茶) 한잔의 갈증'에서 시조 '조국'에 대해 "섬겨야 할 조국이 없는 날에 급기야는 광복의 날은 돌아왔건만 사람마다의 가슴에 먹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여순(麗順)사건이 일어나고, 대구 10`1사건, 6`25전쟁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암울한 생각을 울며 읊조렸던 것이 후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나의 작품 '조국'"이라고 밝혔다. '조국'은 시대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고 조국의 비극적 현실을 깊이 슬퍼한 정완영의 조국애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완영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다. 그의 호 '백수'(白水)는 고향 김천(金泉)의 샘 천(泉) 자를 파자해 '백' 자와 '수' 자로 나눈 것이다. 이외에도 정완영은 고향 김천을 둘러싼 황악산과 자신을 연결하기도 했다. 평소 정완영은 주변 지인들에게 "황악산의 높이가 1,111m인데 내 생일도 11월 11일"이라며 고향 사랑을 보였다.
정완영은 1974년 제11회 한국문학상을 받았으며 1989년 제5회 육당문학상, 1995년 은관문화훈장, 1999년 제2회 만해시문학상, 2004년 제1회 육사 문학상, 2007년 제5회 유심특별상, 2008년 제13회 현대불교 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더불어 1992년 한국시조시인협회장, 2003년 한국문인협회 고문, 2005년 경상북도를 빛낸 100인 선정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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