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기업을 키웠다] 캐프 송설31회 고병헌 회장
삼성차 조업 중단에 부도 위기…와이퍼 해외시장 수출로 돌파
“전화위복(轉禍爲福), 호사다마(好事多魔), 소탐대실(小貪大失)”
자동차 와이퍼 생산 업체인 ㈜캐프의 역사를 말하는 사자성어다.
초기부터 수차례의 위기를 겪었던 캐프는 위기를 이겨내고 지난해 단일품목으로 1억달러의 성과를 올려냈다. 회사의 성공은 고병헌(64) 회장의 원칙경영과 위기관리능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창립과 시련
고 회장은 캐프를 설립하기 전 지역 기업의 전문경영인이었다. 공채로 입사해 15년 만에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른 그는 40대의 나이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그는 “월급을 받는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펼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며 “나의 회사를 가지고 나만의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결국 1995년 전문경영인의 생활을 그만뒀다. 삼성이 자동차분야에 뛰어들면서 삼성자동차에 와이퍼를 납품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와이퍼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다”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 꿈에 한발 다가설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시련은 일찍 찾아왔다. 1998년 IMF가 터지면서 삼성자동차가 휘청한 것. 회사가 본격적으로 와이퍼 양산에 들어섰지만 삼성자동차는 애초 약속한 주문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일 년도 되지 않아 삼성자동차는 조업을 중단, 결국 캐프와 함께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 회장은 앞이 캄캄했다. 만들어 놓은 물건은 재고로 쌓이고 결제어음은 누적돼 갔다. 심지어 대학생이던 자녀 명의로 을 받아 어음 결제도 했다. 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당시 1인당 최대 5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었던 터라 친척들까지 동원해 을 모아 버텼다”며 “두 달간 임금도 체불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스스로 경영을 잘못해 회사가 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바닥을 치고 나와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1달러도 아까워”
이후 고 회장은 회사 경영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제품을 판매하기로 정했다. 완성자동차에 납품만 했다가는 언제 회사가 기울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 회장이 눈을 돌린 곳은 해외였다. 고 회장은 “자동차 와이퍼의 경우 소모품이어서 애프터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품목이다”며 “해외 대형유통점으로 판매망만 구축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해외 바이어를 찾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빚을 내며 회사를 운영한 고 회장이 해외에서 영업을 할 비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추운 겨울에는 가장 가격이 싼 숙박시설에서 잠을 청했고 따뜻한 여름에는 공원 에서 새우잠을 잤다. 1달러라도 아끼자는 마음에 고 회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는 “지금도 해외에 나가면 지갑에서 달러를 꺼내지 못한다”며 “그때 고생고생하면서 달러를 아꼈던 것이 아직도 몸에 배 있어서다”고 을 보였다.
고 회장은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는 잃지 않았다. 바이어와 만남은 항상 최고급 호텔 라운지에서 가졌다. 그는 자신이 마치 그 호텔에 묵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약속시간 한 시간 전 호텔에 도착해 말끔하게 차려 입은 뒤 를 타고 내려왔다.
“돈을 아끼기 위해 내 몸이 불편할지라도 대한민국, 캐프라는 회사가 바이어에게는 괜찮은 곳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고 회장은 또 다른 일화를 언급했다. 그는 “올림픽 이후 한국의 위상이 클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여전히 한국이라는 는 해외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우리의 제품이나 기술력을 알리기 전에 대한민국을 먼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 회장의 선택은 ‘한복’과 ‘태극기’였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할 때면 부스 위에 항상 태극기를 내걸었다. 여직원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외국인에게 미소를 보냈다. 이를 인상깊게 여긴 바이어들이 하나둘씩 캐프의 문을 두드렸다. 전화위복의 순간이 고 회장에게 온 것이다.
◆호사다마
2000년 들어서면서 회사의 수출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 회장은 ‘할 수 있다’는 이 생겼다. 바이어가 몰리면서 해가 갈수록 생산 물량이 늘어났다. 하지만 2003년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 최신 시설을 들여놓은 공장에 불이 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고 회장은 임시방편으로 공장 밖에서 제품 조립을 지시했다. 그는 “마당에 을 치고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제품을 만들었다”며 “당장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나는 고객의 등급을 따로 분류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우선 주문량을 맞춰야 하는 A에서부터 납기일을 조금 미뤄도 되는 D까지 회사를 나눴다.
회사 화재를 걱정했던 바이어들은 위문차 캐프를 찾았다. 고 회장은 이를 두고 “화재가 발생했으니 과연 제때 납품을 하겠느냐는 의구심에 현장을 들렀던 것이다”며 “하지만 우리가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고 A부터 D까지 모든 등급 회사에 제품을 제때 납품했다”고 말했다.
‘신뢰’라는 무기를 캐프가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 회장은 “어려울 때 한가족처럼 기업의 운명을 함께 극복해낸 우리 직원들이 바로 회사의 주인인 셈이다”며 “이를 바탕으로 회사 경영의 원칙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4무(無) 4다(多)의 경영인
화재의 고난을 극복한 고 회장에게 여전히 어려움이 해 있다. 2008년 겪은 키코 사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가슴속에 세 가지 사자성어를 담았다”며 “전화위복, 호사다마, 소탐대실’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지금의 시련 역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회사를 경영해나가고 있다.
끝으로 고 회장은 캐프의 ‘4무(無)4다(多)’의 경영원칙을 설명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세운 고 회장의 방침이다. 그는 “우리 회사는 정년이 없고, 비정규직이 없으며, 성차별과 체벌이 없다”며 4무(無)를 설명했다. 또 “수출을 많이 하고 고용창출을 많이 하는 회사, 세금을 많이 내며 지역사회 봉사를 많이 하는 기업이 캐프다”며 4다(多)를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의 경영원칙에 따라 세계 최고의 와이퍼 생산 업체가 되겠다며 호탕한 웃음으로 다짐했다.
단일품목으로 1억$ 수출, 세계 3위 생산업체로…1995년 창립 ㈜캐프
1995년 창립된 ㈜캐프는 현재 세계 3위 생산업체로 2008년 독일 헤르만 지몬 교수가 '히든 '으로 꼽은 기업이다. 현재 세계 40개국 100여 개 업체를 통해 를 공급하며 전 세계 와이퍼 공급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캐프의 저력은 실적에서 나타난다. 2001년 100만달러 수출탑을 시작으로 2008년 5천만달러 수출탑을 받은 데 이어 불과 3년 만에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며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또 17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 6개국에 8개 해외 지사를 두고 있다. 고병헌 회장은 "회사가 생산하는 와이퍼는 국내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40여 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전체 매출 중 93.7%가 직수출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매년 1개 이상의 사업장 및 회사를 설립하며 세계시장 석권을 목표로 땀과 열정을 쏟고 있는 회사는 인재 확보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 회사는 삼성전자와 `, 등 출신 국외장들이 해외 유통을 이끌고 있으며 한국에서 그들을 지원해주는 본부에도 와 와세다대, 런던대 등 유학파가 대거 포진해 있다.
고 회장은 "2015년까지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뒤 2020년에는 매출을 10배 이상 올리겠다"며 "세계 최고의 와이퍼 생산 회사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12-02-27 대구매일신문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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