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역사관

아!세월아, 세월아! (송설10회 김창을)

보리숭이 2009. 9. 16. 21:56

아! 歲月아, 歲月아! 오는 歲月을 막을 수 없듯이 가는 歲月 또한 잡을 수 없는 게 우리내 인생살이의 전부인 듯! 과학문명이 제아무리 발달해 본들, 이 두 가지 사실에서만은 어쩔 수 없기에 인간의 한계와 능력이 이곳에 그어진 듯 생각된다.
1989년 9월 10일 오전11시경 경북김천시부곡동 소재의 金泉中學校에는 백발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교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모두는 교문주변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현상들이 지난날의 추억과 회상을 되살리게 하는 진기한 것들로 反映되고 있는 듯, 눈알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8년전인 1931년 3월에 靑雲의 꿈을 안고 이 학교에 입학한 후 1945년 3월에 중학교의 전과정을 履修하고 졸업한 이 학교의 10회 졸업생들이다. 졸업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기에 그들의 이날의 行次는 45년 만의 해후인 것이다. 그간 개인적으로는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서본 일이 몇 번씩 거듭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급우들만의 집단적인 모임을 위한 行次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만나자 말자 서로가 얼싸안고 또는 부둥켜안고 “이게 몇 년 만인가?” 하고 놀라며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서로들 생각나는 대로 지난날 소년시절을 회상해 가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학교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學制의 改編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어 하나이던 학교가 두(개의 학교로 나뉘어 졌기 때문에 더욱 변했다. 그러나 示煉瓦의 不館建物을 중심으로 하여 군데군데 새 모습의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을 뿐 골격은 옛 모습 중심이기에 지난날을 회상하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일행은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45년만의 만남의 자리로 들어갔다. 만남이 있었기에 헤어짐이 있다. 하지만 지척의 거리에서 그리운 얼굴들이 서로들 만나지 못한 체 헤어져 산다는 것의 서글픔이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였다. 필자는 이곳에서 만남의 즐거움을 만끽 하면서 남,북간의 이산가족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헤어짐은 우리들처럼 자연스러운 헤어짐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가로막아놓은 理念의 장벽에 의한 헤어짐이므로 만남에 대한 기대란 용의하지 않기에 우리들처럼의 용기한 상봉의 모습이 될 수 는 없다는 것임을 재확인하고 이산가족들의 쓰라림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기도 했다. 입학당시의 급우들 총수는 東組西組의 2학급에 약 100명, 그들 중 이날 모임에 참석한 총원은 약 30명, 불참한 급우들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급우도 상당수에 달할 것이다. 이날의 모임을 기점으로 하여 매년 1회씩 상봉키로 하였으므로 다음해 모임부터는 급우 찾기 등의 홍보활동전개로 보다 많은 급우들의 참석이 예상되기도 했다. 이날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그간의 자기소개와 간단한 여홍이 있은 다음 母校의 설립자이신 崔松雪堂할머님의 묘소참배, 그리움과 정서가 깃든채 도사리고 있는 옛 기숙사 자리에 신축중인 현대식 기숙사건물의 신축장소를 비롯하여 학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산회하였다.

이날 모임의 참석자 명단[無順] :송종만(서울),최영환(부산),김재주(상주),안장강(서울),김창을(부산),이두식(상주),오?수(서울),김건호(부산),양??(상주),이삼선(서울),정연형(부산),천건영(상주),조규연(서울),강영구(김천),남구(충북),진원섭(서울),김진수(김천),최창곤(서울),라길수(김천),김광연(서울),이원택(김천),조남일(경기),최준동(김천),김병애(대구),홍재용(김천),홍영식(대구),박기한(대전),최세호(대구),박길환(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