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00여년前 백제유물..일반에 첫 공개>
익산서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展' 개막
지난 1월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백제 무왕시대의 각종 유물과 사리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이 27일 익산시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 개막됐다.
이번 사리장엄전은 내달 26일까지 한 달간 계속된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차 보존처리가 끝난 백제 무왕시대의 유물 70여점으로, 지역 불교계와 전북도 등의 요청에 따라 애초 출토된 미륵사지에서 한 달간 일반에 공개되는 것이다.
문화재연구소와 전북도, 익산시는 공동으로 이날 오전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김완주 지사와 금산사 회주(會主)인 월주 대종사, 이한수 익산시장 등 불교신자와 시민 등 4천-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리장엄 특별전' 개막식을 했다.
이날 특별전에는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를 비롯해 미륵사의 창건 시기와 배경을 밝혀 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사리호 안에서 나온 사리와 유리구슬, 금제 족집게, 은제 관식 등이 일반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관람자의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시급한 직물류, 도자(칼), 사리병 조각 등의 일부 유물은 이번 전시회에서 제외됐다.
개막식에 이어 미륵사지 석탑 터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 교구본사인 금산사의 주관으로 '사리 친견 기념법회'가 열렸다. 특히 이날 법회 중간에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8호인 '영산 작법'이 공연돼 관심이 쏠렸다.
한편, 지난 1월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사리를 담은 금제 사리호(舍利壺)와 석탑 조성 내력을 적은 금판인 금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백제 특유의 머리꽂이 장식인 은제 관식(冠飾) 등 각종 유물 500여 점이 발굴됐다
“백제 한문학 사상 최초의 사륙변려체”
익산 미륵사지석탑서 발견 ‘금제사리봉안기’
지난 1월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서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이하 사리기·639)에서 백제 한문학 사상 최초의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문장이 등장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의 박중환 학예연구관은 지난 27일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소장 정재윤) 주최로 교내 백제교육문화관에서 열린 ‘백제불교와 왕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박 연구관은 이날 ‘미륵사 사리기와 백제 변려문의 발전’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사리기에 포함된 사륙문은 단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개로왕대 조위상표문(朝魏上表文·472)에서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654)로 발전해가던 백제 변려문 발달 과정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문장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변체문(騈體文)·사륙변려·사륙문으로도 불리는 변려문은 이른바 ‘대구(對句)’를 존중하며 지은 문장 형식을 가리킨다. 변려문은 시기에 따라 4-4자(구)의 변려문으로부터 4-6자의 변려문으로 바뀌어가는 변화 과정을 거쳤는데, 4-6자의 변려문(사륙변려문)은 변려문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하고 발달된 형식을 보이는 것이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 앞면에 99자, 뒷면에 94자 등 모두 193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미륵사지석탑 출토 사리기의 문체에 대해서는 그동안 ‘경서체(經書體)를 기초로 해 사륙변려체도 보인다’는 정도의 평가가 주를 이뤘었다. 경서체란 일반적으로 시경·서경·역경 등 유교 경전에서 사용한 문체를 말한다.
박 연구관에 따르면, 사리기에서 가장 복잡한 외형을 갖춘 사륙변려문, 즉 사륙문의 구조를 충족시키고 있는 부분은 “왕후즉신(王后卽身) ‘심동수경(心同水鏡) 조법계이항명(照法界而恒明) 신약금강(身若金剛) 등허공이불멸(等虛空而不滅)’” 단 1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왕후 당신의 마음은 수경(水鏡) 같아서 법계(法界)를 항상 밝게 비추시고 몸은 금강(金剛)과 같아서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로 번역되는 이 구절 외에도 문장의 많은 부분에서 4자 1구로 구성된 대구 표현들이 포함돼 있다는 게 박 연구관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미륵사 사리기 발굴을 계기로 ‘삼국사기’의 기록 등에 전하는 백제 문장을 검토한 박 연구관은 백제 변려문의 초기단계 문장이 ‘삼국사기’ 온조왕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음을 밝혀냈다. 기원전 18년과 기원전 4년 온조왕대의 도읍 기사나 궁실 초축(初築) 기사, 369년 근구수왕이 태자 때 막고해(莫古解)의 표현을 빌려 전해지는 문장의 표현 수준 등은 비록 4자 1구, 총 4구의 규모를 넘지 못하는 짧은 글들이지만 문장 규모와는 별개로 발달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이는 백제가 건국 초기 단계부터 낙랑 등의 한군현과 인접해 한문학을 비롯한 중국의 선진문화 수입이 빨랐던 환경과 무관치 않다는 게 박 연구관의 설명이다. 나아가 박 연구관은 기원전후 온조왕대부터 백제 말기인 7세기 중엽까지 백제 변려문의 발전단계를 ▲초기 단문단계(온조왕대~근구수왕·기원전후~4세기 후반) ▲운율(韻律) 혼용단계(개로왕대의 조위상표문) ▲사륙률(四六律) 정착단계(미륵사지석탑 사리기) ▲최성기(最盛期) 정형화 단계(사택지적비)로 시기 구분했다.
박 연구관은 특히 “고려시대 김부식 등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은 고문주의자들로 당송대의 고문체(古文體)를 숭상하고 남북조 시대의 변려문은 배격했다”며 “‘삼국사기’ 백제본기 등에서 발견되는 초기 변려문들은 ‘삼국사기’ 편찬 과정에서 참고한 원전들, 즉 ‘고기(古記)’로 통칭되는 원전 자료들에서 ‘직접 인용’한 백제 당시의 문장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사찰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으로 보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 (0) | 2009.07.06 |
---|---|
익산 미륵사지 사리친견 (0) | 2009.07.06 |
경북 김천 칠불사 (0) | 2009.05.05 |
왕벚꽃, 홍벚꽃, 청겹벚꽃 가득한 개심사 (0) | 2009.04.23 |
서산 보원사터를 둘러보고 (0) | 2009.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