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 정완영 선생의 문학관 소식을 접하면서 -
백수 정완영 선생의 고향은 경북김천이다
나와 본향으로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다
선생은 평소 말이 적으며 성품이 온화해 많은 제자들의 존경을 받는다
초등학교 다닐때 역 근처에서 문방구를 경영하며 늘 미소를 간직하고 계셨다
어느 날 문방구 아저씨가 대구 메일신문에 동시가
당선되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연세는 30대 후반으로 기억한다
내가 김천고등 모교에 부임했을때 24세 였으며 얼마 후 장남이 모교에 입학 나의 제자가 되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명석 했으며 아주 잘 생겼다
백수 정완영선생은
60 세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그는 가끔 고향을 찾아 옛 친구들과 정을 나눴으며 나도
이웃에 살았으며 작품을 당시 써 오므로 함께 했다
그 이전 남산동에 거주했을 당시 내 집과 나란이 10년을 함께 살았다
가끔 낙시로 세월을 낙는듯 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지 얼마되지 않아 전국 일간지 신춘문예심사를 하며
평을 했다
한국에 발행되는 일간지 모든 신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조 부문이었으며 고향에 있을때 여러 제자를 두었다
이후 대학초빙 강의를 비롯 월간문학 전문지 심사를 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국시조문학회 회장을 맏기도 했다
이은상.이병기 .조병화.김상옥.정완영의 맥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 작가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조국" 이 실려 있다
선생님은 정이 많고 고향을 찾으면 옛 정담을 자주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은 새벽까지 작품과 삶에 대해 서부초등학교
운동장 후편 나무의자에 앉아 새벽까지 이야기 나눈적이 있다
연세 83 쯤으로 생각했는데 신문에 89세로 나와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 그러다 보니 내 나이도 70에 가까워 지고 있어 씁쓸하다
직시사 입구 큰 바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번엔 직지 공원 윗곳에 백수 문학관이 운치있게 지워져
개관을 앞두고 있다
본향 후배들이
현대시조 맥을 잇고 선생의 문학세계를 계승키 위해 해마다 백일장이 열리고
있다고 들린다 참 반가운 일이다
직지사는 한국 사찰 중 산세 수려하기로 으뜸이다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고찰로 신라시대 창건 되었다 1000년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
은은한 향이 묻어나 당시 불교문화가 번성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2008년 12월1일
작곡가/칼럼리스트 이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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