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조사(아스카데라)---아스카시대 최고의 대불을 모시다
투명한 햇살이 은은하게 퍼지는 이른 아침에 아스카데라에 도착했다. 공기는 수정처럼 차가웠다.
피천득의 수필 중에 이런 글이 생각난다.
“그들은 이른 아침, 바이올렛빛 또는 분홍빛 새벽 속에서 만났다.” 얼마나 근사한 시간적 배경인가?
나는 하루 중 아침 시간을 제일 사랑한다. 그 시간대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 창조의 기운이 느껴지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신령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스카는 592년에서 710년 사이 약 1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믿기 어려울정도로 조용하고 소박한 곳이다. 나지막한 구릉과 아기자기한 논이며 작은 가옥들과 전신주들이 마치 우리나라 시골을 보는 듯 편안하다.
아스카데라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백제계의 소가 우마고와 스이코 천황을 섭정한 쇼토쿠 태자가 불사를 시작하여 596년에 탑이 완공되었고, 609년에 금동대불이 완성되었다.
아스카데라의 가람배치는 발굴 조사 결과 1탑 3금당식이다. 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금당이 2개가 있고 탑 뒤에 금당이 1개가 있다. 이런 배치는 평양 청암리에 있는 고구려시대 금강사지와 같고, 최근 발굴된 백제시대 부여 왕흥사 가람배치와 같다. 이것이 약간 변형된 것이 경주 황룡사이다. 황룡사 가람배치는 3개의 금당이 일렬로 배열되어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자리에 1826년에 작은 법당이 재건되어 대불을 모셨다.
대불은 아스카 양식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불상이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산사처럼 자그마한 법당이다. 작은 몸집의 할아버지가 아스카데라 연혁을 설명했다.
어딜가나 절의 안내는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하신다. 그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더할나위 없이 친절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다. 일본인은 아침마다 흙탕을 씻어내는 기분으로 목욕을 한다고 한다. 활짝 핀 벚꽃처럼 상큼하고 아름답고, 맑고 더러움이 없는 생활을 좋아한다는 일본인의 습성을 할아버지에게도 느낄 수 있었다.
법당 안에는 먼저 장대한 대불이 눈에 들어왔다. 대불은 15톤의 동으로 만들었다. 2번의 화재로 바깥의 금박은 벗겨나가고 군데군데 화상의 흔적도 있다. 대불은 거룩한 부처님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슬픈 음악을 많이 들어 온 이해심 깊고 인자한 할아버지 같다. 부처님은 4겹의 큼직한 연꽃잎 위에 앉아서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수인을 지으시고 지그시 눈을 감고 계신다. 얼굴에는 미륵반가사유상에서 보았던 법열의 미소가 아니라 사바세계의 가없는 중생들을 보시고는 연민과 자비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니 비애로 가슴이 미어질 듯 저려온다.
많은 불상을 보았지만 저다지도 인간적이고 편안한 부처님은 처음이다.
그 앞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싶은 부처님이다.
“이 불상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한 7세기 초기의 석가모니불입니다. 얼굴이 갸름한 걸로 봐서 중국 북위에서 고구려를 거쳐 백제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봅니다. 이 불상은 539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과 비슷합니다. 백제 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문화와 만납니다. 서울에 백제시대 유적인 석촌동 고분군은 적석총으로 고구려 유적인 장군총과 비슷합니다. 법당 내부를 보면 종보와 대들보를 잇는 투각된 화반 대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런 양식은 1185년 헤이안시대 까지 나타나는 양식입니다. ”
우리 스님의 문화재 설명을 듣고 법당 밖으로 나왔다.
천 년 전의 햇살 같은 신비한 기운이 아스카데라를 포근히 감싸는 것 같았다.
3년 전 금강회 인도 순례에서 첫 날 보았던 기원정사가 아스카데라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곳 모두 겨울날 이른 아침에 둘러보았다.
기원정사는 인도 땅에 부처님이 가장 많이 머문 사찰이고, 아스카데라는 일본 땅에 세워진 첫 사찰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감읍했겠는가?
감로수와 같은 부처님 말씀이 은은히 들리고, 편안하고 자비로운 부처님 눈길이 느껴지는 곳 같았다.
“스님, 이 아스카데라가 인도의 기원정사와 닮았어요, 느낌이 참 비슷해요” 하니,
스님은 말없이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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