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5일 목요일 (1일째)
여행지: 나라 - 동대사, 나라 국립박물관 글쓴이: 유선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순례길을 떠나며
우리들은 여행을 떠난다.
일상이 주는 진부함과 지루함을 벗어던지고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그래서 떠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텅 비워둔 눈과 가슴으로 만나는 색다른 사람과 다양한 볼거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지만 낯선 땅에서의 발걸음은 가볍다. 손끝을 빠져나가는 시간의 아쉬움을 좀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표정은 다양해지고 감성은 예민해져서 보고 들은 것 모두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그것들은 마침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그리고 더 먼 곳을 향한 또 다른 여행의 유혹......
일본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법회를 마치고 직지사 산문 다실 <다반향초>에서 지도법사 흥선 스님과 법담을 나누던 중 일본의 법륭사를 비롯한 일본의 절 이야기가 나왔고, 다음의 성지순례는 일본으로 가자는 말도 나왔다. 나는 일본을 세 번 다녀왔고 교토와 나라도 다녀온 적이 있어 큰 호기심은 없었지만 스님과 동행하는 순례길이라면 흔쾌히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저 그만한 곳이라 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그 느낌이 배가되는 법이니까. 더구나 일본의 건축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니까.
금강불교회에서는 2002년 7월 중국을 다녀온 후로 2004년 1월 앙코르와트 - 베트남, 2006년 1월 인도, 2007년 8월에는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이번이 다섯 번째 해외 성지 순례이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라서 우리가 여행 코스를 짜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에 가있는 조카에게 연락하여 참고할 책을 보내라 하고, 참고할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 받았다. 이것 저것 참고 자료를 보고 오래 고심한 끝에 아스카시대에 창건된 비조사(飛鳥寺 아스카데라), 광륭사(廣隆寺 고류지), 법륭사(法隆寺 호류지), 약사사(藥師寺 야쿠시지)와 나라시대의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 당초제사(唐招提寺 도쇼다이지)를 순례 코스에 넣기로 했다.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청수사(淸水寺 키요미즈데라)와 무로마치 막부시대의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와 (용안사(龍安寺 료안지), 에도시대의 이조성(二條城 니조죠)도 넣었다. 스님께 자문을 구하여 헤이안 시대의 건물인 평등원 (平等院 뵤도인)과 에도시대의 히메지성(姬路城 히메지죠)도 넣기로 하였다.
계획을 하는 중간에 높은 엔화 때문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순례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지도법사 흥선스님과 안호대 이수희 회장님 부부, 홍석규 오세복 홍예빈 가족, 백승환 정경지 부부, 유선철 이금미 부부, 장원자, 조재숙, 김정희, 박병희, 윤미영, 이 정, 정순옥, 서정희, 최임숙, 고한희 법우님으로 모두 20명이었다. 여행 적금의 정산에는 박순희 부회장님께서 수고해주셨다.
여행사는 한겨레투어로 정했다. 그 동안 앙코르와트 - 베트남과 실크로드 여행에서 기대 이상의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행사에 연락하여 연결된 담당자는 김지영 대리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의 시댁이 김천이라서 한 달에 한 번은 김천에 온다고 했다. 인연도 참으로 묘하다 하였는데, 아쉽게도 2008년 12월 31일자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래서 우리 일은 홍미경 대리가 맡게 되었다. 성지 순례를 끝내고 점검해보니 김지영 대리에게서 온 메일이 22통, 홍미경 대리에게서 온 메일이 한 통 있다. 전화는 그것보다 더 많이 했다. 궁금한 것이 무에 그리 많았을까. 지나고 보면 특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여행사 이용수 사장님께서는 우리 회의 망년회날 직접 김천에 내려오셔서 자료를 주고 설명을 하셨다. 고마운 일이다.
2009년 1월 15일 오전 5시 일행은 김천고등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향하였다. 중간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인솔자인 김학열 과장을 만났다. 하나투어 부산지사에 근무하는 몸집이 크고 잘 생긴 사람이다. 하나투어가 한겨레투어의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한겨레투어는 하나투어의 상품도 취급한다고 들었는데 하나투어에서 인솔자가 나온 것이다. 사장님이 김천에 내려오셨을 때 인솔자 선정에 특히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한 터라 기대가 된다.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예정대로 9시 30분에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 OZ144를 타고 11시경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였다. 일정에는 점심식사 후 당초제사(唐招提寺 도쇼다이지)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중심 건물인 금당이 수리 중이라고 하여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와 나라국립박물관을 보는 것으로 오늘 하루 일정을 잡았다. 예정된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도 내일 보기로 하였다.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
동대사는 나라 공원 옆에 있는 절이다. 2003년 여름에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절 입구에서부터 사슴을 만난다. 나라 공원에 풀어놓은 사슴들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털 색깔이 갈색에 가깝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여름이라 꽃사슴의 하얀 반점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유감이다. 일본에는 사슴을 신성시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동대사는 국가에서 지은 국분사(國分寺)이기 때문에 천하태평, 만민풍락을 기원하는 사찰인 동시에 불교 교리를 연구하고 학승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동대사는 쇼무(聖武) 천황(729∼749재위)이 백제승 행기(行基, 668-749)스님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해서 이곳 나라(奈良)에 세우게 되었다. 높이 1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거대한 불상인 비로자나대불(毘盧遮那大佛)은 행기스님의 힘에 의하여 전국의 신도들이 시주한 돈으로 만든 불상이다.
그리고 이 불상을 직접 조각한 사람은 백제인 국공마려(國公麻呂, 712-774)이다. 또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불전의 웅장한 건물을 지은 사람 역시 신라인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 708-778)라고 한다. 따라서 동대사의 거대한 가람은 고대 한국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쇼무천황은 행기스님을 일본 역사상 최초의 최고의 승직인 ‘대승정’(大僧正)으로 받들어 모셨고 스스로 스님의 밑에서 출가까지 했다고 한다.
대불상은 749년에 완성되고, 752년에 동대사 금당인 대불전이 건립되었다.
남대문(南大門 난다이몬)
동대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남대문이다. 8세기 창건 당시의 문은 헤이안시대 때 큰 바람으로 쓰러지고 현재의 문은 가마쿠라시대에 동대사의 부흥에 진력한 重源上人(죠겐쇼닌)스님이 당시 새로운 건축 양식인 송나라의 양식을 바탕으로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남대문은 팔작지붕이며, 정면이 다섯 칸이고 문이 세 개인 이층문이다. 문의 높이는 기단 위에서 25.5m이며, 바닥에서 지붕 안쪽에까지 이르는 큰 기둥이 18개로 21m에 이른다고 한다. 대불전의 규모에 어울리는 일본 최대의 산문이다. 문에 달린 등에는 국화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천황가의 문장(紋章)이다.
남대문에서 흥선스님은 ‘일본에는 히노키(편백) 같은 좋은 목재가 많아서 목조 건축이 발달하였으며 아직도 천년이 넘은 건축들이 남아 있다’고 하면서 부러워 하셨다.
남대문의 금강역사상은 가마쿠라 초엽인 1203년 운경(運慶 운께), 쾌경(快慶 가이께) 두 스님에 의해 불과 69일만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목조상이다. 높이는 둘 다 8.4m 정도이다. 하나는 ‘아’금강, 또 하나는 ‘움’ 금강이라 한다. 아마도 우리가 말하는 ‘훔’을 뜻하는 것이리라. 신체의 크기도 우람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근육과 강인하고 위엄 있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금강역사는 그 어떤 삿된 것도 사찰 안으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고 당당한 자세로 감시하고 있었다.
대불전(大佛殿 다이부쯔덴)
중문을 들어서면 대불전 앞에 있는 팔각등롱(八角燈籠)을 만난다. 일본은 우리처럼 석등을 만들지 않고 청동으로 등을 만들었다. 대불전 앞 팔각등롱에는 가운데 네 면에 음성보살이, 나머지 네 면에는 구름 속을 질주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다. 특히 보살의 의상은 매우 훌륭하다. 부드러운 자태, 악기를 잡은 팔과 가슴 사이의 원근감, 바람에 휘날리는 천의 등 입체적인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현장에서는 대충 보았는데 백승환 선생님께서 카페에 올린 사진을 보고 새삼스레 감탄하였다.
동대사 대불전은 매우 거창한 규모의 불당이며 중층(重層)의 건물로 되어 있다. 주축이 되는 대불전은 건립 당시 裳層(모코시)를 포함 정면 11칸에 동서 길이 87m, 남북 길이 51m의 건물이었다. 지금의 대불전은 두 번의 화재를 겪고 에도시대인 170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재정이 어려워 동서 길이 57m, 남북 길이 50.5m, 높이 49m로 축소되어 재건되었다. 처음의 것 3분의 2크기로 재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계 최대 목조건물이다. 축소 지향의 일본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위압적인 건물이다.
동대사는 화엄종의 총본산이어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다. 비로자나불은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널리 비추는 부처이다. 협시보살은 허공장보살과 여의륜보살을 모시고 있다. 대불전의 중앙에 모신 비로자나불은 신체 높이 15m, 얼굴 길이 5m, 손가락 중지가 1.5m에 50톤의 거대한 부처이다. 손바닥에도 성인 남자 십 명 이상이 설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경건한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독송하였다. 스님께서는 동대사 건축에 대한 설명을 하셨다. 대충 정리하면 ‘대불전의 살미첨차는 고려 초기 이전 양식이다. 소로는 굽받침이 없는 봉정사식과 굽받침이 있는 수덕사식이 있는데 동대사 대웅전은 굽받침이 없는 봉정사식이다. 회랑의 서까래는 모두 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처럼 둥글지 않다. 회랑에서 보이는 보와 도리를 연결하는 솟을합장과 동자주도 고려 시대 이전의 것이다.’
법당을 돌아 나오노라면 밑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기둥이 있다. 구멍의 크기는 부처님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한다. 어른들은 통과하기가 어려우나 학생들은 기어서 통과할 수 있다. 그 구멍을 통과하면 극락왕생 한다고 한다. 우리 팀의 예빈이는 두 번이나 통과했다. 일본인은 오미쿠지라고 하여 점치는 것을 좋아하고 오마모지라고 부르는 부적을 좋아한다. 대불전 안에도 합격 기원 부적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적을 팔고 있었다.
법화당(法華堂 호케도)
일본에 오기 전에 <일본의 건축>이란 책으로 공부를 하면서 동대사에 법화당(法華堂)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니 인솔자 김과장님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더니 “삼월당이 법화당이랍니다” 한다.
법화당은 입장료가 동대사 입장료와 같은 500엔이다. 그러나 문화재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주저없이 보기로 했다. 법화당은 동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740년에서 747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월에 법화회라는 법회가 열린다고 삼월당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최초로 화엄경이 강의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동대사를 세운 행기스님은 젊은 시절에 금종(金鐘)이라는 어린이를 돌보았다. 백제인 아직기(阿直岐)의 후손이다. 이 어린이가 후에 커서 행기 스님의 뒤를 이어 동대사 불사를 마무리한 양변(良弁 로벤, 689∼773) 스님이다. 양변스님은 금종사를 지었는데 법화당이 금종사의 금당 자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대불전을 나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법화당(法華堂)이 있다. 법화당으로 가는 길에 일본 종이 걸려 있었다. 스님께서 일본 종과 우리나라 종의 다른 점을 말씀하셨다.
“일본 종은 우리보다 훨씬 높이 겁니다. 밑부분이 안으로 오므라들지 않으며 용뉴의 용이 두 마리입니다. 연곽이 없으며 연뢰(종유)가 여러 개 있습니다. 당좌는 두 개이며 비천상이 없고, 상대와 하대의 표시가 없습니다.”
법화당에는 본존인 불공견색관음상(不空羂索觀音像)을 중심으로 총 16구의 불상이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불상들 중 12구가 국보이고, 4구가 중요문화재라고 한다. 이 가운데 14구가 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한다. 불공견색관음은 다소 풍만한 체구에 합장하고 있으며 팔이 8개이다.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금빛이 찬란하다. 쓰고 있는 보관은 이집트의 투탕카멘,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보관에 이어 세계 3대 보관의 하나라는 안내인의 설명이다. 관음상 좌우의 두 보살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두 보살의 표정은 매우 경건하고 진지하다. 두 보살 앞에는 금강역사가 있고, 불당 네 모서리에는 사대천왕이 서있다. 이들의 표정은 더 할 수 없이 강인하고 험악하며 금강역사는 머리털까지 세우고 고함을 치고 있다.
나라국립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나라국립박물관은 도쿄(東京), 교토(京都)와 함께 일본의 3대 박물관에 들어간다. 1895년 제국박물관 나라분실로 개관한 후 1950년에 국립박물관이 되었다.
15개 전시실로 구성된 본관에는 아스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의 불상과 조각,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불상 등을 전시한다. 1973년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세워진 신관은 불교 미술을 중심으로 연대별로 전시하고 있으며, 가을(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에는 동대사의 정창원(正倉院 쇼소인)에 수장된 8세기의 귀중한 보물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정창원전도 개최되고 있다.
본관 제1실에는 야마토의 여러 불상들, 1실과 통하는 2실은 일본 불상의 여러 가지 모습과 주요 유물, 반대쪽 1실과 통하는 3실에는 불상의 장엄물, 간다라 중국 한국의 조각, 그리고 중국 고대 청동기가 전시되어 있다.
신관으로 건너가서 전시실을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새 오후 5시가 되었다. 마칠 때가 되었으니 나가달라는 멘트가 나와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박물관을 나온다. 박물관을 나와서 스님께 박물관 구경이 힘들다며 엄살을 떨었더니 당신께서는 종일 있어도 좋다고 하시며 웃으신다.
일정을 마치고 나라 플라자 호텔에 투숙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김과장님이 식사하는 자리에 설치된 노래방 시설을 이용해도 좋다고 하신다. 별로 마음에 없었는데 홍석규 법우님의 딸 예빈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 바람에 노래가 돌아가고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스님도 두 곡을 거뜬히 하셨지, 아마. 그리고 다시 한 번- 예빈아 고맙다. )
이 호텔에는 온천이 있다. 여흥을 끝낸 후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쌓인 피로가 슬그머니 풀어진다. 내일의 순례길을 위하여 깊은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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