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의 도시라는 뜻인 앙코르 왓은 태양의 수호자란 뜻을 지닌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48<1150>)가 처음에는 힌두 사원으로 세웠으나 자야 바르만 7세(1181∼1218) 때
불교 사원으로 바뀐 곳이다. 이 사원은특이하게도 다른 모든 사원은 동쪽으로 향했는데 서쪽으로 향했고 구경할 때도 시계 방향으로 구경하여 죽음에 대하여 명상하게 하는 면이 있다는데 이러한 이해는 이곳이 자야 바르만 7세의 무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천지(天地) 창조(創造)의 신(神) 브라흐만, 천지 관리의 신 비슈누(가루다<독수리> 타고 다님), 창조(創造)를 동반한다고 여기는, 파괴(破壞)의 신(神)쉬바(소 타고 다님)(링가, 요니로 상징됨)를 숭상하였는데 크메르에서는 파괴의 신(神) 쉬바를 숭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2세기에는 인도의 영향으로 비슈누를 숭상하는
기풍이 일었는데 수리야 바르만 2세도 이 영향으로 자신을 비슈누의 화신(化身)으로 여기고 통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원은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헌납(獻納)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앙코르 사원은 참으로 웅장하게 보였다. 우선 중앙에 높은 탑이 좌우에 2개씩의 탑을 거느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의 탑은 메루산(수미산)을 상징하고 나머지 네 탑은 메루산의 봉우리들을 상징하고 있다 한다.
그 다음에는 강 건너에 있는 회랑식 현관이 보였는데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무수한 기둥이 보였다. 이 기둥은 강을 가로지른 다리 왼쪽이 56개, 오른쪽이 52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사원 전체가 서쪽으로 3도 정도 약간 뒤틀려 있다 한다. 그렇게 배치하므로써 춘분과 추분에 메루산 중앙으로 태양이 떠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가 다리 입구를 지키고 다리 양쪽으로 코브라 머리 모양의 용이 길게 몸통을 사원 쪽으로 드리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리를 건너 앙코르 사원 현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이 다리는 원래 아래로 ㄷ자 모양의 공간을 만들어 물이 흘렀다는데 지금은 막아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 반쪽은 복원공사가 좀 이루어졌으나 반쪽은 아직 제대로 복원이 안되어 있었고 놀랍게도 다리 위에 딴 사원에 가 있어야 할 돌 조각이 놓여있는 장면도 눈에 뛰었다. 유적(遺跡) 복원이 결코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 다리는 회랑식 현관까지 거리가 약 200여m가 되었는데 중간에 다리를 구분하는 장식을 하고 있었다.
코브라 모양의 용 장식을 앞에 두고 있는 현관을 들어서니 주판 알 모양으로 주름 잡힌 창, 7개의 창살에 나뭇잎 모양의 정교한 장식을 한 문이었다. 이 문은 좌우로 회랑식었는데 회랑의 오른 쪽을 따라 벽에 다양한 조각을 접하게 되었다.
조각이 없는 빈 공간은 글을 기록하는 공간이라 한다. 얼마쯤 가다가 신상(神像) 하나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 사원이 불교 사원이 되면서 제일 바깥 회랑 중앙에 있던 비슈누 신상(神像)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현관을 지나자 앞에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중앙에 길이 길게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 앙코르 사원이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그 길은 355m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 길을 건너기 전에 현관 오른쪽 뒤쪽에서 현관 회랑에 다양하게 새겨진 조각들, 어느 구석도 소홀함이 없이 새겨진 조각들, 기록할 수 있는 공간들,
기록할 공간이 부족할 때 창살을 들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이 사원 현관으로 들어오는 다리의 길이나 그 다리에 중간을 표시한 사실도 현관에서 사원까지 거리와 아울러 모두 우주의 운행 질서를 숫자화한 방식에 따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숫자를 연구하여 우주적 질서 속에서 이 사원이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낸 사람이 하와이 대학교의 엘리노 말리카 여사라는 사실도 알았다. 또한 이 사원은 이곳의 지반이 약한 것을 알고 이 사원을 건축할 때도 이 사원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지었다는 사실을 가이드의 해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현관 회랑 곳곳에 보이는 압사라(천상의 무희<舞姬>)모습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이 사원에는 이 압사라가 약 2000개(1824개)가 있다고 한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현관 처마는 가루다(독수리)와 코브라 머리 모양을 한 용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잘 조각되어 있었다. 이 현관도 코프라 형식이었다. 우리는 좌우에 코브라 머리 모양의 용이 길게 몸통을 드리운 길을 따라 웅장한 사원을 감상하며 걸었다.
좌우에 펼쳐진 넓은 공간(그 공간 중간에는 좌우로 도서관이 세워져 있었다.) 그 공간 중간에 있는 인공 연못, 멀리 보이는 다섯 개 탑을 가진 웅장한 사원이 빚어내는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絶景)이었다.
우리들은 다리 중간에서 사원을 보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다리를 왼쪽으로 내려가 거기에 있는 호수 부근에서도 사진 찍느라 바빴다.
여기에서 보이는 사원의 모습과 호수에 비친 사원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금강불교회 앙코르 왓 사원 -권오웅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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