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왕국의 상징이자, 오키나와의 상징인 슈리성[首里城]은 폐허로 변한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나하에서 가장 높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슈리성은 일본 본토에 있는 성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류큐왕국이 독립국가로 유지되면서 중국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경의 자금성, 한양의 경복궁, 교토의 고쇼, 나하의 슈리성
오키나와는 일본 큐슈 남쪽에 위치한 제도로 그 중심도시는 나하다. 그 곳에는 옛 류큐 왕국(1492~1879)의 왕궁 유적인 슈리성(首里城)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중국에서 원·명의 교체가 일어나고 일본에선 무로마치에 의해 남북조가 통일되는 등 동아시아에 대대적인 왕조교체가 있던 시기, 오키나와에도 류큐 왕조가 들어섰다. 이들 네 나라의 신 왕조들은 각각 새로운 궁성을 조영하였는데, 북경의 자금성, 한양의 경복궁, 교토의 고쇼, 나하의 슈리성이 그것이다.
나하 동부 구릉지대에 동서 405m, 남북 270m 크기로 건축된 슈리성은 웅장하기 그지 없지만, 왕조가 망하면서 황폐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성의 정문이자 오키나와의 상징이기도 했던 슈레이문이 1958년에, 정전은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영유 20주년을 기념해 1972년에 각각 복원했다. '슈레'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류큐 왕국은 이웃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조선조 초기의 학자 신숙주도 이 곳을 다녀왔을 정도로 우리나라와의 교류도 빈번했다. 신숙주는 이 곳을 다녀온 소감을 <해동제국기>에 소상히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류큐 왕국은 그리 오래지 않아 중국과 일본의 굴레에 얽매이기 시작했다. 슈리성 한 가운데 세워진 북전과 남전이 그것을 말해준다. 북전이란 중국의 책봉사가 머물던 영빈관으로 중국풍으로 지어졌고, 남전은 일본 사신이 머물던 일본풍의 영빈관이었다.
-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권삼윤, 청아출판사)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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