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파각은 850년(문성왕 12)에 혜철선사가 창건하였고, 941년(태조 24) 윤다(允多)가 중수하였다. 그뒤 파손되었던 것을 1767년(영조 43)에 복원하였다. 계곡의 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이름을 능파(凌波)라고 지었다고 한다. 교량(橋梁)과 금강문(金剛門)과 누각(樓閣)을 겸한 것이 이 건물의 특이한 양식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불계(佛界)로 입문한다고 한다.
능파각과 계곡
태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742년(경덕왕 1) 신라 하허삼위신승(何許三位神僧)이 창건하고, 919년(태조 2) 윤다(允多)가 132간을 중창했다. 개산조(開山祖)인 혜철국사(慧徹國師)가 이 절에서 법회(法會)를 열어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 중기 이후 사세가 축소되다 조선시대에 배불정책으로 쇠퇴해졌다. 1683년(숙종 9) 정심(定心)이 중창했으나, 6 ·25전쟁 때 대웅전 등 15채의 건물이 불탔다.
육당 최남선이 1925년 태안사에 와서 “신라 이래의 절이요, 또 해동에 잇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과 같다”라고 극찬한 태안사다. 바로 일주문이 보인다. “동리산태안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데, 글씨는 성당 김돈희(1871-1936)의 글씨다.
일주문을 막 지나 오른편 부도밭에 있으며 고승 광자대사의 부도당이다.
높이는 약 3m에 달하고 지석대부터 상륜부의 보개까지 8각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 위에 탑신을 차례로 놓은 전형적인 8각원당형으로서 보물 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자대사탑 옆에 놓인 탑비는 (해동금석원)의 기록에 의하면 높이 5.2척, 너비 3척으로 나타나 있는데 비신이 깨져 오른쪽 상부와 하부가 멸실된 비편이 귀부와 이수사이에 놓여져 있으나 판독이 가능하다.
비의 두께는 22cm, 자경은 3cm 정도로써 현재 보물 27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 보물273호 ]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73호로 지정되었다.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型)을 기본으로 삼아 지면에 2단의 직사각형 지대(地臺)가 놓인 것 외에는 상륜부(相輪部)에 이르기까지 8각으로 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 대(臺) 위에 8각 하석(下石) 받침돌을 놓았고 각 면에 안상(眼象) 2좌씩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下臺石)은 두드러지게 상촉하관(上促下寬)의 형상이고 각면에는 방향과 형태를 달리하는 사자를 1마리씩 높게 양각하였다. 중대석은 비록 낮으나 품격을 잃지 않았고, 상대석에는 사실적인 단판연화(單瓣蓮花)가 3중으로 조각되었으며, 아래위에 각형(角形)굄과 받침을 3단씩 각출(刻出)하였다. 상대석 위에는 탑신받침이 끼여 있으며, 각면에 안상 2좌씩을 장식하고 상면에 부연(副椽)이 있는 갑석형(甲石形)과 탑신을 받는 쇠시리가 있다.
탑신은 낮은 편이나 온후한 기품이 있고, 앞면에 문호형(門戶形)을 모각하였다. 옥개(屋蓋)는 넓고 안팎에 목조건축 양식을 모각하였다. 상륜부는 앙화(仰花)·복발(覆鉢)·보륜(寶輪)·보주(寶珠) 등이 있어 완전히 보존되었다. 탑의 형태는 둔하고 무디지만 온후한 품위가 있고, 각부의 조각은 나약하나 사실적인 면이 있다. 탑비(塔碑)에 따르면 적인선사 혜철은 신라 말기의 고승으로서 861년(경문왕 1)에 입적하였고, 탑비는 그 이듬해에 세워졌으므로 이 탑도 그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태안사 동종(泰安寺 銅鐘) - 도지정 유형 문화재 제24호 ]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며, 조선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동종이다. 몸체 중앙에 해서체로 된 명문이 양각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天順元年三月日 大鐘鑄焉破 又萬曆九年四月日 大鐘改鑄次 金四百餘斤 入鑄(천순사 원년 3월에 큰 종을 만들었으나 망가졌고, 또 만력 9년 4월에 큰 종을 다시 주조하였는데, 금 400여 근이 들어갔다).’ 이것으로 1475년(성종 6)에 만들었다가 깨어져 다시 1581년(선조 14)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갑사 동종(보물 478)이 주조된 것보다 3년 앞선 것이다.
위에 용통과 용뉴가 있으며, 용 머리는 매우 선명하나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어깨 위에는 1 단의 연화무늬가 있고, 그 밑에 1 조의 융기선으로 2구의 횡대를 만들었는데, 상대에는 방형 구획속에 퇴화된 연꽃무늬를 양각하고 하대에는 원권 내에 범자를 양각 배치하였다. 이는 갑사 동종 양식과 거의 같은 기법이다. 밑에 네 군데 유곽이 있는데, 그 주위는 당초문으로 장식을 하고, 안에 9개의 유두를 연꽃 속에 넣었다. 중앙에는 보통 비천상이 새겨졌으나 이 종에서는 생략되었으며, 그냥 네 군데 원형 안에 꽃잎을 조각한 당좌를 두었다. 전체적으로 조각 양식이 부드럽고 아름답다. 높이 96.5㎝, 입지름 66㎝이다.
현재 국내 사찰에 있는 대다수의 종은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이 종은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중기 동종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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