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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국 독립의 염원 고스란히 -서울시 8월의 문화재 ‘심우장’

보리숭이 2006. 8. 1. 13:18
조국 독립의 염원 고스란히
서울시 8월의 문화재 ‘심우장’


 

 

서울시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하던 ‘심우장’을 8월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했다.


당시 3·1운동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성북동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한용운 선생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땅을 매입해 심우장을 지었다.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과 마주보기 싫어 북쪽을 향한 산비탈에 지은 이 집에서 선생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의 위치는 성북구 성북동 222-1호이며, 대지 374㎡에 건축면적은 52㎡이다. 대지의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한옥으로 지은 심우장이 북향으로 서 있다. 대문 왼쪽에는 소나무, 오른쪽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각각 서 있고, 그 오른쪽 모서리에는 선생이 손수 심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심우'는 선(禪) 수행의 단계를 소와 목부(牧夫)에 비유하여 열 폭의 그림으로 그린 심우도(尋牛圖, 일명 十牛圖ㆍ牧牛圖)의 첫 번째 그림으로 소를 찾는 동자가 산 속을 헤매는 모습을 초발심의 단계에 비유한 내용이다. 한용운의 아호 중에는 '목부'가 있는데, 이는 소를 키운다는 뜻이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역(逆)'ㄴ'자형 평면이며, 중앙에 대청 2칸을 두고, 왼쪽인 동쪽에는 서재로 쓴 '심우장' 온돌방 한 칸을 두었고, 오른쪽으로는 부엌 1칸이 있으며, 부엌에서 남쪽으로 꺾여 나간 곳에 찬마루 1칸이 있다. 대청과 온돌방은 반자틀 천장이고, 부엌과 찬마루 사이는 벽이 없이 트였으며, 삿갓천장을 하여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대청과 부엌 북쪽으로는 창문을 단 툇마루를 놓았고, 온돌방의 북쪽에서 동쪽·남쪽을 돌아가는 대청 남쪽과 찬마루 동쪽으로는 쪽마루를 놓았으며, 온돌방 남쪽 마당에는 굴뚝이 서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정면인 북쪽은 겹처마이고 남쪽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현재 심우장의 온돌방에는 한용운 선생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용운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정옥(貞玉), 법명은 용운(龍雲), 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그는 1919년 승려 백용성(白龍城)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으로 참여하여 3·1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하였다.

 

선생은 처음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시베리아와 만주를 순력한 후 28세 때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1910년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했고, 1926년에는 근대 한국시의 기념비적 작품 ‘님의 침묵’을 펴냈으며 1927년에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서울시는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태어난 8월 ‘이달의 서울시 문화재’로 심우장을 선정했다.


하이서울뉴스 / 김현아
출처 : 서울마니아
글쓴이 : 서울마니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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