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고 이병철 선생님 시인 등단
김천고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계신 이병철 선생님이 월간 한국시 6월호 ‘이달에 당선된 詩人’이 되어 등단하였다.
진솔하고 전통적인 성정(性情)으로 향토적 체험의식을 자연스럽게 빚어내고 있으며, 특히 삶의 정한(情恨)을 절제된 시어로 형상화시키는 태도가 돋보이기에 당선이 되었다한다.
선생님은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과지도 부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여 좋은 일이 겹치고 있다.
◐ 詩 당선소감 ◑
시심(詩心)을 깨우며
이 병 철
대학 시절 습작을 하다 멈춘 뒤로 시 쓰기를 다시 한 지 십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스스로 자신감을 지니지도 못하고 그저 시가 좋아서 걸어왔던 길입니다. 어렸을 때 투박하게만 들렸던 어른들의 말씀이 언제인가 아름다운 우리말이었음을 깨달은 후로 소중한 우리말을 살리고 싶은 열정을 시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국어를 전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혼자서 공책에 써 가며 문학수업을 하는 초보자의 단계를 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중에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회원이 되면서 秀作을 보여주시는 선배 문인들을 통해 조금씩 배워나갔고 그 분들로 인해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욕구가 발동하였습니다.
문학에 열정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신 수필가 이태옥 선생님과 詩心을 일깨워주신 선배 문인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더 크게 쓰임받도록 제 시를 높게 보아주신 권숙월 시인께, 부족한 저에게 앞으로 좋은 시를 쓰도록 길을 열어주신 심사원님께 감사드립니다.
• 충남 부여 태생
•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 회원
• 김천고등학교 교사
◐ 詩 당선작품 심사평 ◑
▶ 이병철 님의 시작품 중에서 <어린 봄날> 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병철 님은 경북 김천의 시인 권숙월 선생님의 추천이다.
이병철 님은 시창작 생활을 10년간 해왔다고 한다.
<어린 봄날>은 4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연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정경을 노래하였고, 제2연에서는 대자연과 날짐승과 두더지의 생존작업 관계를 절묘하게 추구하였으며, 제3연에서는 인간의 기다림과 무의식의 교감현상을 노래하였고, 제4연에서는 계절의 윤회 속에서 회상의 희열을 발산하고 있다.
또, <낙엽>에는 낙엽의 미동 속에서 심오한 현상관찰의 철학사상을 추구하였고, 생명에 대한 고귀한 회한과 내실 속의 광빛 같은 시적 사고의 대맥을 노래하였다. 또한 <아버지>에는 한국농촌의 현실생활 속 아버지 상, 즉 사부곡의 절절한 사상을 형상화하여 크게 작은 한을 삭이는 가난한 농촌집안에서의 흙냄새 진한 부정(父情)을 노래하고 있다.
이병철 님의 여러 시작품을 읽으면서 우리 한국 현대시단에도 이렇게 절제된 시어의 배열배합에 능란한 시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일의 한국시단에서 거목으로 성장할 것을 의심치 않으며, 오랜만에 좋은 신인을 만나서 기쁘기 한이 없다.
◐ 詩 당선작품 ◑
어린 봄날
아침 이슬 마르기 전
땅강아지 지나간 논두렁 한가운데
깊이 박힌 삽자루
줄풀에 부는 바람
물가의 황새 소리치며 날아가고
고랑엔 두더지가 굴을 팠다.
꿈틀대는 흙덩이 풀뿌리 보며
진득이 반나절을 기다려도
두더지는 보이지 않고
안개 헤치고
봄볕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낙 엽
성근 잎새 사이로
옷 아래 솜털 사이로 꽂히는 볕에
가끔 생각난 듯 날리는 잎들
문득 바라보면
누운 잎들 비집고 숨쉬는 바람
돌돌 말리는 익은 이파리들의 향연
분명 뜨거운 가을 불에 온 몸 내맡겨
익은 바삭한 매작과(梅雀菓)다.
누긋불긋 알맞게 구워져
채반에 받친 가을 전병(煎餠)이다.
아니, 어쩌면
사색의 거울 앞에서 시름을 떨구고
하늘에 바친 감사의 헌물(獻物)이리라.
아버지
떠날 때까지
넥타이 맬 줄 모르더니
이른 봄날 해 저물 때
신발 한 켤레 남기고 떠나갔다.
육십갑자 다시 돌아와
국그릇 앞에서
이것은 산 제사라 일러 놓고는
두어 번 매본 넥타이 하나
양복 한 벌 남기고 그렇게 떠나갔다.
지금은 다 사라진 것들
신발도 양복 한 벌도 감청색 넥타이까지
태우지 않고 남은
오만 원짜리 희미한 영정(影幀)을 빼고는,
또 남은 것이 있다면
정직하게 밭을 갈고 들깨처럼 오롯하게
살리라는 우리들의 거룩한 믿음
새우젓 단지에 깊이깊이 서린 군등내처럼
지워지잖을 믿음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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