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심리적 치유(治癒)
김영배
결핍의 정서는 문학적 소양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정신적 ‧ 물질적 결핍은 상처를 갖게 만든다.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이 정신적 결핍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그 상처를 바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상처로 아파하고 분노를 갖게 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고 상처 속에 갇히게 된다. 주관적인 인식은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어렵고 스스로의 문제에 함몰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안에 존재하는 상처는 그냥 아픈 상태로 남게 된다.
문학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며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카는 “시의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모든 존재가 언어에 의해서 명명(命名)되었을 때 비로소 그 존재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언어로 이름 지어지기 이전의 존재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없다. 우리는 언어의 힘을 빌려서 그 존재를 인식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이며,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처를 정확이 인식하고, 그 상처를 객관화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의 다른 기능으로 인간성 회복을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왜 치유가 될까? 정신적 상처는 특정한 물리적 ‧ 심리적 자극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 고통이 클수록 우리는 자극의 속성 즉 물리적 양 ‧ 심리적 강도와 더불어 자극과 관련된 환경 역시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상처를 확대 해석한다.
이것은 뇌과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효율성을 바탕으로 진화 발전하여 왔다. 학습을 하는 것은 동일한 분야의 뇌 신경뉴런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학습의 양이 증가할수록 적은 에너지로 그 과제를 더 잘 수행한다. 이것을 효율성(效率性)이라 한다.
학습은 긍정적인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경험들도 함께 학습된다. 그래서 상처를 받으면 상처의 속성과 더불어 그와 관련된 환경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부정적 정서를 처리하는 신경뉴런도 생성 ‧ 활성화된다. 그리하여 부정적 정보처리에도 효율성을 보인다. 우울증 환자의 기억력 검사에서 긍정적인 단어는 잘 기억 못하지만 부정적인 단어는 건강한 사람들만큼 잘 기억하는 실험이 그 좋은 예다.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상처를 준 자극의 속성을 정확히 보는 것이고, 자신이 거울 속 먼지를 닦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립적 자세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상처를 치유함으로 안정된 정서를 유지하게 된다. 정서가 안정된다는 것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문학은 결핍의 정서로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상처가 치유되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찾아가는 인간성 회복의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말미암아 결국 우리는 고귀한 영성(靈性)을 갖게 된다. 영성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마음에 평안을 갖는 것이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이 과학적으로 검정되고 있는 요즘, 문학의 치유 기능이 과학 및 정신분석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문제의 사건을 드러내서 그것과 관련된 상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인지재구조화를 통해서 문제의 원인들을 제거한다. 이렇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치료기법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함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문학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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