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에 게시된 최송설당 여사의 1913년대 사진입니다.
이 시기는 무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집의 이름을 송설당으로 만드신 다음 해입니다.
연세로 보면 60세이실 때인데 사진은 더 젊으실 때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젊으신 최송설당 여사는 동상이나 후년의 모습보다 더 강직해 보이십니다.
본교 출신이 아닙니다만 지역의 인물로 최송설당 여사와 송설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농남에 계신 분이 자료의 원본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사본이나마 자료를 제공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글화 해 주신 분은 김천고 국어교사이자 시인이신 이병철선생님입니다. 김현철화백님이 사진의 원판이 뒤집혀 인쇄가 되어 옷고름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진을 좌우 돌렸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 - 열녀, 부인부
부인부(夫人部)
최부인 송설당
사는 곳은 경성부 서부 여경방 뒤 국동 45통 2호.
을묘(乙卯 1855년) 8월 29일 생. 본관은 화순
평장사 오산군세기후 지제고 시호는 충절공 영유(永濡)의 이십세손이며, 대사성 사로(士老)의 십육세손이며, 이조참판 한정(漢禎)의 십오세손이며, 이조참판 중홍(重洪)의 십사세손이며, 일지평(벼슬명)으로 대사헌에 추증되었고 號는 수우당인 영경(덕천서원에 배향됨)의 십일세손이며, 부호군 천성(天成)의 현손이며, 부호군 봉관(鳳寬)의 증손이며, 부사과 상문(翔文)의 손으로 號는 지남인 창환(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의 따님이시다.
성품과 행실이 현숙(어질고 정숙함)하고 학식을 겸비하여 그 시(詩)는 예스럽고 우아하며 그 사(詞)가 농염(濃豓 : 아름다움)하고 종친에 도타우며 화목하여 궁핍함을 도와 구제(賙恤 주휼 : 도와주고 구휼함)하였으니 엄연히 장부(丈夫)의 국량이 있었다.
찬(賛)하여 이르기를 푸른 소나무의 절개와 흰 눈의 지조로다. 소나무도 때가 있어 시들고 눈도 때가 있어 녹아 없어지나니 오직 이러한 여사의 의범(아름다운 본)은 백세가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註)
여경방(餘慶坊) : 오늘날 신문로 일대.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가 태어난 동네.
평장사(平章事) : 고려시대의 정2품 관직.
오산군(烏山君) : 화순 최씨의 시조. 오산(烏山)은 현재의 화순(和順). 묘소는 화순읍 일심리에 있다.
지제고(知制誥) : 고려 시대 예문관(藝文館)에 소속하여 조서 · 교서 등의 글을 지어 올렸던 관직. 뒤에 지제교(知製敎)로 고침.
부사과(副司果) : 조선시대 5위(五衛)에 두었던 종6품 무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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