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역사관

송설의 역사를 바로 찾자

보리숭이 2010. 6. 11. 02:21

 송설의 역사를 바로 찾자

 

  동문들께서 잘 알고 있겠지만, 우선 송설의 태생에서부터 요약 해 보고, 또 외람되오나  무엇이 문제이고 또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말씀 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졸업 회수를, 송설0기, 중0회, 고 0회라는 식으로  관행처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졸업 회수로 너무나 뿌리 깊게 관례화 된 관계로, 완전한 해결이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유식한 동문도, 또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잘 알려진 동문도, 여하튼 누구 할 것 없이 송설 회기 보다는 잘못된 고등학교 회수에만 익숙해 져 있습니다. 진실 된 송설회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거짓인 고등학교 회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교육의 부재와, 또한 졸업 때 학교에서 부여 해준 잘못된 고등학교 회수 만 기억하는 관계로, 늘 이런 식이고,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니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동문들이 합심하여 잘못된 관행을 하루 빨리 척결하고, 고등학교의 잘 못된 출생신고를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우리의 역사를 바로 찾는 길이며 또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송설 학원의 일제 때 정확한 명칭은, 김천고등보통학교(이하 김천고보)로, 지금의 경북고등학교의 전신으로 1916년에 설립된 대구고등보통학교 와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인 1899년에 설립된 경기 고보와  더불어, 한 시대에 이 땅에 교육의 산실로 교육개혁에 앞장서 왔습니다. 김천고보는 1931년에 설립되었고, 당시의 명칭은 김천고등보통학교였으나, 일제 강점기의 교육의 말살 정책으로, 교육기관의 명칭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우리도 1938년 송설 4기에, 김천고등보통학교에서 김천중학교로 개명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등학교 회수를 잘못 산정하게 되는 오판을 불러일으켰다고 봅니다.  

학제 개편으로 지금의 고등학교가 설치될 때, 교육 말살정책에 따른 일제에 의해 자행된 중학교라는 명칭에만 연연했지, 김천고보의 실질적인 기능과 역할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입장에 있던 경기고 와 경북고 등은, 자신들의 고보와 새로 설치되는 고등학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확인조차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김천고보의 김천 중학교를, 이후에 교육법 개정으로 출발하는 중학교의 전신으로만 취급 해 버리고, 고등학교는 상급 교육기관으로 인정해 버리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1951년 설치되는 고등학교 입학생을 김천고등 제1회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오판은 유일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우리 김천고등학교에서만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저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고등보통학교의 역사가 가장 깊은 경기 고보의 명칭의 변천과정을 통해 확인 해 드리겠습니다. 경기 고보의 경우, 1899년 중학교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 관제 공포에 따라 1900~1906 관립 중학교(졸업회기1~2회), 1906~1911 관립 한성고등학교(졸업회기 3~7),1911~1921 경성고등보통학교(졸업회기8~17회), 1921~1925경성제일 공립고등보통학교(졸업회기22~34회), 1935~1950 경기공립중학교(졸업회기35~47회)를 거쳐 1951~1970년 경기 중고등학교(졸업회기48~68회),1971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면서, 경기 고등학교로  졸업회기를 경기고등 제 68회로 부여하여 오늘 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명칭이 한때 중학교라고 해서, 지금의 중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학 연한은 송설1기~10기는 5년제, 송설 11기 는 4년제, 송설 12기부터는 6년제였고  6년제의 마지막 졸업생이 바로 송설 16기입니다. 즉 당시에 김천 중학교는  5~6년제였고 4년제가 1회 또한 복수 학기제로 인해 3년제 2회 4년제가 1회 있었습니다. 주된 교육연한은 5-6년제 인데 중간에 복수 학기로 4년제와 3년제가 설치된 관계로, 입학선배가 졸업 기준으로는 후배가 되는 기이한 일이 생기게 되면서, 이러한 혼란을 막고자 입학선배가 실질적인 선배라는 원칙을 세우며,  결국 입학 년도를 기준으로 송설회기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경기고의 전신인 경기 고보와, 경북고의 전신인 대구고보 , 그리고 우리 김천고보가 있었는데,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는 사립이었고, 또한 항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학술단체를 가장한 지식인들의 실질적인 항일운동 단체로 조선어학회가 있었는데 , 제3대 정 열모 교장선생님께서 이 단체에 정회원으로 활동 하시다가, 결국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해 명칭이 중학교로 강등되는, 분하고도 영광스런 역사도 사실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또한, 김천고보에는 한 때 사범과가 설치되어 임시교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을 2차례 배출시켰으니, 모교가 한 때는 지금의 임시 교육대학 역할을 국가로부터 위탁 받아 수행한  자랑스런 역사도 있습니다.

당시의 교과 과목으로는 수신,공민,교육,일본어,역사,지리,외국어(중국어,독어,프랑스어,영어) 수학,이과,실업,도화,가사,음악,체조 등으로, 과목도 다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의 극도로 혼란했던 교육기를 거치면서 1949년 공포된 교육법에 따라 1950년~1951년에 현행 중학교 3년제와 고등학교 3년제가 설립되었고, 교육 연한이 3년으로 지금까지 고정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그 후로는, 졸업을 기준으로 송설 회기를 부여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즉 경기고보, 대구고보, 김천고보 등과 같이 지금의 중 고등학교 역할을 담당했던 고등보통학교라는 교육기관은 교육법 개편에 따라 없어지고  지금의 중 고등학교가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김천 중 고등학교 역시 1951년 설치되었는데 불행하게도 바로 이때, 천추의 한을 남긴, 또한 땅을 치고 통곡을 할 일이 벌어 졌습니다. 김천고보는 새로운 학제에 따라 설립된 지금의 중학교 와 고등학교에, 지금까지 해 오던 역할을 각 각 이양한 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존의 김천고보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누어 분리하여 설치 한 것입니다. 따라서 1951년에 입학한 고등학교 학생이 1953년도에 졸업 할 때에, 지금의 김천고등 제1회가 아니라, 고등학교의 전신인 김천고보 16년의 졸업 회수를 영광스럽게 이어 받아, 김천(중)고등 제 17회 겸 송설 17기로 규정하여 적용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천고보의 당시의 명칭이 중학교라서 그리 오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천고보를 지금의 중학교의 전신으로만 취급 해 버리고 지금의 고등학교는 김천고보의 상급 교육기관으로 착각 아닌 우를 범하여, 김천고등에 제 1회를 부여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해의 졸업생을 두고 송설38기, 중35회, 고22회 라는 해괴한 3분법을 쓰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무지의 소치이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록 졸업회수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1951년에서1953년에 재임하신 박 학규 교장선생님을 김천고등 제 1대 교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이유에서 김천고등 제 11대 교장으로 환원해야 하고. 뒤 이은 역대 교장의 재임 대수도 모두 재조정 되어야 합니다. 회수가 환원됨으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것이 다 조정되어야 합니다.

“하루 빨리 독립을 하는 길은 교육이다“ 라고 외치며 스슬퍼런 일제 강점기에도 꿋꿋이 서있던, 김천 고보의 상징이기도 한 붉은 벽돌의 본관,  그 장엄하고 웅대한 건축물을 그 대로 사용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송정과 똑 같은 자리에서, 그러나 단지 학제 개편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명칭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리석고 우매한 판단으로 인해 일이 이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마 성급한 대 선배님이 계셨더라면, 피를 토하며 통곡을 할 일이 아닐지 참으로 송구스런 일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처지였던 대구 고보를 전신으로 둔 경북고등학교 나, 경기고보를 전신으로 한 경기고등학교 뿐 아니라, 신명여자중학교를 전신으로 한 신명여자 고등학교 등을 보면 더욱 부끄럽게 됩니다.  경북고는 1950년에 설립되었고, 경기고는 우리와 같은 해인 1951년에 설립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당시에 설립된 중 고등학교가 자신들의 고등보통학교와 동급의 학교로 판단하고, 다만 학제 변경에 따라 명칭이 바뀌고 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설치 된 것으로 정확히 판단하여,  고등보통학교의 역사를 그 데로 이어 받아 적용하였는데, 유독 우리만 지금의 고등학교가 김천고보의 상급 학제로 오판하여 김천고등에 제1회로 회수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여, 오늘 날과 같은 혼란을 자초하고,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대구고보 0기, 경북중0회, 경북고 0회 라든가, 경기고보 0기 경기중 0회 경기고 0회 등으로 우리 같이 어리석고  황당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 졸업생을 두고,, 우리처럼 무식한 세 가지로 표현하는 잣대는 아예 모르고 들 있습니다. 그러니 또래의 경북고 졸업생에게 졸업회수를 물어 보면, 우리가 지금의 방법 데로 김천고 22회라고 할 때  경북고는 55회라 하고 경기고 졸업생은 71회라고 합니다.  김천고 나 경북고 그리고 경기고가 모두 설치 된 시기는 비슷하나, 이처럼 두 세배씩 회수가 차이가 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웃기는 일은, 지금의 고등학교 회수로만 본다면 김천고등은 김천여고 보다도 1년 늦고, 성의여고 보다는 고작 2년 빠른 역사가 됩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기가 찬 일입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비슷한 다른 학교들의 예를 좀 더 들어 보겠습니다.

1907년에 신명여자중학교라는 명칭으로 설립된 여 학교는, 1913년에 신명여자 고등보통학교로 개명되고, 교육의 혼란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듯, 이후 명칭이 대구신명 여학교, 대구남산 여학교, 신명고등 여학교, 신명여자 중학교 등, 이름만 보면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알 수 없듯이 바뀌다가, 우리와 같이 1951년 학제 변경으로, 신명여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 설치되었는데, 신명여고 역시 1907년에 설립된 신명여자 중학교를 전신으로 한 졸업 회수를, 그 데로 연결하여 적용 해 오고 있습니다. 결국 당시의 교육기관을 평가하는데 있어, 단순히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개념의 잣대를 적용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내친 김에 이런 예도 보겠습니다.  국립 경북대학교의 과정을 봅시다. 1926년에 설립된 대구사범학교와, 1932년에 설립된 대구의학 전문학교 및 1944년에 설립된 대구농업 전문학교를 전신으로, 1951년 국립 종합 대학인 경북대학교가 발족되었습니다. 분명히 대학교는 전문학교보다 상급교육기관 이므로, 우리가 적용했던 잣대로 한다면, 경북대학교가 발족된 이후 졸업생을 제1회를 부여해야 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52년에 졸업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식을, 제 20회로 규정하여 적용 시켰습니다. 결국 이전의 대구의학 전문학교는, 명칭은 전문학교지만 실질적으로 진정한 대학의 역할을 수행했던 교육기관으로  판단하여, 역시 새로운 대학의 졸업회수를 의학전문학교 졸업 회수를 승계시켜 적용 했습니다  

 존경하는 동문 선후배 여러분,  김천중고38회 (겸 송설 38기)로 단일화 못하고, 학교에서 배운 데로 관례 데로 사용해 오고 있는 송설38기, 중35회, 고22회 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쓰는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송설회기는 고사하고, 무엇이 잘못인 줄도 모르며 고 22회라는 잘못된 회수만을 쓰는 관례는 척결되어야 합니다. 무지와 무관심 속에, 생각하기에 따라 천지가 개벽되어야 할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김천고등학교 제 1회 선배님들께 아룁니다. 통상적으로 1 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이해하나, 이 경우는 다르다고 봅니다. 외람된 저의 생각은, 여기서 1의 의미는, 경북고의 절반의 역사이고, 경기고의 절반에 또 절반의 역사이며, 김천여고 보다 1년 늦고, 성의여고 보다 고작 2년 빠른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 고작이고, 송설의 역사를 16년 후퇴시키는 의미 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즉 1회 선배님 연배의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다 그 정도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선배님들께서 출생신고가 잘 못된 김천고등 제1회라는 회수 보다는, 유구한 역사와 유서 깊은 전통 그리고 지난날의 영광이 충분히 함축된 김천(중)고등 17회(겸 송설17기)로 확실하게 기준을 서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더욱이 피눈물 나는 일은, 법으로도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관련된 법을 검토 해 봅시다.

교육법 시행령 제103조를 보면,  “제1항, 1922년 이전의 고등보통학교 4학년 졸업자 와 제6항 1938년 이전의 고등보통학교 5학년 졸업자,” 그리고 “제8항 1944년 이전의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5학년 졸업자는 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 한다”로 규정되어 있고  또 교육법 시행령 104조의 “제 1항은 구 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졸업자 와 제 7항 고등보통학교 부설 임시교원 양성소 본과 졸업자는 종전의 사범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자격을 인정 한다”고 규정되고 있으니, 김천 고보 졸업자는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그리고 임시교원 양성소 졸업생은 사범학교 졸업자의 자격을 법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그게 뭐 그리 중요 하냐?라고 반문하는 동문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로 그렇게 간단히 취급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잘 못된 회수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송설 역사관을 지어 보존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왜곡된 회수를 환언하는 것이야 말로, 송설의 역사를 찾는 시작이 될 것 입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넘긴다면, 우리는 송설을 말할 자격도 없고, 또한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봅니다. 가장 바람직하고 또 궁극적으로는 김천중고 38회(송설38기)로 되어야 겠으나  잘못된 고등학교 회수가 만연되어 있는 관계로 혼란을 피하면서 우선 송설기수 만을 쓰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보다 빨리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교와 동창회에 다음과 같이 정중히 요청합니다.

1,  모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기초가 잘못되면 다시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더불어 학교에서부터 송설 회기만을 사용하여 생활화해야 합니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잘못된 고등학교 회수로 규정하여 졸업시키면, 잘 못된 회수만을 기억하고 사용하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거짓이 진실을 지배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보를 비롯한 모든 대 내외적인 인쇄물에는, 당연히 송설회기만을 사용해야 하고, 특히 대 내외적으로 사용하는 현수막 등도, 오직 송설회기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졸업 현수막이라면 “송설 제 37기 졸업식”으로 만 해야 합니다. 편리를 위하고 혼란 막는다는 이유로 잘못된 고등학교 회수를  병행해서 표기하면 교육의 효과가 없으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잘못된 회수는 알 필요도 없고, 오직 송설회기만을 가르쳐 졸업을 시켜야만 뿌리 깊은 잘못된 관행을 고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의 특단의 지도력을 기대 합니다.

2, 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학교의 주인은 재단입니다. 최송설당 교주님의 김천고보 설립 정신을 적극 받들고 승계하여 펼쳐야 합니다. 잘못 부여되고 왜곡된 학교의 역사도 환언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정 해창 이사장님께서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 주십시오. 모교를 감독하고 종용하고 또 동창회에 협조를 적극 피력 해 주셔야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김천 중고 회수가 송설 기수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과도기임을 감안해서라도 이제는 오직, 오직 송설 기수만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3, 동창회에서도 계속 나서야 합니다. 사실 그동안은 동창회에서만 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송 석환 총동창회장님과 각 지구 회장님께서 계속 분발 해 주십시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동창회 홈페이지 뿐 아니라 모든 인쇄물에도 같은 방법으로 오직 송설기수만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아직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홈페이지 나 동창회보를 발간하는 분과 관리자께서는, 개별동문이나 단체를 기사화 할 때도 역시 송설 회기만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또 지켜지지 않았을 때에는 관리자 직권으로 편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잊었던 혹은 모르고 있었던 송설의 역사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따라서 총 동창회 명부를 작성할 때는 문론이고, 각 지역 동창회 행사나 소모임 등등 우리 동창과 관련된 경우라 면 어떤 경우든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송설 회기만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편리를 위한다는 구실로 중, 고등학교의 회수를 병행하는 것이 일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감하게 탈피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4, 교육이 필요합니다.  재학생과 전 동문들을 대상으로 직 간접적인 교육이나 홍보로 생활화 되도록 해야 합니다.

5, 일부에서는 그러면 중학교만 졸업한 동문은 어떻게 되느냐? 또는 고등학교 졸업자와 구분이 안 되지 않느냐? 라는 등의 질문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런 생각은 참으로 소인배 같은 사고입니다. 송설을 말하는데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구분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다 같이 법이 보장한 3년이라는 교육 기간을 수학했으면 동등한 송설의 의 정회원입니다. 저 같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 나왔다고 해서 2배의 자격을 주장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의 공식적인 명칭이 송설 38기 혹은 송설 38기 겸 김천(중)고 38회로 표명되어야 하고, 이 경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학교만 졸업했다하더라도 같은 연배의 고등학교 졸업생의 졸업 회기를 공유하여 차등 없이  또 구분 없이 사용하여 동문 의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 하도록 하여 송설의 영원한 화합과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방법이 우리처럼 역사 와 유서 깊은 고등보통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모든 중 고등학교들의 공통된 관례입니다.

6, 졸업회수를 바로 잡는 것은 역사관을 지어 역사물을 보존하는 것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회수를 환언하지 않고서는 송설의 역사를 말 할 수도 없거니와 또 역사 운운하는 것이 우스운 일입니다. 영광스런 역사가 듬뿍 함축된 졸업회수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찾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적극 동참합시다.

감사 합니다

 

                                                       2010년 04월

 

                                       송설 38기 (김천중고 38회) 김 복연 배상

                                    *( )안은 희망과 염원에 따른 개인 판단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