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장학회

[스크랩]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주기 바란다.

보리숭이 2010. 1. 13. 21:28

꾸준한 김천고 장학사업을 위해 우리 동기들이 32골프장학회나 세심장학회의 선도 역할을

수년간 했으니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받으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사진이나 카페에 보면 장학금 전달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임원 한 명없이, 각자 구좌입금하고 연락이나 해 달라니, 섭섭하기 짝이 없다.

 

최우선 과업인 우수 교사를 유치하겠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대신 경영자를 포함하여

무능교사 대처방안 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옛날  자장면'처럼 '옛날 김천고' 였기에

개혁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박수를 보내지만,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견문한 것을

포함하여 그 방법은 여러 시나리오별로 더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주기 바란다.

 

(마구잡이로 실명을 공개하여 "비교의 비극"을 초래하지 말고.....)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한 줌의 뻥튀기라기에 한파속에 충언을 올린다.(빨간 3각형 클릭!)

 

f;
“뻥이요~”…한파 속 뻥튀기 아저씨
먹을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60~70년대 ‘뻥튀기’는 최고의 군것질 중 하나였다. 장구통처럼 생긴 시커먼 뻥튀기 기계를 짊어지며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는 ‘뻥튀기 아저씨’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장터나 동네에 어김없이 찾아왔던 반가운 ‘손님’ 뻥튀기 아저씨를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2010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하 10도의 한파 속에도 “뻥이요~”를 외치는 박용배 씨(60). 박 씨는 35년째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이곳 주민들에게 ‘고소함’을 전달해 주고 있다.

기상 관측이래 최고 폭설이 내린 올 겨울 박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원구 일대를 돌며 뻥튀기를 팔고 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뿐 손님 하나 없는 아파트 단지 도로가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그는 연신 뻥튀기 기계를 손으로 돌리고 있다.

박 씨는 손님이 가져 온 쌀을 넣고 밀폐한 뒤 불을 지펴 서서히 장구통 모양의 ‘본체’를 가열했다. 적당한 압력이 도달했는지 본체의 뚜껑을 뺀 후 가열을 멈췄다. 뚜껑을 열자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곡물이 부풀어 올랐다. 조금 뒤 박 씨는 “자~ 귀막아주세요, 뻥 합니다요~ 뻥이요~”라고 외쳤다. 그는 “압력차로 ‘뻥~’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뻥튀기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며 뻥튀기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박 씨는 결혼 후 본격적으로 뻥튀기 장사를 하기 시작해 두 딸을 시집보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옆집 할아버지 일을 도운 게 첫 시작이었다”라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혼 후에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다 잘 안 돼 이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요즘은 손잡이를 돌리는 대신 모터로 작동하고 자동 타이머가 작동해 10여 분 후면 쌀, 옥수수, 강냉이 등이 튀겨진다.

박 씨가 보유한 뻥튀기 기계는 무려 7대나 된다. 그는 “장구통 같이 생긴 솥단지만 성하면 바꿀 이유가 없는데 그게 압력으로 인해 자꾸 망가진다”며 “그동안 고장 난 것들은 나와 일생을 같이 한 가족과도 같아서 버릴 수가 없다”며 애지중지 다룬다고 말했다.

그는 단골손님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하루 벌이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이사 간 손님들이 멀리서 오기 때문이다. 그는 “남양주, 구리 등 전국 곳곳에서 가끔씩 찾아오는데 혹시라도 제가 없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손님 한 분 한 분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고마움 때문에 절대로 그만 둘 수가 없죠”라고 말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google_protectAndRun("render_ads.js::google_render_ad", google_handleError, google_render_ad);
 

 

 

출처 : 김천중29회,고16회(송설32회)
글쓴이 : 윤 혜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