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계당산(桂棠山)에 있는 절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澈鑒禪師)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하였다.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며, 창건주 철감선사의 도호(道號)가 쌍봉이었으므로 사찰명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한다. 847년(문성왕 9)에 귀국한 철감선사는 이 절에서 선문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최근까지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3층각은 원래 대웅전 건물이 아닌 탑이었다고 전한다. 총 높이 12m의 정방형 3층 건물인 이 대웅전은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에서 3층목탑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으나, 1984년 4월 초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진되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인 극락전과 명부전·요사채 등의 당우들이 있다.
쌍봉사에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법당. 보물 제163호. 평면이 사각형인 3층 전각으로서, 목조탑파 형식을 유지한 희귀한 건축이다. 현재 제일 위의 3층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1962년에 실시된 해체ㆍ복원공사에서, 그 원래의 형태는 보통 탑파건축과 같은 사모지붕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각층마다 옥신은 4면이 한 칸 벽면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는 1층 1변이 4m, 2층은 3.3m, 3층은 2.6m이며, 2층과 3층에서는 옥신 높이가 극도로 줄어들어 벽체부분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위로 처마 밑에 받친 공포(包)들은 2ㆍ3층은 2출목(二出目), 초층은 3출목(三出目)이며, 공간포(空間包)는 초층과 2층이 2개씩, 3층은 1개를 배치하였다.
내부 초층에는 마루를 깔고 불단(佛壇)을 안치하였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그러나 2ㆍ3층은 통층(通層)으로 되어, 그 중심에 심주(心柱) 하나가 있는데, 각층 지붕의 춘설(春舌)들은 모두 그 뒤끝이 이 심주에 연결되어 있다. 62년 복원공사 당시 마루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1724년(경종 4)에 삼중창(三重創)하였을 때의 상량문이다. 이중창(二重創)에서 삼중창에 이르는 기간은 30여 년에 불과하고, 삼중창은 부분적인 중수공사(重修工事)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되며, 현재의 건물은 1690년(숙종 16) 이중창 때에 세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긴 것으로 믿어진다.
통일신라시대 철감선사의 화강석 묘탑(墓塔)
국보 제57호. 높이 1.4m. 8각 원당형(圓堂形)에 속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중에서 조식이 화려한 걸작품이다. 상하 각부가 평면 8각형을 이루는 것은 통식(通式)에 속하나, 2단을 이룬 하대석에는 하단에 구름무늬, 상단에 사자를 조각하고, 상대석에는 앙련(仰蓮) 위에 8각 대석이 있어, 2중으로 된 안상(眼象) 안에 가릉빈가(迦陵頻伽) 1구씩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을 받는 부분에는 연꽃무늬가 둘려 있다. 탑신은 각 우각(隅角)에 원주형(圓柱形)을 세우고, 각면에는 전후에 문비형(門扉形), 그 좌우에 신장상(神將像), 남은 2면에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었다.
옥개부에는 연목(椽木)과 기왓골이 모각(模刻)되고, 옥리(屋裏)에는 각 면에 1구씩의 비천상이 있다. 조루(彫鏤)가 매우 정교하고, 탑신 원주에서 엔타시스의 수법을 볼 수 있으며, 옥개 추녀 끝 막새에는 연꽃무늬까지 새겨져 있다. 능숙한 수법은 당시 조각의 대표가 될 만하며, 목조 가구(架構)의 충실한 모각은 당시의 목조건축 양식을 추측하게 한다. 868년(경문왕 8) 입적한 철감을 위하여 탑비와 함께 세워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였다. 건립은 철감이 입적한 후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쌍봉사 철감선사탑비(澈監禪師塔碑)
이 비는 통일신라시대 철감선사의 화강석 탑비. 보물 제170호. 귀부(龜趺) 비좌(碑坐) 둘레에 육각(肉刻)된 구름무늬나 복련(覆蓮)무늬의 조형형식은 연곡사 동부도비(東浮屠碑)와 같은 부류이다. 함주귀두(含珠龜頭)는 용두화(龍頭化)된 것이나 사실적이며, 귀배(龜背)의 중곽갑(重廓甲)무늬와 귀갑(龜甲)의 선곽(線廓)은 매우 선명하고 정연하며, 귀두와 4족(四足)과의 비례가 알맞다. 특히 앞쪽 오른발의 삼조(三瓜)를 들어올린 동적인 표현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조형이다.
이수(首)의 조형도 반결룡형(蟠結龍形)이 생략된 구름무늬만의 연곡사 동부도비와 같은 형식이다.
탑비에 따르면, 철감선사는 한주(漢州) 사람으로 호는 쌍봉(雙峰), 속성은 박(朴)이며, 798년(원성왕 19)에 출생하였고, 18세에 중이 되어 귀신사(鬼神寺)에서 수학하였다. 825년(헌덕왕 17)에 당나라에 들어가 남천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전승하고, 847년(문성왕 9)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시켰다. 868년(경문왕 8) 71세로 입적하였으며, 철감은 시호, 탑명(塔名)은 징소(澄昭)라 하였다- 글 - [김영윤의 여행보따리]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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