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동창

정지용과 육영수여사 생가를 찾아

보리숭이 2007. 3. 4. 12:48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육영수여사 생가를 찾아
 

  

김천고 앞 맛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충북 옥천을 향했다. 동창회에서 송설역사관 전시형태의 모델링으로 좋은 곳이 있다하여 현지 답사를 갔다. 충북 옥천의 구읍은 정지용의 고향이다.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해서 '지용로'에 들어섰다..

  

정지용 생가는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향으로가다가 청석교 건너에 위치한다. 구읍사거리에서 수북방면으로 길을 잡아 청석교를 건너면 ‘향수'를 새겨 놓은 시비와 생가 안내판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곳이 정지용 생가인데 바로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여전히‘향수'의 서두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옛 모습은 아니라 아쉽지만 흐르는 물은 예전과 같아 맑아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다행히 실개천의 다리 역할을 하던 넓고 평편한 돌을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잇는 다리로 활용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沃川)에서 출생했고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정지용 생가는 1974년 허물어진 집을 1988년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2채의 건물로 모두 초가(草家)다. 방안에 정지용의 시 ‘호수’가 걸려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하니 눈감을 밖에”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시인 정지용의 상(像)이다. 정지용 문학관은 옥천군이 10억원을 들여 하계리 생가 옆 연면적 130평으로 건축되었다. 시공자가 건축,기계설비 담당과 전기,통신,소방 담당, 전시기획사가 따로 하여 전문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여 건축된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송설역사관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전시 방법과 공간 구성이다.

  

 

 

 

  

 

 

 

 

 

생가에서 문학관 쪽으로 가면 마당에 정지용 동상이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정지용사진과 함께 인물상이 있는데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상이다. 인물상을 보고 안으로 들어서면 ‘ㄱ'자벽에 아름다운 영상이 상영된다. 조금 더 가면 지용연보실이 나오는데, 정지용 시인의 일대기, 시대적 상황과 삶 그리고 문학, 시대별 연도별 문학을 정리 전시해 놓았다. 지용연보실 옆으로는 지용문학지도라고 해서 ’한국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이란 주제로  1910-1950년대 현대시의 흐름과 그 속에서 정지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설명해 놓았다. 다시 그 옆으로 정지용의 시집과 산문집 원본을 전시해 놓았는데, 정지용시집, 지용시선, 백록담, 산문 등이 눈길을 끈다. 시인의 육필원고 및 원본의 내용은 다시 영상으로 보여준다.

 

 

 

 

 

 

 

 

 

 

 

  

 

 

 

 

 

 

정지용문학관에는 특별한 체험시설이 있는데, 문학관 가운데에는 손바닥을 펴서 두손을 내밀면 손에 시어가 쏟아지고, 영상 시화와 뮤직비디오 기곡 ‘향수’도 감상할 수 있으며 시낭송체험실에서는 시인의 시와 산문을 자막처리해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을 배경으로 낭송을 할 수 있는데, 낭송한 내용은 테이프에 녹음을 해 준다. 무료로는 아니고 1,000원이다. 마지막으로 영상실에 들어서면 정지용의 삶과 문학, 인간미를 타큐멘타리 형식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정지용문학관의 총정리다. 전체적으로 정지용문학관은 규모는 작지만 내부 전시는 알뜰하게 해 놨다. “넓은벌 동쪽 끝으로...” 문학관을 다녀온 이후 얼마간은 정지용의 ‘향수’란 시가 입안에서 자꾸 웅얼거릴 것이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그 곳을 나와 육영수여사 생가로 향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 고(故) 육영수(陸英修) 여사 생가가 복원되고 있었다. 굳게 잠긴 문 사이로 복원중인 건물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 곳에는 안채, 윗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 대문채, 창고, 중문채, 곳간 13채(49㎡)와 연못, 정자 등을 먼저 복원하고 주변에 기념관(990㎡), 주차장(2천㎡)등도 만든다고 하는데 후손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인자한 미소의 목련꽃 같은 육영수 여사의 생가. 언제 다시 옥천에 찾을 때 복원된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옥천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