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동창

선진문화체험 유럽 3개국 연수기 - 박종근

보리숭이 2007. 1. 11. 22:06

  2006.12.27-2007.1.4

선진문화체험 유럽3개국 연수기

 

김천고등학교 교감 박종근

 

 

  경상북도교육청 기획예산과에서 주관한 선진문화체험 국외연수단은 2006학년도 학교평가위원 대표 2명, 학교평가 일반계 시지역 최우수고등학교(김천고,구미고,점촌고) 유공자 3명, 학교자율특색사업 유공자 14명, 기획예산과 행정직 1명 등 모두 20명으로 선발되었다. 참가자의 직급별로는 교장 2명, 교감 1명, 교사 16명, 행정직 1명이며, 학교 급별은 초등 교원 9명, 중등교원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연수는 2006년 12월 27일에서 2007년 1월 4일까지 8박 9일간 서유럽3국(이태리, 스위스, 프랑스)으로 진행되었다. 연수일정에 따른 모든 안내는 공정한 입찰 끝에 선정된 포항 뉴천마항공여행사에서 정성을 다하여 주선해 주었다. 연수의 목적은 학교평가 및 자율특색사업 유공자의 그 동안의 노력을 치하하고, 이들 교육개혁 선도자들에게 선진국의 선진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서 학교교육현장의 전문성을 제고하여 학교교육발전에 기여함에 있었다.

 

제1일 (2006년 12월 27일)

 

  우리 일행은 12월 27일 06시에 각자 대구공항 대한항공 카운터 앞에 집결하였다. 나는 대구에서 여고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딸의 승용차로 04시 김천 집을 출발하여 05시 10분 대구공항에 일찍 도착하였다. 이미 지난 12월 15일 오후 4시 도교육청 정보화실에서 이번 연수에 관한 사전연수와 상견례가 있었기에 서로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유럽연수는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고 희망찬 모습이었다.

 

  간단한 인원점검과 탑승수속을 마치고 대한항공국내선1412편으로 07시 10분 대구 공항을 이륙하여 08시 05분 서울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다 13시 30분 다시 로마로 가는 대한항공국제선927편에 탑승하였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친절한 모습과 기내식 비빔밥과 음료수는 별미였다. 특히 좌석마다 최첨단시설로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는 세계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국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긴 비행이었지만 우리들은 각자 편안한 잠자리에 들기도 하였고, 깨어서는 신문, 잡지, 비디오 시청, 음악 감상 등으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장장 12시간의 탑승 후 17시 40분에 로마공항에 도착하였다. 처음 보는 로마국제공항의 모습은 예상과는 달리 우리 서울인천국제공항보다 규모가 작았고, 여러 가지 시설이 낡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지 않아 보였다. 아마 로마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낙천적인 이탈리아인의 기질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연대음대성악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온 한국인 현지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로마 시가지의 야경을 보면서 현지가이드에 의해 이탈리아와 로마의 역사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탈리아의 공식 명칭은 이탈리아공화국이며, 인구는 57,537,000명, 면적은 301,328 ㎢, 수도는 로마, 정체·의회형태는 공화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은 대통령/총리, 공식 언어는 이탈리아어, 독립년월일은 1861. 3. 17, 화폐단위는 유로(euro), 국가(國歌)는 Fratellid'Italia("Brothers of Italy") 이란다. 유럽 중남부의 산지가 많은 나라이며 지중해를 향해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시칠리아 섬과 사르데냐 섬을 포함한다. 북쪽으로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 등과 이웃하고 있다. 동쪽으로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발칸 반도와, 남쪽으로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다.

 

  3000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는 테베레 강의 하류에 위치하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영원한 도시라고 불리 우며 로마시대에는 일찍이 고대 세계의 중심지였고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통해서 긴 시간 동안 유럽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여러 왕국과 공화국의 수도였으며 정치적, 군사적으로 고대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다.

 

  로마인의 도시건설은 우선 공공 광장을 만들고, 그 주위를 벽돌로 벽을 쌓고 교회당과 대하수도를 둘러싼다. 또한 로마 유적의 특징은 완벽한 복원이라든가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름과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영원의 도시,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로마는 세계를 세 번 정복했다(힘, 크리스트교, 법률)"는 말처럼 서양고대문명의 완성자이다. 또한 중세 르네상스의 도시, 로마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현재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인 로마는 1,000년 이상 유럽의 모든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단다.

 

  도중 차에서 내려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에서 된장찌개 한식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멀리 이탈리아에서 한식당을 대하니 삼성, 현대 기업광고와 함께 세계로 뻗는 한국인의 기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현지가이드의 이탈리아여행에서의 유의점과 일정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듣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SATELLITE PALACE 호텔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내일부터 전개되는 로마연수를 기대하면서 꿈같은 첫날밤을 보냈다.

 

제2일 (2006년 12월 28일)

 

   호텔 조식 후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다시 현지가이드에 의하여 이탈리아에 관한 현대사를 들었다. 이탈리아는 1992년 이래 무솔리니를 수령으로 하는 파시스트당이 독재했고 1936년 에티오피아를 병합한 이래로 제국이라 칭했다. 나치스 독일, 일본과 동맹을 맺고 제2차 대전에 참전하였으나 패전하였다. 지하자원이 빈약해 공산품을 생산하므로 대부분 외국의 원자재 수입에 의존하여 무역적자 폭이 큰데 풍부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지중해의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외국 관광객으로 부터 얻어지는 관광수입은 이 나라 국가재정을 충당시켜주고 있단다. 버스에서 내려 시립양노원 카자비토리아에 가서 원장으로부터 이탈리아노인복지시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통하여 무의탁 노인들에 대한 국가적 혜택과 복지제도가 아주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점심을 일찍 현지식으로 먹고 본격적으로 관광에 들어갔다. 먼저 대전차경기장을 지나 도보로 보카델라베르타 광장에 있는 진실의 입으로 갔다. 보카는 입,베리타는 진실을 의미하며, 광장에 있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이 있는데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으로 거짓말쟁이가 트리톤의 입에 손을 넣으면 트리톤의 입이 다물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다음에 찾은 트레비 분수는 스페인 광장과 그리 멀지 않았다. 트레비라는 이름은 트리비오(삼거리)에서 유래한다.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에서 같이 세 방향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서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등을 돌리고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를 다시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두 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연인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 세 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한다고 하니 적당히 던질 일이다.

 

 스페인 광장은 관광객들로 하루 종일 붐비는 광장이고, 이름이 스페인 광장으로 붙여진 이유는 이 광장 앞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다.1726년 프랑스대사의 기부로 만들어졌다는 스페인 계단은 영화(로마의 휴일)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광장 근처의 86번지에는 괴테, 보들레르 같은 유명 인사들에게 인기 있던 그레코카페가 유명하다.

 

  명품 거리를 지나 베네치아 광장에 도착하였다. 광장 정면의 커다란 백악관이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1885년부터 25년에 걸쳐 건축하여 1911년 완성된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의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초대 국왕 비토리오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여 세웠는데,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만든16개의 원주가 호를 그리면서 있는 주랑이 볼만하다. 건물 정면에 있는 동상이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이다. 광장 왼편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무솔리니가 이 곳 2층 발코니에 군중들에게 연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로마의 역사가 살아있는 듯한 공회장에서 원로원과 시저의 동상을 보니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하면서도 클레오파트라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영웅의 모습이 실감 있게 느껴졌다.

 

   <콜로세움 앞에 선 필자>  

     

     해가 저물 무렵 로마 최대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 도착하였다. 최대지름 188m,최소지름 156m,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의 건물인데 1층은 토스카나식,2층은 이오니아식,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처참하고 잔혹한 게임이 벌어지곤 했는데, 검투사들은 생명을 걸고 맹수와 싸웠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이탈리아 해물풀코스요리인 특별씩 마짱꼴레를 먹었는데 비싼 값이었지만 다양하고 진귀한 해물요리를 마음껏 포식할 수 있었다.

 

제3일 (2006년 12월 29일)

 

  호텔조식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세계적인 고고학 발굴지 폼페이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서기 79년 8월 제정 로마 시대 때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번영과 쾌락의 도시 폼페이는 한순간에 화산재 속으로 파묻혔다. 당시 폼페이는 농업,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귀족들의 피서, 피한지로서도 인기가 높았다. 전성기 때 갑자기 멸망한 폼페이는 1748년부터 시작된 발굴로 현재 도시의 약 60%가 드러나 있는 상태다. 출토품 중에는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많다. 광장과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한 고대 도시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하수도와 목욕탕, 극장, 레스토랑, 공중화장실, 공창까지 갖춰진 현대의 도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각종 시설이 완전히 구비되어 있다. 도로 역시 완전히 포장되어 있어 당시의 번영했던 도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카프리 섬>  

  다음에 찾은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가곡으로 알려진 소렌토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해변 가득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소렌토 반도의 긴 해안선이 인상적이며, 특별한 유적보다 주변의 오렌지,레몬밭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오후에는 선택 관광으로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갔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코발트 블루의 새파란 하늘, 올리브와 오렌지, 그리고 이름 모를 남국의 화려한 꽃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와 천혜의 자연 경관으로 고대 로마 때부터 황제와 귀족들의 별장지로 알려진 카프리 섬은 다른 휴양지와는 달리 기품 있는 귀부인 같은 곳으로 영국황태자와 다이나 왕비와 제크린-오나시스의 신혼여행지로 더욱 유명해 진 곳이다. 

 

  다시 배를 타고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히는 나폴리로 입항하였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나폴리에 가보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남부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다. 나폴리는 캄파니아 주의 주도로서 항구 도시다운 거친 면모와 함께 인간적인 따듯함을 지니고 있었다.

 

제4일 (2006년 12월 30일)

 

  아침 식사 후 버스를 타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갔다. 때마침 연말이라 바티칸 성당 입장을 기다리는 신도와 관광객 행렬이 너무나 많아 약 2시간 동안 줄 서고 까다로운 입장 절차를 거친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품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 특히 라파엘로,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 작품들과 시스티나 소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및 "천지창조" 등 카토릭교단의 위대한 종교문화유산을 감명 있게 보았다. 이곳에서 중요한 의식을 많이 치르는데 교황 선거도 이곳에서 행해진다. 구약성경을 주제로 한 천장화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빛과 어둠의 분리'로부터 '노아의 만취'에 이르기까지 총 9개 장면을 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중앙에 있는 '아담의 창조'가 유명하였다.

 

  다음에 들른 성베드로 성당은 로마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베드로의 순교 모습을 부조한 '청동의 문'이 있는데 이 작품은 1445년 필라레테가 완성했다. 이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성당 오른쪽에 있는 '피에타'일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25세 때 완성한 작품으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바깥 화랑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구리의자'가 있는데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를 대표하는 4명의 성인들이 의자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내부에는 베드로가 사용했다고 하는 나무의자가 있다. 제단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가 설설계한 지상 132.5m의 돔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는데 테라스까지는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지만 그 위에 발코니까지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성당 안에서 우리 가족과 일행의 건승을 경건한 자세로 축원하였다.

 

 성베드로 광장은 4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타원형의 널찍한 광장으로써,17세기 때 거장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화랑에는 284개의 원기두이 있고, 상부에는 140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제작한 것으로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원기둥은 4열로 만들어져 있는데 분수와 오벨리스크 중간(서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각각 앞줄의 원기둥만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매주 일요일에는 광장 오른쪽 건물 화랑 위에서 교황이 모습을 나타낸다.

  다시 버스에 올라 약 4시간 동안 달려서  근세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로 이동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였다.

 

제5일 (2006년 12월 31일)

 

  06시에 기상하여 07시에 빵과 과일, 베이컨, 치즈와 곁들여 커피 주스로  아침을 먹고 07:50 버스에 올라 피렌체에서의 관광이 시작되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서 문화예술의 꽃이 만발한 곳이라고 한다. 인구 50만이 조금 못되는 도시로서 모든 관광객이 통행 허가서를 받고 통행료(버스 한 대당 230유로)를 지불해야만 시내 관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들린 곳이 미켈란젤로의 언덕(광장)으로서 미켈란젤로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을 만들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미켈란젤로의 이스라엘 2대왕으로 골리앗에게 돌팔매질하려는 장면의 다비드 동상(다윗왕)을 우뚝 세워 두었다.

 

  그 후 단태의 생가 앞에서 간단한 얘기를 듣고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다 시뇨리아 광장은 종교의 중심지이며 정치, 생활의 중심지로서 광장문화(대중, 정치, 상권)로 야외 조각 박물관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기독교가 유럽의 역사를 천년동안 이어나간 중세시대 신과 교회를 위한 신본주의 음악 미술 등 종교와 교회를 위한 시절 르네상스 인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나체로 부각시킨 점이 특이하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왕, 태양의 아폴로왕(로마의 최고 남성상) 바다의 신 포세이돈, 로마 바티칸에서 본 메도사의 전설, 사비나 여인의 강탈 등 르네상스의 최고의 남성상 인본주의 시대의 상징인 나체로 조각 전시하고 있었다.

 

  정치 등 중심지 메디치가가 집권하면서 발전하였고 코미치 1세(르네상스의 주인공)가 정치범을 처형하는데 성당의 높은 탑신에 올라 밀어 떨어지게 하여 처형하던 곳이기도 한 시뇨리아 광장을 떠나 산타크로체 성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피렌체에서 유명한 사람만 모신 성당이라고 한다.  

  스파게티 고기와 감자스프 야채 샐러드 과일과 와인을 곁들여 가지고 간  멸치로 점심을 먹고 밀라노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17시 45분 밀라노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이 1935년 머스콘티가문에서 계획하여 1400년대에 공사를 시작 1950년대에 완공한 두오모 성당으로 갔다. 성당의 규모는 93m × 151m 이며 백대리석으로 조성이 되었으며 황금 마리아 상은 108.5m 탑이 135개로 뾰족하고 2245점의 보물이 있으며 기둥이 52개이고 365일 52주가 된 세계 4대 성당(로마 성베드로 성당, 궐른의 대성당, 셀프 빌라드,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 중의 하나로 유명하며 또한 1862년에 설계하고 건립한 광장과 빅토리아 2세의 기마상과 1865년부터 1878년에 걸쳐 약 12년 동안 건축한 1872년 이탈리아 통일 기념 겔러리와 아케이드 위(200m×100m  돔 높이 50m)를 철과 유리로 덮은 유명한 곳이다. 내부에는 거대한 52개의 열주가 늘어선 광대한 공간이 있고,15세기 때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맑은 날은 알프스 산맥까지 볼 수 있단다.

 

  두오모 앞에 있는 두오모 광장은 밀라노 시민들의 휴식장소로 애용되고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비토리오 엠마뉴엘레 2세 기념상이 서 있고,갈레리아라는 아케이드가 광장 주위를 감싸고 있다.1865년부터 13년에 걸쳐 완공된 아케이드. 유리로 장식된 높은 돔형의 천장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통로 양쪽으로는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부띠끄 등이 줄지어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유명한 오페라를 공연하는 스칼라극장을 보았다.

  이 스칼라극장은 제2차 대전시 불탔으며 그 당시 설계도가 남아있어 새로이 재 복원하였다고 하고 여름철에는 5-6개월 공연하였으며 요즘은 막과 막사이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므로서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새로이 무대를 증축하여 몇 막이라도 바로 공연을 실시 할 수 있게 건축하였다고 한다. 세계적인 오페라의 메카, 스칼라 극장. 모든 성악가들이 한 번은 서보고 싶어 하는 스칼라 극장은 1778년 창건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은 1946년에 재건되었다.19세기 이래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초연 되었던 스칼라 극장은 지금까지도 거장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3000여명을 수용하는 내부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멋진 샹들리에가 늘어져 있어 화려한 느낌을 준다. 오페라 시즌은 12월 7일부터 7월초까지. 9월부터 11월 까지는 콘서트나 발레 등을 공연한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머스콘티 가문에서 이룩한 1450년에 크게 지은 스포르제스코 성을 관람하였다. 이 성안에는 다빈치의 미완성 작품과 미켈란젤로의 예수와 마리아를 소재로 한 작품 “온다니 삐에따” 가 전시되어 있다.

  

 

<스포르제스코 성당(지금의 박물관)야경>

  

제6일 (2007년 1월 1일)

 

 정해년 황금돼지의 새해 첫날 호텔조식 후 버스로 스위스로 이동하였다.

 스위스는 유럽중부의 연방공화국이며 유럽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내륙국이다.독일,프랑스,이탈리아,리히텐슈타인,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며 면적은 41,293평방㎞이다. 알프스를 중심으로 관광 수입도 중요한 자원이 된다. 계절별로는 봄과 가을에 관광객이 많고 특히 가을철에 절정을 이루어 연간 관광객은 자국 인구의 5배를 넘는 3,600만 명 이상이다. 비엔나 조약으로 영세 중립국이 된 후 국제 연합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국제적십자사본부를 이용하여 국제통신연합(IUT), 국제노동기구(ILO),세계기상기구(WMO)등 100여개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다. 행정상 26주(CANTON)로 구분되고 의회는 양원제로 간접 민주제의 전통이 있다.

 

 
<얼음궁전>

  스위스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요흐는 해발 3,454m의 높이로 이곳 열 차역은 유럽에서 가장 높다. 융프라우로 가는 등산열차는 열차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1912년에 개통된 이래 전 세계인이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찾고 있다. 특히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까지의 철길은 석회암 암반을 뚫어 만든 터널로,10㎞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16년 동안 많은 스위스 인부들이 돌을 쪼아서 만든 길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20㎞ 이상 이어지는 알레취 빙하와 눈 덮인 융프라우의 멋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얼음 궁전은 빙하 30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거대한 얼음의 강에 굴을 뚫어 만든 얼음 궁전에는 다양한 얼음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니 추운 날씨와 눈보라로 인하여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간이 휴게소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비싼 값으로 사서 먹는 맛은 별미였다. 눈이 쌓인 알프스의 기상 속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한식 설렁탕과 육개장으로 먹고 나니 한결 새로운 힘이 느껴졌다.   

 

제7일 (2007년 1월 2일)

 

 

 과일과 요쿠르트, 다양한 유제품으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섰다. 다시 버스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기 위해 TGV를 타러 베른 역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우리나라 KTX에 해당한다는 TGV에 승차하였는데 오래된 탓도 있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 KTX가 훨씬 시설 면에서 좋은 것 같았다. 밖에는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파리의 리옹 역에 도착하여 우선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부터 하고 나서 가이드와 함께 시내 세느강을 따라가며 시내를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파리 시내의 건물들은 대부분 주상복합으로 지어져 있으며 이 건물들은 주로 100년에서 150년 이상 된 건물로 현재 파리의 도시 형태가 거의 100년 전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도시라 주차 시설이 부족하고 지하 주자장이 없어 주차문제가 가장 심각했으며 주차해 둔 차는 거의 앞뒤가 딱 붙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곳에는 담배를 어디서나 피울 수 있어 담배 냄새가 시내에 많이 풍겼다.

 

  파리 시내를 흐르고 있는 세느강은 우리 한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았으나 강의 깊이가 무려 3.5m?7m로 깊고 물이 석회석이 많이 섞여있어 탁해 더러운 것처럼 보이나 연어가 살 정도로 깨끗하였다.

  대학은 13개 대학이 있으며 7대학에는 한국어과가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2002 서울 월드컵 이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세느강을 따라 올라가니 시테섬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고딕식 건물로 된 끝이 뽀족하고 45° 기울어진 공중부벽(빗물받이 역할과 힘의 분산 기능) 기둥을 받쳐 둔 모습을 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 전역에 시내에서 2km 원안으로는 관광버스가 진입을 못하고 버스에서 지나가면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후손에게 문화재를 물려주기 위한 조치라니 이런 점은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세느강에 있는 다리는 36개로 현재 37개 째 다리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난 퐁네프다리로 퐁은 다리 네프는 새것이라는 의미로 새다리라는 퐁네프의 다리가 무려 400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루브로 박물관, 밀레의 만종과 해바라기 그림이 잇는 오도세 박물관, 이집트의 람세스2세로부터 170년 전에 선물 받은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산드3세 다리, 나폴레옹 유해가 묻힌 무덤인 세인트헬레나 돔 성당, 강을 따라 오른 족으로 10만 그루 이상 심어진 플라타너스, 왼쪽에는 너도밤나무(마로니에) 등의 전경을 보며 파리 시내를 쭉 돌아보는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았다. 파리의 동쪽에서→서쪽까지의 거리가 서울의 1/6로 그리 넓은 곳이 아니었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 남서쪽으로 22km 지점에 있는 베르사이유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베르사이유궁전은 17세기 말~18세기에 부르봉 왕조의 궁전으로 유명하다. 도시는 궁전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도로가 뻗었고, 3줄의 아름다운 가로수가 있는 큰 도로는 절대왕정의 자취를 엿볼 수 있어 호화찬란한 궁전과 정원을 중심으로 관광도시를 형성한다. 베르사유의 기원은 17세기 전반 수렵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고요한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城)을 지은 것에서 비롯한다. 그 후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실내장식가 르 브룅, 정원예술가 르 노트르 등을 초빙하여 궁전을 짓고 1672년 왕궁이 이곳으로 옮기자,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문화·사교의 중심이 되었다. 베르사이유는 250만평이나 되었으며 사냥터로 주로 이용이 되었다. 지금은 10배 정도 준 규모로 정원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개선문 앞에서의 필자>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

 

  샤를 드골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6년 승리를 기념하여 건축가 샤를 글랑 에게 건축을 명령하여 30년만인 1836년에 완성하였다. 높이는 49.54m, 폭 44.82m로 세계 최대의 크기로 4면에 설치된 부조는 전쟁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마주보는 거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가 보였다. 파리의 개선문이 있는 곳에서 콩코드 광장을 연결하는 거리로 이곳에서 보면 오벨리스크와 카루젤 개선문을 볼 수 있다.

 

<연수단 일행>  

 

<파리 에펠탑 야경>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유럽연합 25개국에서 설문조사를 하여 유럽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에서 1위를 차지한 에펠탑 야경을 구경하러 갔다.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어버린 에펠탑은 1889년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건립 당시 철골을 그대로 드러낸 외관으로 미관을 해친다는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콘트라스트와 우아한 실루엣의 아름다움으로 파리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특히 밤에 조명을 받은 에펠탑의 모습과 10분마다 펼쳐지는 발광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작은 기념품을 구입하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의 야경과 파리를 뒤로하고 버스로 한 35분가량 이동하여 공항 근처에 있는 힐튼호텔에 도착하였다. 힐튼호텔은 성수기에는 1박에 거의 100만원 정도 하는 호텔 로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시설도 이제껏 유렵여행 중에 그 어느 호텔보다 최상급 이였으며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파리의 마지막 밤이라 로비 카페에서 모두 모여 시원한 생맥주로 이번 여행의 아쉬움을 이야기로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갖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제8일 (2007년 1월 3일)

 

  아침을 호텔식으로 먹고 다시 버스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파리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주는 대표적인 명소 루브르 박물관은 1190년 필립 오귀스트에 의해 건립된 성채였는데, 그 후 계속적인 증·개축을 거치면서 역대 왕들이 수집한 명화나 조각들을 전시하게 된 루브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비로소 미술관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으나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발표한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정책에 의해 루브르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명실 공히 세계최대의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피라미드를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강당, 시청각실, 레스토랑, 그리고 미로와 같은 방대한 박물관을 안내해 주는 안내소가 있는 나폴레옹 홀과 주차장, 각종 상점이 있는 새로운 지하공간 '까루젤 뒤 루브르'를 만날 수 있으며, 세 개의 전시관 쉴리,드농,리슐리유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모나리자의 미소?가 특히 우리를 반겨주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성심성당 및 몽마르뜨 언덕을 지나 관광명품센타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고마운 분들에 대한 몇 가지 기념품을 구입하여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가방에 넣었다. 특히 손수 오징어조림과 멸치볶음을 만들어 넣어준 소중한 아내의 정성과 최신형 캐논디지털 카메라를 사서 여러 선생님들에게 부러움을 안겨준 삼성전자 커플인 아들과 며느리의 배려, 초임교사의 힘든 생활 속에서도 여행비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넣어준 맏딸과 항상 애교가 넘치는 분당 짐보리 교사 막내딸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선후배 직장동료들의 모습에 감사하면서 파리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도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한식집에 들러 돼지불고기로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후 20시 55분 다시 대한항공편으로 파리를 출발하여 11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다.  

 

제9일 (2007년 1월 4일)

 

  우리들은 오후 13시 50분에 그리운 고국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가족들에게 반가운 전화를 하였다. 잠시 자유시간을 보내다 다시 국내선으로 18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9시 20분 대구공항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김천 부곡동에서 사시는 선생님과 같이 택시를 이용하여 동대구 역으로 갔다. 열차표를 끊고 순두부찌개로 저녁을 먹었는데 오래간만에 맛보는 한식이었다. 20시 54분 다시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여 21시 50분 김천역에  내려 그리운 집에 도착하니 22시였다.

 

  반가워하는 아내와 애완견 두리를 안아주고 지난 8박 9일간의 유럽여행을

다음 몇 가지로 마무리하였다.

  먼저 유럽의 고전적이면서도 웅장한 선진문화를 보면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고, 위인은 영원하다”는 교훈을 새롭게 깨달았다. 우리의 삶은 백년내외의 짧지만, 위인이나 예술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역사나 예술품은 영원한 감동을 후세인들에게 준다는 사실이다. 더욱 시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영웅의 삶이나 예술가의 혼백은 더욱 아름답고 위대한 역사로 남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대한항공의 최신식 시설과 삼성, 현대, 대우의 각종 전자, 자동차제품, 그리고 많은 해외 한국인 관광객들과 해외 한식당의 모습에서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 최상급의 인터넷강국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더욱 절약하고 근면하면서 창조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해서 최선을 다하며 조국에 대한 강한 애국심과 단결력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노사간의 화합과 훌륭한 지도자 선출, 애국애족심과 민족정기를 심을 수 있는 교육개혁을 위해 우리들 교육지도자들이 선봉에 서야함을 절감하였다.

 

  끝으로 개인적으로는 나의 현 위치를 과분하게 생각하고 겸손한 자세와 깨끗한 교육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 아울러 충·효·예를 바탕으로 확실한 민족 교육관과 창조적인 유럽의 선진문화를 조화시켜 세계화, 국제화, 정보화교육을 선도하여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김천고등학교 송설중흥에 매진하자.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남편과 아버지로서도‘참되고 알차게’가훈처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힘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자고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