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동창

뿌리찾아 모국 방문한 재미 고교생과의 만남

보리숭이 2006. 7. 31. 13:01

 27일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미국 뉴욕 일대에 사는 재미동포 고교생 92명과의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김천고. 김천여고 1학년생 92명과의 1대 1 만남을 갖고 평생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들은 선물도 교환하고 김천의 종합 스포츠타운과 직지사 등을 탐방하며 서로의 학교생활과 관심사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뉴욕의 뿌리교육재단 주선으로 10일간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 동포 고교생들이 김천을 찾게 된 것은 안용진 뿌리교육재단 회장(송설23회)과 이동희 김천농협조합장(송설23회,김천송설동창회 고문) 간의 인연 때문에 비롯됐다. 김천고 동창생인 이들은 47년간 이어오던 끈끈한 우정을 청소년들에게도 심어주자며 재미동포 고교생들의 모국방문 일정에 김천 방문 및 고교생들 간의 만남 행사를 포함시킨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천고 1년 배병수 기자의 참관기를 아래에 싣는다.

 

참관기---------------------------------------

 

7월 27일 김천 고등학교의 30여명의 학생들은 1교시를 마친 후 박종근 교감 선생님의 지도하에 김천문화예술회관에 가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뿌리교육재단에서 주최하는 재미교포2세들의 뿌리찾기 행사중 8일째인 김천방문에서 김천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한국인의 긍지를 그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과연 우리가 제2의 외교관이라고 일컬어지는 민간외교관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김천문화예술회관에 가보니까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제일 처음으로 왔는데, 몇 분후 김천여고가 도착했으며 가장 늦게 재미교포 2세들이 도착했다. 간단한 인사 후 문화예술회관 안에 들어가서 개최식을 갖게 되었다.

 

 김천시 부시장님을 위시한 수많은 김천시 고위직 인사들의 김천 방문 축하와 뿌리재단 측 인사들의 연설 후 김천시민대종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타종식이 있었으며,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전국 체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지어진 김천실내수영장과 김천 운동장을 둘러보며 교동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직지사로 가기 위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서로의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며 수많은 재밌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물론 한국어로 말이다. 본 기자는 영어로.)

 

직지사 앞 상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6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근처 식장6개에서 점심을 가졌다. 점심을 먹은 후, 1시 30분까지의 자유 시간을 갖게 된 일행은 직지문화공원으로 향했다.

 

  도중 김천고등학교 1학년 임정훈 학생과 재미교포 한 학생(아마 이문원학생이 아니었을까?)의 비트박스 대결이 있었는데 흥미진진했다. 많은 재미교포들과 김천 학생들은 이를 구경했으며 이를 통해 서로간의 또래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직지 문화 공원에 갔는데 그 뒷쪽에 있는 어린이용 놀이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용 놀이터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한 채 직지사에 향했다. 재미교포들은 직지사의 웅장함과 유려함에 놀라는 기색을 시종 보였다.

 

 

 

 

직지사 대웅전에 다다르니 박종근 교감선생님의 직지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직지사의  높은 직책을 맡고 계신다고 소개하셨으며 직지사의 역사와 직지사라는 이름의 유래와 같은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다만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는 재미교포 2세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통역해 주신 분이 없었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원래 일정은 3시까지 직지사 경내 구경이었지만 우천으로 인해 일정이 변경된 거 같았다. 일정보다 40분이나 앞당겨 져서 2시 30분도 되기전에 폐막식을 가졌다.

친해진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떨결에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김천고로 가는 버스로 향하던 찰나, 내 가방을 재미교포들이 타는 버스에 나두고 왔다는 생각에 그 버스로 갔다.

 

 

역시 가방은 그곳에 있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나한테 세바스챤(배병수라는 이름이 재미교포들에게 발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영어이름을 사용.)이라고 하며 아쉬워했다.

나 역시 아쉬웠지만, 그들을 뒤로 한 채 김천고 버스에 탑승했다. 김천 고등학교에 도착해서 해산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기자는 느낀바가 많았다. 우선 좁은 김천에서 벗어나 세계를 보는 시각이 넓어 졌다. ‘근데 그들이 왜 머나먼 한국땅에 오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본 기자는 갖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은 용비어천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선조 제4대 임금 세종이 한국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후 권제·정인지·안지 등을 시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했다. 이는 왕조의 뿌리를 확인하여 무궁한 발전을 도모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가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아 내를 이뤄 바다로 간다"는 두 구절에 세종 임금의 '뿌리 찾기'의 주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즉 뿌리 찾기는 케케묵은 과거를 더듬는 게 아니라 '나'의 미래를 위한 비전 찾기 즉 선대(先代)를 칭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대(當代)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것임을 세종대왕은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쉽게 얘기해서 그들의 뿌리, 민족적 근거를 앎으로서 그들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당당하게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뿌리교육재단의 '뿌리 찾기' 또한 영원히 '코리안'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강요가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든 미국서 태어났든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됐는지, 한국이 '정신적 고향'이라면 미국은 '삶의 터전'이므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자아를 어떻게 확립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확인한 '나'의 정체성으로 한국과 미국 사이의 공간적 차이는 물론 부모 세대와 '나'가 활동하는 이 시대 사이의 시간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자각하면 되는 것이다.


재미교포 2세들은 10일간의 대장정을 끝내고 7월 30일 미국으로 출국할 것이다. 기자는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김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들과의 이메일 등의 연락을 통해 우정을 쌓아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