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순례

김천 옛날솜씨마을과 수도암을 찾아서..

보리숭이 2006. 5. 4. 00:43

오후 한적한 시간이 나서 김천 옛날솜씨마을에서 수도산 수도암까지 일정을 잡아 가 보았다.

김천 옛날솜씨마을은 이씨, 한씨, 박씨의 삼성이 합심하여 전답을 이루니, 들이 넓고 평평하여 대평이라 했는데, 이 들에 마을이 이루어졌으므로 들마,평촌이라 불렀다 한다. 그중 장평은 마을의 지형이 해주선형(解舟船形)이라 배를 매는 말뚝이 필요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장뜰, 혹은 장평이라 부르고 있다. 1914년에 평촌, 장평, 추령이 통합하여 평촌리라 칭하였다.

시장기를 때우려 식당을 들렸는데 이름이 무골식당이라 한다. 그 이름의 연유를 주인장께 물어보니 이 동네가 무골이란다. 원래 무흘계곡이라는데 줄여서 무골이 되었단다.

그 말에 근거를 두고 알아 보니 이곳에 오기 전에 대가천 계곡을 지나왔는데 (김천시 증산면에서 성주댐을 지나 고령 방면으로 이어지는 대가천 계곡 임) 그 계곡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가천 계곡은 한강 정구 선생이 남송때의 주희가 노래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은 "무흘구곡"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천 옛날솜씨마을이라 그런지 식당이 여러 곳 있고 농심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http://somsi.go2vil.org/ 를 찾아가면 알 수 있다.

식당 곳곳에 꽃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어 몇 곳 사진을 찍고
요기를 간단히 하고 수도암으로 향했다.

수도산 중턱에 금낭화 군락지가 있어서인지 동네에 금낭화가 많이 보였다.

 

 

 

 

 

 

 

 

 

 

 

 

 

 

 

 

 

 

 

 

 

 

 

수도암은 수도산(1,317m)의 상부에 위치한 도량으로, 옛날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고 앞으로 무수히 많은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백여년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고 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수도암은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서 암자까지 걸어 오르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은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한편 경내에 있는 석불상, 석탑, 그리고 지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지라 행사 준비에 사찰은 이 곳 저 곳이 분주했다. 그곳에 찍은 사진을 아래에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