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동창

송설53회 김연수작가-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보리숭이 2005. 10. 14. 20:38
지난 2일 송설 53회 김연수동문과 본교 출신은 아닙니다만 김천출신 김중혁님의 작품이 심사위원 추천 20편 중 본심 9편에 해당되어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한국일보에 게시된 예심 심사평을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문학상 예심 심사평(1)
문학평론가 김형중


소설, 역사의 허구성을 꼬집다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문학수첩 봄호)은 장편 ‘?A빠이 이상’ 이후 김연수가 수행해 온 작업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부넝쒀(不能說)’, ‘거짓된 마음의 역사’ 등 최근의 단편들에서 작가가 시도해 온 그 작업이란 ‘기록된 것에 대한 문학적 회의’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최근 기록된 역사의 허구성을 여러 문헌과 사료들을 참조해 가며 폭로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작품군들 중에서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특유의 메타소설적 형식, 해박한 인문학적 교양, 그리고 정확한 문어체 문장 구사 등, 김연수의 ‘불가지론’이 가장 원숙한 문학적 형식을 얻은 수작이라 할 만하다.
 

특히 화자의 사랑 이야기에, 왕오천축국전의 한 구절을 둘러싼 지적 추리, 그리고 설산을 향한 등반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전개되다가 결국엔 다시 얽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전진하는 탁월한 구성력은 가히 이 소설의 백미다.
 

구성의 중층성에 따른 난독성의 문제를 염려하지 않은바 아니나, 더러는 난독성이 쉬운 해독을 거부하는 훌륭한 예술작품의 요건으로 꼽히기도 하는 터에, 김연수의 이 작품을 수상 후보로 꼽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예심 심사위원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시각의 지배… 상상력 행방불명
김중혁 '무용지물 박물관'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에는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하던 장면을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듣고 보았던 두 사람이 등장한다.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나’는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반면에 인터넷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하는 ‘메이비’는 라디오로 그 장면을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나’가 보스턴이 극적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정도라면, 라디오로 방송을 들었던 ‘메이비’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때의 상황을 재현해 낸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텔레비전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시각중심적 문화는 언제나 과도하게 완성된 이미지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우리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영화 ‘매트릭스’의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의 시각문화는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선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가 상징하는 구술(口述)적이고 청각적인 문화에는 그 어떤 생산적인 여백이 존재하며,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여백을 스스로 채워가면서 의미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에피소드에는 시각 중심의 문화가 놓치고 있는 것, 더 나아가 청각-구술적 상상력의 고유한 위상이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지물 박물관’은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적 상상력의 행방을 묻고 있는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언어(말과 문자)와 상상력의 현대적 위상과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작가의 감수성이 무엇보다도 돋보인다.
 

김형중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