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별
새벽 두 시다.
잠이 오지 않아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여름밤,
귀가 맞지 않는 판자 조각을 모아 성글게 짠 평상 위에 짚자리를 깔아 놓고 오남매가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 별은 흔들리지 않는 꿈이었다.
오래된 감나무 밑에 우리들이 누울 평상을 만들어 놓고 그 한 모퉁이에서 아버지는 여름 한철을 매번 말없이 모깃불을 피우셨다.
젖은 쑥대와 젖은 짚검불을 태우면 매캐한 연기는 하늘로 오르고 흔들리던 연기따라 그 많던 밤하늘의 별들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하였다.
어머니는 행여나 모깃불이 우리들 오남매의 고단한 잠을 방해할까봐 부채로 연신 연기를 쫓으며 우리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이고, 요리 귀한 우리 새끼들은 어느 별에서 왔을꼬.’
그때 어머니의 손에서는 쉴 새 없이 부채바람이 나부끼고 그 바람따라 언뜻언뜻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우리들은 꿈을 키웠었다.
어쩌면 어머니도 부채바람을 통해 당시의 팍팍한 살림살이의 고단함을 날려 보내고 대신 자식들의 눈속에 곱게 내린 별들을 바라보며 가슴에 별과 같은 꿈을 심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밤,
휑하니 바람타고 떠다니던 별빛이 곱게 내려와 창밖을 밝히던 밤이면 풀 먹인 이부자리를 깔아주시면서 어머니는 자장가 대신 별이야기를 해 주셨다.
풀 먹인 이부자리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별이 밤바람에 서성이는 소리로 착각하며 잠을 청하던 그 기나긴 겨울밤, 어머니가 나긋나긋 들려주던 별이야기는 우리들의 변하지 않는 꿈이었다.
‘아이고, 요리 귀한 우리 새끼들은 어느 별에서 왔을꼬.’
어머니는 뜨개질 하던 손을 멈추고 간간히 우리들 얼굴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혼잣말처럼 되내이셨다.
어머니는 등잔불 밑에서 겨우내 우리가 입을 개속바지를 한 코 한 코 뜨면서 별이야기와 함께 꿈을 떴을 지도 모를 일이다.
등잔불이 사위어 질 무렵 뜨락으로 쏟아지던 별빛은 우리들 미래의 꿈이었다.
한결같은 어머니의 따스한 음성을 통해 들었던 별 이야기들은 저마다 모두 빛깔이 달랐다.
어머니의 팍팍한 무릎 베개를 베고 누워 옛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온몸으로 쏟아지던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의 크레파스로 칠했던 여름 밤하늘의 별들.
겨우내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서성이다 이제 마악 잠든 우리들의 꿈속으로 스며들어와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겨울 밤하늘의 별들.
내 가슴 속에는 파란 별, 빨간 별, 분홍 별, 연두 별, 각양각색의 별들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빛났었다.
그 때 밤하늘의 별들은 꿈이 있어 따스했고 그래서 내 가슴도 희망으로 따뜻했다.
오늘,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겨울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풀벌레 소리와 구성진 개구리 소리, 매캐한 모깃불 냄새와 연기를 맡으며 오감을 다 동원하여 쏟아지던 별무리들을 온몸으로 받아 들였던 지난날 여름 그때 밤하늘의 별들을 생각하며 사십 여년이 지난 오늘, 겨울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머리 위로만 쏟아질 것 같은 겨울 밤하늘의 별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얼얼하다.
너무나 차거울 것 같은, 그리하여 온기 있는 손으로 만지면 쓰윽 사라질 것 같은 겨울 밤하늘의 별은 손을 대면 얼음보다 더 차가울 것 같다.
그런 별을 보고 있자니 가슴까지 시리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알싸하게 얼굴에 와 닿는다.
서늘하다. 나이 탓일까?
방안의 따스한 온기와 바깥의 차가운 냉기가 만나 만드는 성에꽃이 베란다 창문에 가득 피어있다.
한 무리의 별무리들이 내려와 만든 별들의 꽃밭같다.
손가락 끝을 갔다대면 스르르 녹아 내리는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별똥 떨어지는 모습같다.
“오늘 밤에도 별이 참 곱네요. 여기에 실좀 감아 주세요.”
긴 겨울 밤, 잠 못 들어 뜨개질을 하던 아내가 아들의 목도리를 짜다 말고 대바늘을 빼고 털실을 풀면서 한 마디 한다.
“올해는 유난히 춥네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예쁘게 짜야 할 텐데...”
“옛날에는 추위도 추위지만 옷감이 귀하던 시절이라 털실을 사서 이것저것 떠서 옷을 입었어요. 그때는 가족 끼리 오순도순 모여 서로 누가 많이 떴나 내기하며 겨울 밤을 보냈었는데...국민학교 때였어요. 그 때가...”
“그땐 그랬었지.”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절었던 60년대 후반이라 옷다운 옷을 사 입기가 곤란했었다.
끼니도 거르기가 다반사였으니 오죽했을까?
옷감을 쉬이 구할 수도 없었고, 사시사철 한 두 가지 겉옷으로 바람이며 햇빛을 가렸던 시절이라, 그리고 시절 탓인지 대부분의 옷들이 암울한 색들이었는데, 참 맞아. 그때부터 알롤달록 신비한 나이론이 나오고 털실이 생기면서 집집마다 옷을 떠 입기 시작하였고 옷 색깔이 화려해지고 색깔의 호사가 시작되었지.
적어도 나일론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가정의 문화적 배경과 경제적 배경으로 선택되어지는 옷감의 종류와 색깔은 광목과 무명에 고작 무채색으로 만들어진 옷이 전부였다.
남들이 얘기하는 모직이니 비단 옷의 화려함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나일론은 획기적으로 우리 가족의 옷들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었다.
불현듯 우리 가족이 입었었던 개바지들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국방색 털실로 짠 개바지를 입어셨고 어머니는 빨간색 개바지를 입어셨다.
저마다 어머니의 색깔 선택으로 이루어진 각양 각색의 개바지와 쉐타를 입고 따스한 겨울 한철을 보내고 나면 부모님과 다르게 우리는 한 뼘씩 자라 있었다.
자란 키 만큼 닳아졌거나 줄어든 개바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잘 갈무리 되었다가 해가 바뀌어 또 다른 겨울이 오기 전 어머니의 손에서 또 다시 다른 형형색색의 옷으로 재탄생 되었다.
아버지의 개바지와 어머니의 개바지는 닳으면 닳은 대로 늘 그대로였는데 우리 형제들의 개바지는 다시 풀려서 다른 옷을 만드는데 또 사용되고는 하였다.
한 철 입었던 바지의 털실을 푸는 몫은 늘상 우리 형제들이 하였다.
솔솔 풀어지는 털실을 감으며 커지는 공만큼 우리의 꿈도 그만큼의 크기로 자라기도 하였다.
솔솔 풀려져 나오며 끊임없이 이어지던 털실이 끊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두 매듭을 잇고 그 매듭을 덮으려 다른 방향으로 감았던 털실은 색깔대로 감겨져 나란히 대바구니에 담겨진다.
그걸 이용해 어머니는 또 겨울 한 철을 알록달록 개바지나 혹은 쉐타를 만들어 우리들의 겨울을 따스하게 감싸 주셨다.
어머니는 남은 털실을 이용해 털모자도 만들어 주셨는데 털모자의 앞뒤를 구분하게 하려 커다란 별하나씩을 앞면에 수놓아 주셨다.
그 색이 또한 알록달록하여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별 색깔대로 파란색별 모자를 쓰기도 하고 빨간색별 모자를 쓰기도 하고 분홍색별 모자를 쓰기도 하였다.
그 별 모자를 쓰면 우리들의 꿈은 빨간색이 되기도 하고 파란색이 되기도 하였다가 때로는 분홍색이 되기도 하였다.
그땐 그래서 무지개빛 꿈을,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과 정성 때문에 무지개빛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다양하게 변하는 세상살이 한 가운데로 내동댕이쳐 질 때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고 부딪히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여러 가지 보편적 속성과 개별적 속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보편적 속성을 통해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개별적 속성을 통해 특별한 유전자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우연적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는데 과연 그것이 우연적 산물일까하는 문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이때 이해되어지고 확인되어진 특별하고 개별적인 유전자가 문화적 유전자가 되어 한 사람을 이해하고 한 가정을 이해하고 한 민족을 이해하는 본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순간, 겨울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아내도 예전의 어머니처럼 뜨개질을 하면서 한 코 한 코 꿈을 뜨고 있는 모습은 우리 가정의 문화적 유전자를 이해하는 하나의 상징은 아닐까?
자식에게 줄 목도리를 뜨면서 우리 가정의 문화적 유전자의 개별성을 잇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나브로 사위어지는 어둠을 뒤로 하고 별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별이 사라질 때마다 아들의 목도리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겠지.
엄마가 만들어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내일이면 삭풍의 현실로 나아갈 아들의 가슴에도 오늘 밤 큰별 하나가 곱게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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