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쉼터

[동영상] 흥선스님의 한시읽기 한시일기 '맑은 바람 드는 집'

보리숭이 2009. 7. 22. 06:45

맑은 바람 드는 집

어제의 비에 꽃이 핍니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집니다.
일이란 일은 죄다 빗속에, 바람 속에 오고 또 갑니다.
사람의 일치고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산중에 사니까 좋겠다고들 말합니다.
그냥 웃습니다.
일 줄이고 마음 맑혀 고요히 살고 있다면
예, 그렇지요 하고 시원스레 답하련만,
일은 늘고 마음밭엔 잡초만 수북하여
소란스러움 속에 날이 지고 밤이 새니 열적어 웃을 밖에요.

여린 바람에도 한없이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었던 억새들이
은갈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부드럽게 일어섭니다.
나를 닮으라 나를 닮으라 서걱입니다.
산을 보아도, 벌판을 보아도 가을이 빛나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아도, 강물을 보아도 가을이 영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눈 오시는 밤입니다.
눈은 곱게도 내립니다.
내리는 대로 사박사박 쌓이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도 차분차분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법당을 새어나온 향 연기에도 눈 냄새가 사륵사륵 배어들고 있습니다.
눈 오는 산사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직지사 직지성보박물관 흥선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