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쉼터

영친왕 현판이 있는 만산고택에서의 하루

보리숭이 2009. 7. 17. 12:46

1878년(고종 15) 만산(晩山) 강용(姜鎔:1846~1934)이 건립한 만산고택은, 의양리 남쪽의 얕은 산을 등지고 동향(東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春陽面) 의양리(宜陽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2000년 4월 10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강백기님이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모두 4동이다.

강용은 중추원의관과 도산서원장을 지냈고 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면서 마을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그곳에 올라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정면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口'자 형의 정침(正寢)이 자리잡고 있다. 사랑마당의 왼쪽에는 서재, 오른쪽에는 별당인 칠유헌(七柳軒)이 별도의 토석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사랑채는 2통간(通間) 대청과 2통간 사랑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에는 툇간(退間)이 있고 사랑방 오른쪽에는 감실(龕室)이 있다.  사랑마루 뒤에는 마루방과 골방이 있다.


마루방 뒤로는 중간방이 안채 부엌과 왼쪽 날개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고, 골방은 사랑채에서 안채로 드나들 때 통로 역할을 한다.
사랑채 오른쪽의 감실 뒤로 난 중문을 통해 안채로 출입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1800년대 이후의 주택 중 특히 봉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안채는 사랑채 뒤편과 이어져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안대청 왼쪽에는 안방이 세로로 길게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에는 윗방과 꾸밈마루방 2개가 앞뒤로 있다.
안방 앞쪽으로는 부엌과 중간방이 왼쪽 날개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고,
꾸밈마루방 앞쪽으로는 3칸의 창고가 오른쪽 날개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마당 왼쪽의 서재는 온돌방 1칸과 마루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당은 기와로 된 팔작지붕집으로 왼쪽에는 광이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과 대청이 연결되어 있다.
온돌방 뒤에는 골방이 있고,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만산고택 입구

정면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

서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 편액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이라는데 3,000 여점의 고문서와 서화등을 도난당한 이후로 일만여점의 귀중한 자료들은 국사 편찬 위원회등에 맡기고 현재 편액은 탁본으로 걸려 있다.

영친왕 8세때 친필 -한묵청연 (붓과 먹의 맑은 인연)

 

대원군이 하사한 만산 현판

별당인 칠유헌(七柳軒)

별당인 칠유헌(七柳軒)에서 서실을 보며

 

사랑채 오른쪽의 감실 뒤로 난 중문을 통해 안채로 출입하여 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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