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사립중고 모범교직원 해외연수> 중국 상해-소주-항주 탐방기 김천고 교감 박종근
2008 경북사립중고 모범교직원 해외연수단은 모두 23명으로 선발되었다. 참가자의 직급별로는 교장 1명, 교감 3명, 교사 16명, 행정실장 3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연수는 8월 11일에서 8월 14일까지 3박 4일간 중국 상해, 소주, 항주 지역 탐방으로 진행되었다. 연수일정에 따른 모든 안내는 포항 (주)여행박사(대표 강종모)에서 정성을 다하여 주선해 주었다. 연수의 목적은 경북사립중고등학교 근무 유공자의 그 동안의 노력을 치하하고, 이들 모범 교직원들에게 해외역사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서 사립교원들의 사기앙양과 교육현장의 전문성을 제고하여 학교교육발전에 기여함에 있었다. 제1일 (2008년 8월 11일) 우리 일행은 8월 11일 10시 20분 각자 대구공항 1층 대구은행 앞에 집결하여 모두 반갑게 인사하였다. 간단한 인원점검과 탑승수속을 마치고 중국동방항공편으로 12시 40분 대구 공항을 이륙하여 14시 10분 상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상해직할시의 면적은 6,200㎢, 인구는 약 1700만 명으로 시가지는 양쯔강 어귀의 남안, 황포강이 양쯔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삼각주 지대로 토지가 비옥하고, 크고 작은 여러 수로가 시역에 종횡으로 뻗어 있었다. 송나라 말에 이미 무역항이 되어, 무역감독 관청으로 시박사의 분소가 설치되었다.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에 의해 구미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이 되자, 상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여 중국 제1의 항구도시로 성장하였다.
우리는 연변 조선족 출신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전용버스에 올라 거대한 고층건물을 지나 제일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탐방하였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3층으로 된 벽돌집으로 마당로(馬當路)에 있고 1926년부터 1932년 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청사내의 김구 흉상과 “良心建國” 친필, 도산 안창호의 “愛己愛他” 휘호는 우리 민족 모두의 좌우명으로 생각되었다. 비교적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내부 시설과 유품들에서 일제하 국내외 독립운동의 소중한 모습과 선열들의 장렬한 독립운동의 흔적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노신 동상에서 오른쪽에 한국 건축양식으로 세워진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고, 기념관 내의 흉상 옆에 그가 남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 친필 휘호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연해졌다.
소주는 면적 8,488㎢, 인구 약 600만 명의 역사적인 도시로,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의 수도로 발전하였고, 수나라 때 대운하가 개통되자 강남미의 수송지로 활기를 띠면서 항주와 더불어 ‘천상천당 지하소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
호텔식 조식 후 버스에 올라 먼저 찾은 <졸정원> 은 소주 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북경의 이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등과 함께 중국의 4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면적은 약 5만㎢이며 그 가운데 절반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래 당나라 시인 육귀몽의 집이었다가 원대에 대굉사로 바뀌었던 것을 명나라 때 왕헌신이 중앙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칩거할 때 개축한 것이란다. 졸정원이란 이름은 진나라 반악이 쓴 글 가운데 '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여기에서 따온 것이란다. 정원에는 원향당, 향주, 독특한 모양의 견산루와 파산랑, 비파, 해당, 파초가 유명한 비파원 등이 예술적으로 조화 있게 설계되어 있었는데 곳곳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올라 불교신자인 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과 염화시중의 아름다운 부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다시 이동하여 찾은 <한산사>는 당대의 고승 한산과 습득이 세운 사찰로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는 "고소성 밖의 한산사 종소리 야밤의 객선에 들리누나"라는 불후의 시구를 남겨 유명한 곳으로, 해마나 섣달 그믐날 밤이면 한산사에서 제야 타종행사가 거행된단다. 오후에 탐방한 <호구탑>일대는 원래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 합려의 묘지였는데, 호구라는 이름은 장례를 지낸 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높이40m의 언덕인 호구의 정상에 소주의 상징인 호구탑이 있었다. 높이 48m의 호구 탑은 소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로서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내려보는 시가지 전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항주로 이동하였다. 항주는 면적 683㎢, 인구 약 200만 명으로 전당강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서호를 끼고 있어 소주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나라가 건설한 강남하(대운하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라고 하다가 임안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밤에 관람한 유명한 <송성가무쇼>는 송나라의 수도였던 항주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마파크 ‘송성’에서 펼쳐지는 쇼로서 약 1시간 공연은 3000여명이 동시에 볼 수 있고 300명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규모 공연이었다. 내용은 남송 황제의 연회와 진충보국의 명장 악비 장군과 여진족들과의 싸움, 뱀(여자)과 사람(남자)의 사랑 이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웅장하고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는데 특히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아리랑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화려한 가무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물벼락축제는 수많은 관광객 모두에게 중화문화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였다. 한식당의 삼겹살 돼지고기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호텔에 투숙하였다.
제3일 (2008년 8월 13일) 호텔조식 후 항주의 최대 관광지로 서호 10경의 절경으로 유명한 <서호>를 유람하였다. 서호는 항주(杭州)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이 5.6 ㎢이며 둘레가 15km의 타원형 호수로 평균수심은 2m내외란다.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인 서시를 닮았다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리는 이 호수는 삼면이 산이고, 한 면은 항주 도시가 바라보였다. 유람선을 타고 40여분을 지나는데 3개의 인공섬과 소제와 백제라 불리는 두개의 제방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문화유산 개발에 대한 강한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서호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안개가 끼었을 때와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라고 하는데 더운 날씨와 많은 관광객과 별로 깨끗하지 않은 호수로 인하여 아름다운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다시 중국 선종의 10대 고찰인 <영은사>로 이동하였다. 영은사는 동진시대에 인도의 승려 혜리가 창건했다고 하며 이 절의 대웅보전은 높이가 34m에 이르는 웅장한 건물이며, 절의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신도가 3,000명을 헤아렸다고 하였다. 경내에 있는 9각 9층탑은 오나라의 유물이며, 대웅보전 안에는 높이 20m의 금색 석가모니가 있어 나는 약간의 보시금을 넣고 경건한 마음으로 불심을 모아 3배를 올렸다. 영은사에서 작은 내를 건너 있는 비래봉(飛來峰)에는 72개나 되는 환상적인 동굴과 5대와 송나라에 걸쳐서 만들어진 3백 30개가 넘는 석굴조각상이 주위 산수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마치 불국정토를 연상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찾은 <육화탑>은 항주 남쪽 전당강가의 월윤산에 있는 탑으로서 겉보기에는 13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7층짜리 8각탑이라고 하였으나 내부관람은 금지되어 있어 입구에서 기념촬영만 하였다. 이 탑은 송대(970)에 건립된 탑으로서 국보로 지정되어있으며, 전단강의 대역류를 막아달라는 기원으로 세운 탑으로 탑에는 104개의 풍경이 각 층마다 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풍경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단다. 점심은 서호와 연관이 있는 <동파육>을 먹게 되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제방을 쌓아 주민들이 서호변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해주자 이를 고맙게 여긴 주민들이 너도 나도 돼지를 잡아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였는데 이를 안 소동파가 부인에게 “돼지고기와 술을 주민들에게 내어주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데 부인이 요리사에게 이르기를 “돼지고기를 술에 삶아서 주민들에게 내어주도록 하시오”라고 하자 주방장은 물에 술을 첨가하여 돼지고기를 삶았는데 고기가 엄청 부드럽고 맛있어서 이를 먹어본 사람들이 소동파의 이름을 따서 ‘동파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용정차> 생산단지로 유명한 용정차 녹차 밭을 거쳐 다시 3시간 버스를 타고 상해로 이동하여 중국의 곡예예술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상해서커스>를 관람하였다. 10여 가지의 다양한 테마로 진행되는 서커스로 규모와 내용이 아주 웅장하였다. 현란한 조명과 단원들의 화려한 몸동작은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신묘한 마술, 다양한 공받기, 오토바이가 교행하며 펼치는 서커스는 아슬아슬하고 환상적인 종합예술이었다. 제4일 (2008년 8월 14일) 마지막 날, 일찍 기상하여 호텔식 식사 후 곧바로 상해 푸동국제공항으로 이동, 10시 중국동방항공편에 탑승하여 11시 50분 대구공항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안전하게 보람 있는 중국연수를 마치게 되어 감사하다는 단장님의 인사말씀에 우리들 모두는 박수로 화답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해산하였다. 마중 나온 딸의 승용차로 그리운 집에 도착하여 반가워하는 아내와 애완견 두리를 안아주고 지난 3박 4일간의 중국연수의 소중한 장면들을 다시 상기하여 보았다. 먼저 중국의 화려하고 웅장한 중화문화를 보면서 13억 중국인들의 눈부신 경제성장 노력과 위대한 문화유산 계승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장엄한 개막식 광경과 세계최고의 금메달 행진처럼 우리 한국인들도 더욱 강한 민족문화계승과 창조의식을 가지고 분발하여야 한다는 엄숙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삼성 애니콜, 현대 소나타 승용차, 그리고 많은 한류스타들과 수많은 한국광객들과 해외 한식당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더욱 절약하고 근면하면서 창조적인 국민성으로 각자의 위치해서 최선을 다하며 강한 애국심과 단결력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이번 연수를 계기로 우리 연수단 모두 미래를 선도하는 유능한 인재양성을 위해 겨레의 스승으로서 더욱 확실한 민족 교육관을 마음에 새기고 빛나는 우리역사와 문화유산 보호에 앞장서기를 기원하였다. 끝으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수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경북사립중고교장회(회장 : 포항 유성여고 교장 장현준)와 인솔단장 영광여고 구성모 교장선생님과 이동원 사무국장님의 노고와, 버스 이동 때마다 해박한 교육철학과 재미있는 교양강좌로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신 부단장 남산중학교 김재수 교감선생님과 함께한 여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